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기호학/언어학 > 한국어/한문
· ISBN : 9791169190619
· 쪽수 : 356쪽
· 출판일 : 2022-12-15
책 소개
목차
저자의 말
1. 머리말
연구의 필요성
연구의 목적
2. 꼭 원어민처럼 되어야 하나요?
나는 왜 영어를 배울까?
영국 사람처럼 말하지 못해도 괜찮아
본격적인 한국어교육에 들어가다
왜 한국어를 배울까?
나에게 이 연구는
연구의 주관성
3. 언어 학습과 정체성
3.1. 정체성의 개념과 특성
정체성이란?
정체성을 바라보는 상이한 두 관점
본질주의 관점의 정체성
비본질주의 관점의 정체성
정체성 재정의
3.2. 제2언어습득과 정체성
정체성 연구의 부상
명명: 이름 붙이는 행위
언어 학습은 정체성 작업
언어 학습과 정체성 연구
4. 제2언어습득의 정체성 이론
4.1. 투자
투자와 학습동기
상상의 공동체, 상상의 정체성
4.2. 정체성 협상
정체성 협상 vs. 정체성 형성
다중언어사회와 정체성 협상
언어교육 현장에서의 정체성 협상
4.3. 행위성
행위성이란?
행위성 vs. 자유의지
제2언어 학습과 행위성
행위 주체에 대한 관심: 대화주의
응답, 반응으로서의 행위성
5. 바흐친의 대화주의
5.1. 대화
삶의 구성 원리
응답 가능성
가치가 개입된 언어
발화: 언어 연구의 기본 단위
종결불가능성
5.2. 목소리
다성성
이언어병존
전유와 선택적 동화
5.3. 이데올로기적 되어가기
구심력과 원심력
권위적 담화와 내적-설득 담화
카니발
이데올로기적 되어가기
6. 언어교육과 대화주의
6.1. 인식론적 접근법의 변화
형식주의와 인지주의
사회적 전환
6.2. 대안적 접근법: 바흐친과 비고츠키
바흐친과 대화주의
비고츠키와 사회문화이론
바흐친과 비고츠키의 차이점
7. 정체성 연구 방법
7.1. 질적 연구와 내러티브
질적 연구와 양적 연구
정체성과 질적 연구
질적 연구에서 고려할 점
연구 절차에서의 고려점
7.2. 내러티브 탐구
내러티브
제2언어습득 연구와 내러티브
내러티브 탐구
내러티브 탐구 고려점과 의의
7.3. 연구 참여자 및 연구 자료
연구 참여자
연구 자료
자료 전사
자료 분석
7.4. 연구의 타당성 및 윤리적 고려
연구의 타당성 확보
연구의 윤리적 고려
8. 낯선 언어 한국어
8.1. 주동적인 선택적 동화: 메이끄 이야기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
언어 학습을 좋아하는 다중언어화자
날개를 단 선녀
자전거 타고 언덕 내려오기
8.2. 구별짓기를 위한 선택: 막텔드 이야기
재미있는, 나만의 것
한국어라는 집
시험을 본 다음의 느낌
건포도 쿠키가 아닌 초콜릿 쿠키
8.3. 종결불가능성, 열려 있는 미래: 메리 이야기
태권도, 내 삶의 방식
한국학, 회복되는 자신감
확장된 자신의 재발견
흘러가는 강물처럼
9. 이주, 언어 그리고 나
9.1. 미래의 나를 위한 투자: 브렌다 이야기
힘들게 돌아온 길
마음의 고향, 수리남
정서적 관계를 향한 열망
사랑과 미움의 관계
9.2. 직업으로서의 한국어 학습: 새나 이야기
진정한 취미, 한류
보이는 외모와 일치하지 않는 나
한국어로 맺어진 공동체
산 넘어 산
9.3. 역동적 정체성의 궤적
한국학과 한국어
한류보다는 한국학
변화하는 정체성
한국어에 대한 태도
10. 나의 전공은 한국학
10.1. 유표적인 외국인
저를 구경거리로 보지 마세요
백인은 다 미국인인가요?
저는 영어 연습 대상이 아니에요
저를 위해 한국어로 말해 주세요
제가 한국인처럼 보였나 봐요
교실 안에서도 오인을 받네요
저는 아프리카 사람이 아닌데요
10.2. 과도한 팬, 코리아부
케이팝을 안 좋아하는 이유
오빠와 코리아부
한국학은 코리아부와 무관
한국인이 바라보는 코리아부
코리아부 친구에 투영된 나
코리아부에 대한 상이한 입장
코리아부와 나의 공통점
나는 왕년의 코리아부
코리아부 명명 행위
10.3. 이국적인 성적 대상
빗나간 목적의 언어교환
외국 여자에게 접근하는 한국 남자
쉬운 여자 고정관념
10.4. 정체성 갈등의 현장
사회문화적 요소로 인해 발생한 정체성 갈등
다양한 코리아부의 스펙트럼
개인사에 따라 상이한 갈등 수용
시공간에 따라 상이한 갈등 양상
11. 경계에서 형성되는 대화적 정체성
11.1. 한국학 전공의 자리매김
한국학에 대한 차가운 시선
주변부로 취급 받는 현실
원하는 것을 하고 있다는 만족감
한국어 학습자와 한국학 전공생 사이의 줄타기
부전공으로 불투명한 미래 조율하기
취업으로만 미래를 고정하지 않는 유연성
11.2. 외국인 사이의 구별짓기
보통 외국인
특별한 외국인
다른 외국인들과 다른 나
11.3. 한국과의 거리 조정
한국인과 물리적 거리 두기
상상의 공동체 가까이하기
한국인과의 거리 좁히기
필수적인 제3의 공간, 사이의 공간
느슨한 연대를 통한 거리 조정
11.4. 개인적 삶의 성장
변화와 실수에 대한 용납
도전과 모험에 대한 자신감
독립심과 사회성 발달
새로운 상호문화적 가치 발견
12. 이데올로기적 되어가기
대화적 정체성
정체성 협상 과정
끝나지 않는 종결불가능성
한국어교육과 이데올로기적 되어가기
에필로그
참고문헌
<부록> 반구조화 면담에서 사용된 질문 문항
찾아보기
저자소개
책속에서
머리말
우리는 언어와 함께 성장하고 이야기로 자신을 만들어 간다.
You are what you eat이라는 말처럼 내가 먹는 것을 비롯하여 내가 하는 말과 하는 행위는 모두 그 중심에 ‘내가 누구인가, 남들은 나를 어떻게 보는가, 나는 남들에게 어떻게 보여지고 싶은가’라는 정체성의 문제가 있다. 정체성에 대해서 인간은 끊임없이 탐구해 왔으며 여러 학문 분야에 걸쳐 이 화두는 다양하게 연구되어 왔다. 그리고 한국어교육을 포함하여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외국어 학습과 제2언어 습득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그것을 사용하는 행위 역시 사회적으로 나를 구성해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한국어교육이 단지 언어 지식의 축적이나 의사소통의 기능적인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어를 배우고 사용하는 현장에서 야기되는 정체성 갈등과 제구성의 현장이라는 것을 명확히 함으로써 더 넓은 시각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사용하는 이들과 이들의 언어하기 현장을 보여 주고자 한다. 그리고 특별히 유럽에서 한국학을 전공하고 있는 외국인들의 한국어하기에 초점을 둔다. 유럽이라는 지정학적 배경은 한국어하기를 하는 이들에게 다른 색깔의 병풍이 되어 이들이 자국에서 한국어에 관심을 갖고 배우는 과정에서뿐 아니라 한국을 방문해서 체류하는 동안 생경한 갈등을 일으킨다. 주목할 것은 이들에게 언어로 인한 의사소통적 갈등보다 낯선 이방인이자 외부인으로서 겪는 존재론적 갈등의 골이 더 깊었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통해서 대화 속에 참여한다는 바흐친의 말처럼 외국어 학습은 낯선 언어를 통해 익숙하지 않은 대화를 시작하는 긴 여정에 비할 수 있다. 연구 참여자들의 한국어하기에 드러난 정체성 갈등의 현장은 이들이 외국에서 한국학을 전공하는 자로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습자로서, 낯선 한국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며 살았던 자로서, 그리고 불확실성을 열려진 미래로 포용하는 자로서 타자와 협상하고 자신을 재구성하는 과정이었다. 바흐친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이들의 한국어하기는 종결 불가능하며 역동적인 ‘이데올로기적 되어가기’의 과정인 것이다.
이 책은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하기에 대한 연구자의 이야기를 선두로 언어 학습과 정체성, 제2언어습득에서의 정체성 이론을 거쳐 바흐친의 대화주의 및 언어교육과 대화주의의 연결 고리를 살펴본다. 연구의 중심을 이루는 한국학 전공생들의 학습 경험 이야기는 참여자들의 인종에 따라 개별 장으로 나누어 제시하였고 연구 참여자들의 정체성 갈등 현장과 협상 그리고 이들이 형성하는 대화적 정체성을 순차적으로 논의하였다. 전반적으로 책의 각 장마다 상술한 세부 제목들을 통하여 그 내용을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구성하였기 때문에 독자의 필요에 따라 원하는 내용을 찾아보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독자가 흥미로운 부분을 먼저 선별하여 읽더라도 이해에 큰 무리가 없으리라 생각된다.
대화가 나 혼자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듯이 이 책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많은 분들의 도움이 컸다. 무엇보다 연구 참여자인 메이끄, 막텔드, 메리, 브렌다, 세나가 없었다면 이 연구는 진행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언어를 늘 새롭고 낯설게 보도록 가르쳐 주신 김하수 선생님과 학문 탐구의 지난한 여정을 동행과 성장이라는 키워드로 함께 해 주신 강현화 선생님 덕분에 이 연구가 태동되고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거칠고 부족한 글이 단일한 목소리의 독백주의를 벗어나 대화적인 다성성을 지닐 수 있도록 아낌없이 조언해 주신 원미진, 조태린, 김현강, 이정은 선생님의 도움도 빼놓을 수 없다. 단행본 출판에 초석을 놓아주신 이윤진 선생님과 이 책이 나올 수 있도록 실무를 맡아 주신 한국문화사 관계자분들께도 감사한 마음이 크다. 끝으로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는 부모님과 동생, 함께 걸어가는 남편 그리고 엄마의 커리어와 함께 성장해 온 두 아들 유진이와 유찬이에게 이 책이 작은 보람이 되길 바란다.
5. 바흐친과 대화주의
러시아의 철학자이자 언어학자 및 문학이론가로 알려진 미하일 바흐친(Mikhail Mikhailovich Bakhtin, 1895-1975)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사상가 중의 한 명이다. 1960년대 중반부터 재발견되기 시작한 그의 이론은 철학, 기호학, 사회이론을 아우르며 교육학을 포함하여 제2언어습득 분야에까지 상당한 시사를 던져 준다. 현대 사회언어학의 성과를 이미 반세기 전에 예고한 언어철학자로서 바흐친은 인문 사회학의 각 분야에서 재평가되고 있으며 그의 이론은 80년대에 걸쳐 지금까지 영미와 서유럽에서 ‘바흐친 산업’이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로 그 폭발적인 관심의 대상이었다(Clark & Holquist, 1984). 오늘날 바흐친의 대화주의는 문학뿐만 아니라 문화와 철학, 사회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 활발하게 적용되며 발전을 거듭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1980년대 후반 일부 연구자들이 주목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90년대 러시아 문학자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하였다(이강은, 2011).
제2언어습득 연구 분야의 경우, 1990년대 후반에 주류를 형성하고 있던 기존 인지주의적 관점에 대한 비판과 함께 ‘사회적 전환(social turn)’이 제기된 초반에는 바흐친의 대화주의와 비고츠키의 사상이 거의 동등하게 인지주의를 보완, 대체할 수 있는 철학적 기반으로 소개되었다. 그러나 추후 언어를 사고의 도구로서 전면적으로 제시한 발달심리학기반의 비고츠키의 사회문화이론에 더 비중이 실리면서, 언어의 본질을 대화로 보며 철학적으로 설명한 바흐친 이론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된 경향이 있다(White, 2014).
바흐친은 기본적으로 언어를 규범적인 형태의 추상적이고 닫힌 기호 체계의 집합으로 보는 형식주의자들(formalists)과 입장을 달리했다. 즉 언어에 고정되고 불변하는 의미가 있다고 보는 소쉬르의 견해에 대하여 반대 입장을 제기한 바흐친에게 언어의 의미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유동적이며 개개인이 처한 상황, 맥락, 환경, 개인의 의도나 의식이 언어 사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대화주의(dialogism)’로 대표되는 바흐친의 언어 이론은 언어와 텍스트 개념의 특징을 ‘존재(being)’가 아닌 ‘생성(becoming)’으로 봄으로써 의미의 불확정성, 주체 개념에서 타자의 중요성, 초월적이고 단일한 원리의 거부 등 포스트모더니즘 또는 후기구조주의로 통칭되는 현대의 예술·사상적 흐름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이강훈, 2015).
5.1. 대화
삶의 구성 원리
바흐친의 관점에서 언어의 본질은 항상 대화적이다(Bakhtin, 1981). 따라서 바흐친에게 가장 핵심적인 개념은 ‘대화(dialogue)’인데, 여기서 의미하는 ‘대화’는 일종의 독특한 세계관으로서 바흐친의 ‘자아(self)-타자(other)’ 개념이 잘 드러나는 용어이다. 바흐친은 정신보다는 타자로 대표되는 세계를 더 강조하고 ‘타자성(otherness)’을 근거로 삼는 자아 개념을 기반으로 하여 ‘대화’를 조망하기 때문에, 바흐친의 ‘대화’는 단순히 수동적인 참여자가 등장하는 회화(conversation)나 대화 참여자간의 말 교환(verbal exchange)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Vitanova, 2013b). 그래서 대화주의의 ‘대화’는 표현과 이해로 이루어지는 인간의 의사소통 현상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삶의 구성 원리를 설명하는 확장된 개념이 된다(정우향, 2013:287).
응답 가능성
바흐친(1984, 1986, 1990)의 ‘대화’는 발화자와 청자라는 서로 다른 주체가 공동으로, 동시에 참여하는 의사소통이며 서로의 발화에 대한 ‘응답 가능성(answerability)’의 실현을 그 특징으로 한다(Vitanova, 2013a:153). 한 번 말하고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응답이 무수히 오가는 공간인 ‘대화’는 화자와 청자가 서로에 대한 응답을 통해 각자가 타자로 변모되는, 즉 서로에 대하여 타자가 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바흐친은 ‘대화’를 단순한 의사소통 기능을 넘어선, 다시 말하자면 자아와 타자를 연결시키는 기능으로 인식한다. 바로 ‘나’와 ‘타자’의 긴밀한 연관인 ‘대화’를 통하여 주체는 세계를 한 방향이 아닌 양방향 혹은 여러 방향에서 볼 수 있고, ‘대화’를 통하여 능동적으로 세계에 참여하면서 동시에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Dialogue here is not the threshold to action, it is the action itself. It is not a means for revealing, for bringing to the surface the already ready-made character of a person: no, in dialogue a person not only shows himself outwardly, but he becomes for the first time what he is. (Bakhtin, 1984:252)
가치가 개입된 언어
주목할 점은 ‘대화’는 가치중립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바흐친에게 언어는 항상 이데올로기적이고 ‘사회적으로 중요한 것을 위해 분투하며 세계를 바라보는 독특한 관점’(Bakhtin, 1981:333)을 나타낸다. 대화의 참여자들은 적극적으로 가치가 개입된, 이념정치적인(ideopolitical) ‘발화’를 만들어낸다. 다시 말하면, 바흐친의 대화주의에서 언어는 중립적일 수가 없다. 언어는 이미 화자의 의도, 억양과 악센트, 사회적인 가치와 기대, 청자의 기대와 향후 예상되는 반응에 따라 재구성된 이념적인 매개체이기 때문이다(이수원, 2012). 대화 참여자들은 타자의 목소리를 자신의 것으로 전유하여 발화 의미를 구성하고 공유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이들은 대화 상황을 구체적으로 평가하고 참여하며 자신의 의도를 실현하는데 동시에 ‘말의 장르(speech genre)’라는 언어 사용에 대한 사회적인 제약을 받으며 언어를 사용한다. 따라서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 바흐친의 ‘대화’는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인간들이 서로 만나고 서로 완성시키는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방식인 ‘대화주의’에서 파생되는 인식적이고도 윤리적인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de Man, 1986).
또한, ‘대화’는 또한 말이 사용되는 ‘맥락(context)’이기도 하다. 언어의 본질은 항상 대화적이기에 언어의 의미는 언어 자체의 구조나 논리에서 찾을 수 없고, 그 언어가 사용되는 맥락인 대화 관계 안에서만 이해되어질 수 있다. 화자, 청자 그리고 대화 대상 간의 관계로 구성되는 대화의 맥락은 매우 다양하고 구체적이기 때문에 대화적 행위에서 맞이하는 특정한 대화 상황에 맞추기 위해 대화 참여자들의 관계를 파악하고 그에 따라 적절한 언어를 선택하려는 대화 참여자의 적극적인 역할이 전제된다(이수원, 2012:260).
발화: 언어 연구의 기본 단위
바흐친은 언어의 대화적 본질상 언어 연구의 기본 단위는 개별 문장이나 구조가 아니라 ‘발화(utterance)’이어야 함을 주장한다. 발화는 “특정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반응”으로, 발화는 하나의 단어에서 여러 문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할 수 있으며 각각의 발화는 의도성을 지닌다(Bakhtin, 1986:67). 발화는 언어를 매개로 하는 활동(speech activity)의 현실적인 단위이다. 따라서 발화는 의사소통 행위를 분석하는 최소의 분석 단위가 된다. 소쉬르가 추상화된 언어(langue)만을 유일한 연구 대상으로 삼고 문장을 연구의 기본 단위로 삼았던 것과 대조적이다. 바흐친은 화자에 대한 응답성과 의사소통적 요소가 결여되어 있는 문장은 언어의 기본 단위가 될 수 없다고 간주하였다.
The sentence as a unit of language lacks the capability of determining the directly active responsive position of the speaker. (Bakhtin, 1986:82)
다시 말하면, 바흐친은 문장을 대화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제도적, 문화적, 개인적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발화, 즉 ‘맥락화된 언어 활동(contextualized speech activity)’을 통해서 대화가 구성 및 확대된다고 보았다(1986:73). 특히 발화의 대화적 특성과 관련하여 바흐친은 “모든 발화는 주어진 특정한 영역에서 언어 공동체의 연쇄에 대한 반응으로서 간주된다(1986:91)”라고 하였다. 이 말은 사회적, 역사적으로 구성되는 발화의 응답적이고도 대화적인 면모를 나타낸다. 발화가 항상 누군가를 향하여, 즉 ‘선행된 발화들’에 대한 반응으로서 이루어진다는 ‘지향성(addressivity)’은 발화의 중요한 특성이 된다. 지향성은 언어의 의미가 역사적으로 “언어 공동체의 연쇄(the chain of speech communion)”, 즉 선행된 발화를 통해 형성되어 왔음을 전제로 하는데, 즉 어떤 말을 할 때는 그 말에 목적성 및 방향성과 함께 언어 공동체에서 특정한 의미로 사용된 역사도 함께 담겨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의미는 과거의 의미 그리고 앞으로 미래에 계속 될 대화의 연속선상에 있으므로 어떤 발화의 의미가 무엇이라고 최종적으로 단정하여 못 박을 수 없다.
종결불가능성
대화가 응답과 재응답의 끊임없는 연쇄를 통해 의미가 구축되어가는 것이기에, 발화는 항상 이전 발화들에 대한 응답으로서 지속적으로 창조되고 형성된다. 그러므로 이 지점에서 바흐친은 발화의 ‘미완결성’ 또는 ‘종결불가능성’(unfinalizability)’을 주장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의 발화만으로는 의사소통이 홀로 완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발화의 응답적인 지향성을 또한 강조한다(Bakhtin, 1986). 바흐친의 ‘종결불가능성’은 우리 삶에서 아직 결정적인 결말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비완결적 입장을 취하며 열린 가능성을 지향하는 태도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이는 발화의 섣부른 결론적 단정을 거부하고 동시에 발화를 잠정적 해결책과 같은 결과물(predetermine outcomes)로 삼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흐친에게 완전한 종결은 오히려 사고의 사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White, 2014:224).
마지막으로, 바흐친은 발화를 “말의 정합성(coherence)과 체계성이 특정 상황에서 이루어진(situated) 행위와 접촉해서 투쟁하는 장소(a site of struggle)”로 보았다(Clark & Holquist, 1984:10). 그러므로 자아-타자, 내부-외부 세계가 충돌하는 영역, 즉 ‘경계(boundary)’에서 벌어지는 ‘대화’라는 역동적인 사건은 궁극적으로는 자아와 타자를 연결시키며 주체를 형성해 가며 개인의 총체적인 삶과 관련되는 “이데올로기적 되어가기(becoming an ideological process, Bakhtin, 1981:342)”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