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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청소년 > 청소년 문학 > 청소년 소설
· ISBN : 9791170410096
· 쪽수 : 176쪽
· 출판일 : 2019-10-24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1. 내지에서 온 신상품
2. 쩨이 오 듸 케이, 여기는 경성방송국
3. 뜻밖의 만남과 연락
4. 말을 파는 말장수와 꾀꼬리
5. 새말 길거리에 떨어진 비단
6. 단둘만의 시간
7. 창경원 밤놀이 데이트
8. 토막촌에 뜬 초승달
9. 사라진 노라와 인형의 집
10. 무너진 토막 속 깨진 그릇들
11. 여기는 경성 모던방송국올시다
12. 조선의 아나운서 모던걸
13. 방송 후일담
저자소개
책속에서
이 소설의 주인공 ‘화경’은 부유한 집안의 외동딸입니다. 대지주인 아버지 덕에 부족함 없이 잘 살아왔습니다. 그런 그가 마름의 딸을 위해 발 벗고 나섭니다.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깨려 합니다. 화경을 움직인 건 바로 근대 시민의식입니다. 우리의 근대 문명은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이식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때에 우리 실정에 맞는 근대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역사와 맞서 싸우면서 우리는 진짜 근대를 만들어 왔습니다. 의병 활동, 삼일 만세운동, 항일 무장 투쟁, 민주화 운동을 전개하며 ‘자유, 평등, 형제애(연대)’라는 시민의식을 키웠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우리만의 근대를 일궈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1930년대 화경이 막 시민의식에 눈뜬 그때와 타락한 권력을 촛불로 몰아낸 현재는 맞닿아 있습니다. 화경과 우리 모두 가 보지 않은 새로운 일에 들어선 셈입니다.
화경은 정신이 부르는 노래에 빠져들었다. 그동안 아지랑이처럼 희뿌옇게 보였던 것들이 지금 또렷하게 보인다. 꿈속에서 아련하게 보였던 옛 동무, 미쓰코시 백화점에서 잠시 스쳐 간 여자아이, 제사공장 바닥에 비단 꾸러미를 떨어뜨렸던 앳된 여직원, 손가락이 잘린 채 토막에서 힘들게 사는 여직공, 소중한 보금자리를 빼앗긴 채 울고 있는 친구는 분명히 애선이다. 아나운서 입사 시험에서 떨어진 졸업반 여학생, 남의 목소리와 남의 이름을 대신해야 하는 아나운서 보조, 마음에도 없는 사람과 혼인해야 하는 외동딸은 화경 자신이다. 정신이 부른 노랫말처럼 그 모든 건 다 지나갔다. 이제 다가오는 인생의 봄을 맞이하면 된다.
‘인생의 봄’이 끝났다. 이제 화경이 진짜 아나운서가 될 시간이다.
“인생의 봄 잘 들었습니까? 이제 청취자의 편지를 소개할 시간입니다. 첫 사연은 신당리 토막촌에서 온 것입니다.”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입니다. 경청해 주신 청취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경성 모던방송국 아나운서.”
전날 밤, 마무리 멘트를 쓰던 화경은 여기에서 펜을 놓았다. 자신이 누군지 실명을 밝히는 건 제 발로 감옥에 가겠다는 뜻이다. 결코 그럴 수는 없다. 그렇다면 가명을 써야 한다. 화경은 여러 가지 가명을 지었다. 강숙련, 박선채, 윤혜숙, 이설경, 김초선, 김순희, 조명옥, 안금자, 백난정, 장용부, 노영란. 쓸 만한 가명이 얼추 지어졌다. 그중 하나를 고르면 되었다. 그런데 화경은 망설였다. 자기 마음대로 지은 이름이 진짜 이름이라면 애꿎은 사람이 화를 당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가명도 실명만큼 위험했다.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은 채 시간만 흘러갔다. 그러다 동이 틀 무렵 알맞은 이름을 찾았다.
“지금까지 경성 모던방송국 아나운서 ‘모던걸’이었습니다. 여기는 경성 모던방송국이올시다. 케이. 디.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