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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70403227
· 쪽수 : 328쪽
· 출판일 : 2025-07-20
책 소개
연소민의 신작 장편소설 『가을 방학』 출간
전 세계가 주목한 한국 신예 작가 연소민의 신작 장편소설 『가을 방학』이 출간된다. 연소민 작가는 2022년 한국소설신인상 수상으로 데뷔한 후, 첫 장편소설 『공방의 계절』로 영국 펭귄랜덤하우스, 미국 알곤퀸, 이탈리아 리졸리, 일본 고단샤 등 해외 28개국의 유수한 출판사에 판권이 팔리며 전 세계에 K-힐링소설의 돌풍을 일으키며 큰 주목을 받았다. 스웨덴 바이킹 출판사의 로자 시렌버그 편집장은 “연소민은 까칠한 시선과 따뜻한 마음으로 번아웃된 독자들을 공감과 치유의 여정으로 이끈다”라고 평하며 그의 문학적 감수성을 극찬했다.
이번 『가을 방학』 역시 작가의 특징적인 서정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상처 입은 모녀가 돌봄과 이해를 통해 다시 관계를 복원해가는 여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맺어진 인연도 다시금 새롭게 쓰일 수 있음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이 소설은 모녀 관계의 재발명, 즉 서로를 다시 이해하고 수용해가는 과정을 담아낸다. 엄마의 머리를 묶어주는 장면, 웃음과 울음이 닮았음을 깨닫는 순간들, 말 대신 몸짓과 침묵으로 나누는 마음들은 관계를 다시 짓는 감정의 언어다.
『가을 방학』이 보여주는 돌봄은 단순한 역할의 전복이나 책임의 전이로 환원되지 않는다. 딸 솔미는 엄마를 보살피는 행위를 통해 점차 어머니를 하나의 온전한 존재로 받아들이고, 그 이해는 단절된 정서적 유대를 다시 잇는 출발점이 된다. 그렇게 이 소설은 돌봄을 하나의 실천이 아닌, 존재의 방식으로 확장해 보여준다. 엄마 없이 살아가는 법을 배운 딸이, 이제는 엄마 덕분에 혼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음을 고백하는 순간, 우리는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 앞에 다시 서게 된다. 눈에 띄지 않는 일상의 감정들, 누적된 상처의 침묵, 그리고 그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관계의 맥박은 섬세하면서도 절제된 언어로 포착된다.
『가을 방학』은 현대 한국문학에서 드물게 감정의 철학을 품은 작품이다. 눈에 띄지 않는 일상의 감정들, 누적된 상처의 침묵, 그리고 그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관계의 맥박을 작가는 섬세하면서도 절제된 언어로 포착해낸다. 가족은 파편화되고, 언어는 자주 오역되며, 기억은 틈새에서 부유하지만, 이 모든 혼란 속에서도 관계는 조용히 회복되고 이어질 수 있다. 상처는 완전히 지워지지 않지만, 더 이상 삶을 삼키지는 않는다. 그것이 이 소설이 독자에게 건네는 가장 조용하고도 단단한 안부이며, 모든 관계는 결국 다시 이어질 수 있다는 믿음에 대한 담담한 선언이다.
말하지 못한 감정들을 싣고 떠난
엄마와 딸의 『가을 방학』
‘모녀’라는 오래된 문장을 고쳐 읽고
새로운 문맥으로 되살리는 관계의 서정
『가을 방학』은 부모의 보호를 받는 ‘딸’의 자리에서 벗어나, 어머니를 돌보는 새로운 정체성을 자처하는 솔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제부터 난 엄마의 엄마가 될 거야. 내가 엄마를 다시 키워낼 거야.” 솔미의 이 선언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무너진 가정 안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결단이자, 치유를 향한 첫걸음이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실종은 가족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어머니는 무기력과 충동적인 수집 증세에 시달리며 서서히 무너져간다. 남겨진 공백을 물건으로 메우려는 어머니의 모습 속에서, 솔미는 집안일을 맡고, 엄마를 지켜보며, 어린 나이에 가정의 중심을 붙들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소설은 이 과정을 단순한 ‘역할의 전복’으로 그리지 않는다. 솔미는 어머니를 돌보는 과정에서 점차 그녀를 이해하게 되고, 응어리진 상처들 속에서 치유의 실마리를 찾아간다. 관계의 회복은 단순한 책임의 교대가 아니라, 서로를 하나의 인간으로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을 소설은 차분하게 보여준다.
『가을 방학』은 상처 입은 모녀가 돌봄과 이해를 통해 다시 관계를 복원해가는 여정을 섬세하게 담아냈다.
“상처는 남지만, 더 이상 삶을 삼키지 않는다”
고통을 건너 성장에 이르는 조용하고 단단한 서사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생긴 상처는, 다시 가족 안에서 봉합된다. 솔미는 어머니의 머리를 묶으며, “엄마를 내 몸처럼 아낀다”는 마음을 되새긴다. 이는 어머니가 베풀었던 돌봄을 되돌려주는 순간이자, 끊어진 정서적 유대가 다시 이어지는 시간이다.
솔미의 성장은 아버지의 부재로 시작된다. 평범했던 가족의 풍경이 환상에 불과했음을 깨닫는 순간, 유년기는 막을 내린다. 사랑과 그리움, 배신과 분노가 얽힌 감정은 그녀를 깊은 고립으로 이끈다. 아버지와 나누던 ‘심장 놀이’를 떠올리며, 과거의 진실을 묻는다. 사랑은 고립을 부른다는 믿음이 그녀 안에 서서히 뿌리내린다. 어머니의 쇠약을 지켜보며, 솔미는 어린 딸이기를 멈춘다. 스스로를 다잡고 무너진 세계를 감당하려 하지만, 진정한 성장은 책임을 떠안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상처를 직면하고 억눌렀던 감정과 화해하며, 솔미는 서서히 어른이 되어간다.
서랍 깊숙이 숨겨진 어머니의 번역가 상장은, 부모도 한때는 꿈꾸던 아이였음을 일깨운다. 이해는 원망을 녹이고, 사랑은 다시 조용히 살아난다. 상처는 남지만, 더 이상 삶을 삼키지 않는다. 소설은 고통을 건너 성장에 이르는 조용하고 단단한 여정을 그려낸다.
가족의 붕괴와 사랑의 결핍,
기억의 회복과 정체성의 형성을
섬세한 감정으로 그려낸 소설
소설의 배경인 고흥은 단지 장소를 넘어, 잃어버린 시간과 기억, 정체성을 복원하는 중요한 공간으로 그려진다. 어머니가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이유는 단순한 향수가 아니다. 고흥은 그녀가 사랑했던 이를 기다리던 곳이자, 삶이 가장 빛나던 순간을 간직한 장소다. 아버지가 다시 나타나길 바라는, 어머니 마음속 마지막 희망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반면 딸 솔미에게 고향은 낯설고 이질적이다. 이사를 반복하며 살아온 그녀에게 ‘고향’은 모호한 개념일 뿐이다. 그러나 외할머니 집을 방문하고,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솔미는 ‘장소가 지닌 기억의 힘’을 서서히 체감한다. 어머니가 집을 청소하고, 감을 따주며 나누는 시간은, 단절된 가족을 다시 잇는 매개가 된다.
고흥은 어머니의 과거와 솔미의 현재, 그리고 사라진 아버지의 흔적이 겹쳐지는 장소다. 이곳에서 솔미는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 그 이해를 통해 자신과 가족의 정체성을 새롭게 써 내려간다. 고흥은 결국 솔미에게도 상실된 가족의 의미를 회복하는 공간이 된다.
또한, 친구 수오와의 재회는 솔미가 잃어버린 기억의 조각을 하나하나 이어붙이는 과정이다. 함께 들었던 보사노바 음악, 아버지와의 놀이, 어머니의 이해되지 않았던 행동까지, 모든 기억은 고흥이라는 배경 속에서 제자리를 찾아간다.
『가을 방학』은 가족의 붕괴와 사랑의 결핍, 기억의 회복과 정체성의 형성을 섬세한 감정으로 그려낸 성장소설이다. 상처 입은 모녀가 서로를 돌보며 이해해가는 여정은 우리 모두의 삶과 닮아 있다. 짧지만 특별한 ‘가을 방학’ 동안, 무너진 가족은 새로운 방식으로 서로를 다시 이어간다.
목차
프롤로그_보사노바의 계절
바닷가 마을
엄마를 키우는 방법
가을 여행
에필로그_가을에 보내는 안부 인사
작가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엄마는 뿌리 반쪽을 잃은 나무처럼 휘청거렸고 잎과 줄기가 빠르게 썩어갔다. 엄마 속에 있는 눅진하고 척척한 감정의 덩어리는 어렸던 나에게도 티가 났다. 많은 가구와 물건이 집에 들어찼지만 내가 느끼기에 집에서 가장 무거운 것은 엄마 같았다. 너무 많은 괴로움이 몸속에 쌓여 마른 엄마가 무거워 보일 정도였다.
나는 엄마가 딸의 머리를 묶어주는 행위에 대해 생각했다. 옛날에 할머니도 엄마의 머리를 매일 묶어줬을 것이다. 엄마가 나에게 그랬듯이.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는 실에 대해 들어본 적 있었다. 모녀를 연결하는 건 아무래도…… 머리카락 같았다. (…) “머리를 묶어주는 건 엄마들이 딸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특별한 방식이야. 나는 너를 내 몸처럼 신경 쓰고 아끼고 있다는 뜻이거든.” 엄마가 뒤를 돌아 나를 봤다. “꽤 맘에 드네.”
나는 이번에 딸이 엄마에게 머리를 묶어주는 행위에 대해 생각했다. 당시에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었지만, 엄마가 딸에게 해주는 것과는 그 의미는 조금 다른 것 같았다. 그때 내가 느낀 것은 아마도 ‘당신이 가엽고 안쓰러워요’ 정도이지 않았을까…….
내가 사는 곳은 집이 아니라 엄마의 가슴속 같았다. 그 집은 쇠락해 무너져 내린 엄마 그 자체였다. 집은 사는 사람을 그대로 투영해 보여주므로. 나는 그 집 벽에 묻은 수많은 거무튀튀한 얼룩 중 하나였다. 그 얼룩은 아무리 걸레로 닦아도 사라지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면적을 키워나가다가 결국 집과 하나가 되었다. 나는 오직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엄마의 집에 함께 갇힌 것이다. 엄마가 나를 당신의 몸처럼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머리카락을 묶듯 모녀 사이를 단단하게 묶어버린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