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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71717187
· 쪽수 : 108쪽
· 출판일 : 2024-10-14
책 소개
목차
부오니시모, 나폴리
작가의 말
정대건 작가 인터뷰
저자소개
책속에서
“정해진 경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안 될 것 같은 게 꼭 내 몸에 갇힌 기분이었어요. 내가 선택한 것도 아닌 사고방식으로 평생 살다 간다는 게 싫었어요. 유난이죠?”
나는 쓸쓸하게 자조했다.
“아니요. 유난 아니에요. 저도 그래요.”
한은 공감하는 눈빛을 보내며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선화 씨 말 듣고 좀 놀랐어요. 제 몸에 갇힌 기분. 저도 비슷한 걸 느끼거든요.”
누구보다도 자유롭게 살고 있는 듯 보이는 한이 그런 말을 하자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어느덧 우리는 헤어지기로 한 까르푸 마트 앞 건널목에 도착해 멈춰 섰다. 빨간불이 파란불로 바뀌었지만 그도 나도 그 자리에 서서 대화를 멈추지 않았다.
또 한 번 천사가 지나갔다. 한은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망설이는 듯했다. 그가아까 전 자신은 남성성이 부족하다고, 상대가 먼저 다가오길 바란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 나는 그가 입안에서 고르고 있을 어떤 말을 상상하며 기다렸다. 들어가서 차를 한잔하자고 권하거나, 자신의 방은 따뜻하다거나……. 그러나 그는 거기에서 멈추었다. 그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무안할 정도로 한참 흐르는 정적을 참지 못하고 먼저 깬 것은 내 쪽이었다.
“차오(Ciao-안녕)!”
내가 인사하자 핏제리아 안에서 준비하고 있던 한은 나를 알아보고는 놀란 얼굴이 되었다. 어떻게 된 거냐는 그의 물음에 나는 웃으며 열차 파업 소식을 전했다.
“사실 별로 로마에 가고 싶지 않았어요. 나폴리에 눌러앉아 피자나 실컷 먹으려고요.”
로마까지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었지만 나는 이것을 나폴리에 남으라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이탈리아에 왔는데 의무처럼 로마를 가지 않는다는 것, 관성으로 남들과 같은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 것에 속이 후련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명확히 알고 그걸 선택했을 때 느끼는 드문 쾌감이었다. 나는 과거의 죽은 인간들이 남긴 유적을 보는 것보다는 살아 숨 쉬는 인간이 가진 경험을 동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