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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문화/역사기행 > 한국 문화/역사기행
· ISBN : 9791169190466
· 쪽수 : 180쪽
· 출판일 : 2022-09-30
책 소개
목차
머리말
차례
Ⅰ. 들머리
Ⅱ. 진주와 남명 및 남명학
1. 진주와 남명
2. 남명학의 특징
Ⅲ. 남명학파의 주요 가문과 학맥
1. 남명학파를 이끈 가문들에 대한 개황
2. 진주의 남명학파 주요 가문
1) 진양하씨
2) 태안박씨
3) 창녕성씨
4) 함안조씨
5) 그 밖의 남명학파 가문들
3. 진주의 남명학파 학맥 개요
1) 남명 정맥
2) 겸퇴계 계열
3) 겸율곡 계열
Ⅳ. 진주의 남명학파 인물 및 학문 성향
1. 수우당 최영경
2. 각재 하항
3. 부사 성여신
4. 송정 하수일
5. 능허 박민
6. 겸재 하홍도
7. 지명당 하세응
8. 서계 박태무
9. 태와 하필청과 그 문인들
10. 월고 조성가
11. 회봉 하겸진
Ⅴ. 맺음말
도움받은 글
책속에서
Ⅰ. 들머리
진주(晉州)는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 선생이 만년에 지리산 아래 덕산의 산천재에서 도학(道學)을 강론한 이래 도학에 뜻을 둔 전국 학자들의 관심 대상 지역이 되었다. 산천재는 서울에서 보면 골짝 가운데서도 골짝에 속하는 곳이지만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 1517-1578) 같은 이도 찾아온 적이 있고, 수우당(守愚堂) 최영경(崔永慶) 같은 이도 천 리를 멀다 하지 않고 예를 갖추어 제자가 되었다.
이는 고금을 막론하고 뛰어난 인물이 있으면 그를 직접 만나보고 그에게서 깨우침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늘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 남명이 바로 그러한 인물이었고, 그래서 조선후기 실학파를 일으킨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이 그의 저술 『성호사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천여 년 세월이 흐른 뒤 성스러운 우리 조선이 건국되었고 중세 이후에는 퇴계가 소백산 아래에서 태어났고 남명이 두류산 동쪽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모두 영남 땅인데, 상도(上道)는 인(仁)을 숭상하고 하도(下道)는 의(義)를 주장했다. 유학의 교화와 기상 및 절개가 마치 바다가 넓고 산이 높은 듯하였다. 비로소 문명이 극에 이르렀다.
중원의 문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후 퇴계와 남명이 태어나서 우리 문명이 극에 이르게 되었다고 하는 이러한 언급은, 남명의 학문과 그가 이룬 정신세계의 깊이를 객관적이고도 적확하게 이해한 표현이다.
그러나 남명학파는 그 첫 번째 계승자인 내암(來庵) 정인홍(鄭仁弘, 1536-1623)이 계해정변(癸亥政變)으로 집권한 인조 정권에 의해 적신(賊臣)으로 몰려 처형당함으로써 정치적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었고, 이후 100여 년 뒤 1728년에 일어난 이인좌의 난 때 경상우도의 남명학파가 이에 가담함으로써 설상가상의 타격을 입었다.
그러다가 1796년 정조가 친히 남명에 대한 제문을 지어 제사를 지내게 함으로써 다시 학풍이 일어나기 시작하여, 200여 년 동안 위축되어 있던 사기가 올라 그 이전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학자들이 배출되기에 이르렀다.
남명학파가 그 사이에 어떻게 계승되고 변화되었는지 그 전개 모습을 그려보되, 진주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남명학파 주요 가문과 계해정변 이후 변화된 여러 학문 계열에 따른 학자의 존재 양상을 정리하고, 그 주요 인물이 남명학파의 학문을 어떻게 계승하고 있는가 하는 점을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