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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비평/칼럼 > 한국사회비평/칼럼
· ISBN : 9791171521395
· 쪽수 : 200쪽
· 출판일 : 2026-05-31
책 소개
‘방문 진료’는 쉽게 말해 왕진, 의사와 간호사가 직접 거주지에 찾아가 의료 행위를 하는 것을 말한다. 아직 우리에게는 낯선 영역이지만, 제주에서 진찰 가방과 여러 의료 용품들을 메고 방문 진료를 다니는 의사가 있다. 그는 요양원과 가정에서 방문 진료를 통해 여러 노인들과 취약계층을 마주한다.
“혼자 있는 할망의 모습은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다. 앉아 있는 자리는 언제나 침대 아니면 소파이고, 맞은편에는 텔레비전이 켜져 있으며, 손이 닿기 좋은 오른쪽 편에는 약 봉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다.”
진료실이 아닌 노인들의 삶의 자리에서 대면하면서, 그들에게 진짜로 필요한 돌봄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는 ‘돌봄’과 ‘노인’ 그리고 ‘존엄’이라는 키워드를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이 세 가지는 특정한 누군가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우리 모두가 마주하게 될 현실이기 때문이다. 돌봄의 실상을 마주하면서 그 생각의 기록을 써 내려갔다. 탁상행정으로는 절대 알 수 없는 ‘돌봄’의 진짜 실체를.
그는 자신을 ‘위선적인 의사’라고 말하며 의사로서의 자질을 끊임없이 의심한다. 또한 의사와 환자라는 (정보의 격차로 인해 생겨나는 어쩔 수 없는) 수직적 관계에서 스스로 내려와 환자들의 삶에 들어가고자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 기록은 읽어야 할 가치가 생긴다.
“순간 나는 지금까지 진료실과 처치실에서 고상하고 깔끔한 진료만 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봄은 달랐다. 주저없이 달려들어야 하고, 스스럼없어야 했다. 때로는 저돌적이어야 했다.”
지금 당장은 우리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노인이 된다. 이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이 기록을 읽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이 기록이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우리의 미래를 마주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동거인과 함께 살고 있는 한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해 방문 의료를 신청했다. 집에는 약 봉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고, 철 지난 옷가지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할머니가 원하는 치료는 약뿐이다. 지금도 많은 약들을 먹고 있음에도, 약을 원한다. 할머니를 구원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처럼.
아내와 상주 간병인과 살고 있는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걱정이 없다. 침대 옆에는 위급 시 누르면 되는 벨이 있고, 할아버지의 손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전자기기 등을 알맞게 설치해 두었다. 식사는 때마다 늘 몸에 좋은 음식을 드시고, 주말마다 자식들의 간병을 받는다. 할아버지 집에는 수북한 약 봉지가 없다. 의사와 상의해서 알맞은 양을 먹는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집에서 임종을 맞이하실 것이다.
돌봄과 노년의 모습은 다양하다. 이를 단순히 삶의 결과물이라고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모두 치열한 삶을 살아왔더라도 그 방향이 조금씩 엇박자가 될 수 있다. 이 모습은 우리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현재 통합돌봄법이 시행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고 계급 격차의 심화로 사회경제적 약자가 적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긍정적 전환점이라는 의미를 둘 수 있다. 법이 있으니 시간이 흐를수록 돌봄에 필요한 모든 자원과 제도가 필요에 맞게 모습을 갖추고 자리를 잡을 것이라는 기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행정 처리에 급급해 실제로 돌봄을 받아야 하는 이들에게는 돌봄이 돌아가지 않는 모습이 보이는지, 더 나은 돌봄을 위해 무엇을 다듬어야 하는지 지켜보아야 한다. 이는 누군가를 위한 것도 아니다. 어쩌면 우리의 모습을 위한 투자이자 관심이다.
목차
프롤로그
기록 1. 돌봄
상대를 향한 시선
돌봄의 풍경
돌봄의 근거 1
돌봄의 근거 2
방문 진료의 역동성
신뢰 없는 돌봄
방문 진료의 한 축, 냄새
돌봄의 단절
돌봄의 다양한 모습
그녀의 돌봄
기록 2. 노인
비위관, 당사자는 배제된 생명 유지를 위한 최고의 도구
<산타루치아>, 여든 할망의 노래
할망의 임종
걸을 수 있다는 행복
노인이 복용하는 약
끌어들임
노인의 외로움
기록 3. 시선
솔직한 위선
1인 가구 시대의 풍경
공간과 권력
안락사
죽음
에필로그
참고한 자료
저자소개
책속에서
그러나 한 존재를 둘러싼 서사와 환경을 그의 의학적 문제와 함께 바라보기 시작하면, 더 이상 그들을 환자라고만 부를 수 없게 된다.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은 생활인이며, 몸이 불편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처럼 비슷하게 살아갈 수 없는 이유를 다양한 시선에서 깨닫게 된다. 그 이유들을 하나하나 풀어 가는 과정은, 진료실에서 의학적 문제만을 다루는 일보다 좀 더 근본적 해결에 가깝다.
나는 직업상 어쩔 수 없이 냄새로 가득한 삶을 살아간다.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냄새로부터 나는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환자를 둘러싼 환경을 감지한다. 그리고 내 부모님들의 연세가 지긋해지신다. 그것을 냄새로 깨닫는 건, 역시 내 직업적 특성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자기존엄은 상실한 채 조밀한 사회 시스템에서 밀려난 자신의 처지와, 시스템의 중심을 구성하는 자본 구조에서 밀려난 이들의 비관일 뿐이다. 그러한 죽음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고, 어느 누구도 살아있음의 비루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자발적 삭제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