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서양철학 > 현상학/해석학/실존철학
· ISBN : 9791168731776
· 쪽수 : 428쪽
· 출판일 : 2026-04-24
책 소개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육체 덩어리가 아니라
끊임없이 ‘살아지는’ 경험의 장으로 몸을 다시 보기
우리는 어떻게 몸을 ‘내 몸’으로 받아들이는가? 어떻게 자신의 몸을 여성 또는 남성의 몸이라고 인식하는가? 또한 어떻게 타인의 몸을 남성 또는 여성으로 추정하는가? 그 중심에 정말로 확고한 ‘물질성’이 자리하는가? 《몸을 추정하기》는 이러한 질문들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다음의 물음에 치밀하게 답하고자 한다. ‘물질성이란 얼마나 모순적으로 생산되는 사회적 구성물인가?’ ‘물질이란 것에 의지하지 않고서 어떻게 트랜스 체현을 설명할 것인가?’
게일 샐러먼은 현상학, 정신분석학, 퀴어 이론이라는 세 학문을 가로지르며 트랜스젠더 체현의 문제를 이론화한다. 몸의 물질성은 아무런 매개 없이 접근 가능하다는 통념, 그리고 그러한 물질성이 우리가 ‘남성’ 또는 ‘여성’이라는 젠더 이분법의 확고한 근거가 된다는 믿음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느껴지는’ 몸과 ‘읽히는’ 몸 사이의 간극을 인간 주체 보편의 문제로, 다르게 말하자면 “규범적인 젠더의 생산 자체가 몸의 ‘느껴지는 감각’과 몸의 육체적 윤곽 간의 괴리에 의존”(10쪽)하는 문제로 논증해내며, 트랜스 체현을 젠더와 몸에 대한 이해를 재구성하는 주요 경로로 삼는다.
현상학과 정신분석학에 관한 배경지식이 있다면 더욱 깊이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필수 요건은 아니다. 두 학문의 전통을 퀴어 이론과 연결하면 무엇이 달라지는지, 샐러먼은 비교적 친절하고도 명료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이 책의 옮긴이이며 퀴어 장애학 연구자인 전혜은이 방대한 역주를 덧붙였다. 촘촘한 해설도 빼놓지 않았다. 트랜스 혐오를 논파하는 데, 젠더와 몸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이론적 자원이 될 책이다.
몸을 취한다는 것, 몸을 추정한다는 것
이 책의 원제는 Assuming a Body다. assume은 ‘취하다’와 ‘추정하다’의 이중적 의미를 가진다. 몸을 ‘취하는’ 것은 이 몸을 내 몸으로 ‘받아들이는’ 행위이고, 몸을 ‘추정하는’ 것은 지나가는 타인의 몸을 여성 또는 남성으로 ‘읽어내는’ 행위다. 전자가 개인의 실존적 행위라면, 후자는 사회적 행위인 셈이다. 그리고 이 둘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한다. 내가 ‘느끼는’ 몸과 사회적으로 ‘읽히는’ 몸은 일치하지 않는다. 인식의 불확실성이다. 팔다리 등 신체 부위가 절단된 사람이 그 부위를 여전히 자신의 몸으로 느끼는 일처럼 말이다. 샐러먼의 문장을 인용하자면, “스스로 갖고 있다고 느끼는 몸이 외부 윤곽에 의해 범위가 정해지는 몸과 반드시 같지는 않으며, 이는 규범적으로 젠더화된 주체에도 해당되는 사실”(13쪽)이다. 그리고 이 논의는 버틀러의 입장과 연결된다. 몸의 물질성 따위는 없다는 게 아니라, 그 물질성이 모호하고 불명확하다는 점이다. ‘취하고’ ‘추정하는’ 몸을 둘러싼 이러한 이중성은 비단 트랜스 체현만의 문제가 아니다. 트랜스 몸은 ‘느끼는’ 몸과 ‘읽히는’ 몸 사이의 간극을, 몸에 대한 인식론적 불확실성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자리다.
느껴지는 몸, 읽히는 몸
게일 샐러먼은 1부에서 정신분석학과 현상학에 초점을 맞춰 트랜스 체현을 지지할 이론적 기반을 마련한다. 정신분석학과 현상학은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는지, 그래서 주체가 자신의 몸을 어떻게 인식하게 되는지 정교한 설명을 제공하며, 주체가 자기 몸을 느끼는 감각과 외부에서 인식되는 몸 사이의 거리를 이론화했다. 저자는 이러한 정신분석과 현상학의 강점을, 트랜스들이 몸, 자아, 정체성을 인식하고 형성하는 방식을 병리화하지 않는 이론을 만드는 데 쓴다.
2부는 트랜스젠더 이론이 ‘사회적 구성’이라는 문제와 맺는 복잡한 관계를 탐구한다. 트랜스섹슈얼 당사자 담론 일부에서 몸의 물질성 혹은 주체의 행위성에 쉽게 의지하고자 하는 점, 그리고 ‘사회적 구성’과 엮이고 싶어 하지 않는 경향에 비판적으로 개입한다. 또한 대중매체든 페미니즘과 게이 레즈비언 학계든 공동체든 트랜스의 존재가 어떻게 여성/여성성에 대한 폭력으로 규정되며 혐오의 대상으로 정당화되었는지 그 방식을 파헤친다.
성차와 법 너머
3부는 페미니즘 몸 이론의 토대로 자리해온 뤼스 이리가레의 성차 이론을 두 장에 걸쳐 상세히 검토하며 그 이론이 트랜스를 배제하는 양상을 분석한다. 남/여 이분법을 전제하는 이리가레의 성차 이론을 단순히 비판하는 것을 넘어, 치밀한 재독해를 통해 더 다양하고 급진적인 성적 차이들로 열어놓을 가능성을 타진한다. “성차를 경이로움의 윤리로 채우려 했던 이리가레의 이상을 살려”(옮긴이 해제, 399쪽) 더욱 다양한 차이들을 위한 이론으로 고쳐 쓰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이어지는 4부는 법과 제도가 트랜스 몸에 특정 젠더를 어떻게 강제하며 관리하는가를 분석하는 부분이다. 샐러먼은 트랜스 저술가 잰 모리스의 자서전 속 사례들을 끌어오며, ‘행정 절차’로 체감되는 법과 제도가 어떻게 개인에게 ‘섹스’를 부여하거나 박탈하는 권력으로 작동하는지를 살핀다. 규범적으로 젠더화된 사람들은 겪지 않는 방식으로 트랜스의 성별/섹스가 어떻게 국유재산화되는지, 잰 모리스가 경험한 장면들(공항 검색대에서 어느 쪽 성별로 읽힐지 긴장하며 기다리는 순간, 그때그때 ‘읽히는’ 성별에 따라 자신을 맞추는 상황, 성별 정정이 끝난 뒤 관련 문서 전체가 기밀문서로 분류되어 모리스 자신도 열람할 수 없게 되는 일 등)로 여실히 보여준다.
혐오 담론이 당연하게 여기는 물질성의 개념을 해체하며
트랜스를 실존의 한 형태로 이론화하는 언어의 필요성
옮긴이 전혜은은 2010년대 중후반부터 급부상한 한국의 트랜스 혐오 담론에서 대표적 혐오 표현 중 하나로 쓰인 ‘젠신병자’(‘젠더’와 ‘정신병자’의 합성어)를 언급하며 해제를 연다. 이 용어는 섹스와 젠더를 각각 물질적인 것, 정신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이분법적 틀을 전제로 한다. 나아가 섹스와 몸이 일치한다고 전제한다. 더 나아가면 몸의 물질성을 반박 불가능한 토대로 전제한다. 전혜은은 해제에서 이렇게 서술한다.
“트랜스젠더를 ‘몸의 물질성’이라는 ‘진짜’ ‘현실’을 감히 무시할 수 있다고 믿는 (정신병리적) 망상에 빠진 존재, 나아가 그 물질적 토대를 파괴하는 위법한 존재로 재현하는 담론이 이토록 오랫동안 강력했던 이유는 한편으로는 시스젠더 이성애 중심적인 사회 체계 때문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전통적으로 사회적 소수자 정치들이 운동의 토대로서 몸의 물질성에 의존해온 경향이 강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몸의 물질성을 옹호하는 주장들은 진보와 보수를 가릴 것 없이 너무 잘 먹히기 때문에 거기 얽혀 있는 혐오와 배제를 논박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곤 한다.” (옮긴이 해제, 383~384쪽)
이 지점에서 게일 샐러먼의 《몸을 추정하기》가 중요한 이유는, 이 책이 오늘의 한국에서도 강력하게 작동하는 트랜스 혐오의 근원적인 작동 방식을 파헤치는 동시에, 그러한 혐오 담론을 반박할 수 있는 이론적 자원을 발굴해내기 때문이다. 단순히 무엇이 옳고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이 몸인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다시 생각하게 함으로써 트랜스 체현을 그저 또 다른 존재 양식으로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다. 병리적 문제가 아닌, 차이의 문제로 말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저자의 의도처럼, 또 옮긴이의 강조처럼 “경직된 규범 체계에 모든 것을 끼워 맞추지 않을 다른 길을 모색”(385쪽)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서론
1부 무엇이 몸인가?
1장 신체적 에고 그리고 물질적인 것이라는 논쟁적 영역
2장 성적 도식: 《지각의 현상학》에서의 전위와 트랜스젠더
2부 호모에라틱스
3장 렉스클럽의 소년들: 트랜스젠더와 사회적 구성
4장 트랜스페미니즘과 젠더의 미래
3부 성차를 초월하기
5장 트랜스 성차의 윤리: 뤼스 이리가레와 성적 결정 불가능성의 자리
6장 성적 무관심/성차의 부재와 한계의 문제
4부 법 너머
7장 문자를 보류하다: 국유재산으로서의 섹스
감사의 말
옮긴이 해제
수록 지면
참고문헌
책속에서
《몸을 추정하기》는 현상학(주로 메를로-퐁티의 작업), 정신분석학(프로이트와 폴 쉴더의 작업), 퀴어 이론을 통해 체현(embodiment)의 문제를 파헤치면서 이 각각의 분야가 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고찰하는 기획이다. 나는 몸의 물질성을 우리가 아무런 매개 없이 접근할 수 있고 인식론적 확실성을 가질 수 있는 것으로 보는 통념에 도전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론적 불확실성이 규범적으로 젠더화되지 않은 존재들의 삶에 윤리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주장하고자 한다. (서론)
이 기획은 트랜스 몸과 트랜스 주체성들의 특이성(specificity)을 드러내는 한편, 그러한 특이성을 엄격히 물질적인 측면으로 정의하고픈 유혹에 저항하고자 한다. 여기서 나의 주장은 트랜스젠더화된 몸이 규범적으로 젠더화된 몸과 다르게 표시되는 물질적 특이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규범적인 젠더의 생산 자체가 몸의 ‘느껴지는 감각(felt sense)’과 몸의 육체적 윤곽 간의 괴리에 의존하며, 이러한 괴리를 병리적 구조로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서론)
현상학, 정신분석학, 퀴어 이론과 트랜스젠더 이론 각각은 몸을 추정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문제에 접근할 때 몸의 ‘느껴지는 감각’을 최우선적으로 강조한다. 이때 각 분과학문이 사용하는 각기 다른 수단들을 함께 검토한다면, 느껴지는 감각이 대개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는 몸의 윤곽이 어디까지인지 그 한계를 파악하는 일에 착수할 수 있다. (서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