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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68614871
· 쪽수 : 272쪽
· 출판일 : 2025-07-10
책 소개
목차
도항
그해 봄을 돌이키는 방법에 대해
1972년의 교육
이름 석 자로 불리던 날
여러 노래가 섞여서
두 여자를 품은 남자 이야기
현수의 하루
해설: 사유하는 삶과 소설의 방법—조갑상론_구모룡(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역으로 돌아가는 김상구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볕도 뜨거운 데다 기운이 다 빠진 듯 피곤했다. 면회가 무산된 데다 나카지마로 인한 긴장 때문이었다. 그리고 초소에서부터 머릿속에 꾹꾹 처박아 놓은 15원 50전이 절로 입을 열었다. “주고엔 고주고센.” 목구멍에 소리가 갇혀 입으로 새 나가지도 않았다.
늦가을 비 오는 토요일이었다. 우선 바꾸어 읽은 책 이야기부터 했다. 내가 릴케 시는 무겁고 어려운 반면 체호프 이야기는 한눈에 다 들어온다고 하자 그녀가 시는 음악을 닮고 소설은 그림을 닮아서 그렇다고 했다. 그러면서 릴케 시는 독일 음악을 닮아 더욱 그렇지 않을까? 라고 해서 나는 신음하듯 아, 음악! 이라고 받았다. 그리고 밤까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과 차이콥스키 바이올린협주곡, 브람스 교향곡 3번을 들었다. 일어나기 전에 그녀가 내게 “고마워.”라고 살짝 말했다. 베토벤 교향곡만 나오면 벌떡 일어나 두 팔을 휘젓거나 젊은 여성들에게 음악선생 노릇 하려는 남자들도 드나드는 곳에서 혼자 오래 있기는 불편했던 것이다.
“멀리 와서 참 무서운 거 보네. 난 사실 투표하러 가면서 속으로 많이 떨었소.” 차일병이 허상병을 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두 병사는 딱딱하게 굳은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어디에 찍든 누가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 투표하고 나와서도 내가 제대로 찍었는지 걱정이 되더라고요. 그런데 시방 박상병 당하는 걸 보니, 또 다르게 무섭네요.” “그렇제.” 허상병은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그날 투표한 새 헌법의 진짜 모습을 보고 있는지도 모르지. 못 볼 걸 보고 있어서 그런지 그런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