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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구원하거나 파괴하거나 (희비극이 교차하는 타자성의 즐거움)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문 에세이
· ISBN : 9791173326141
· 쪽수 : 200쪽
· 출판일 : 2026-05-18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문 에세이
· ISBN : 9791173326141
· 쪽수 : 200쪽
· 출판일 : 2026-05-18
책 소개
전쟁과 이주의 기억, 식민주의의 폭력, 인종차별의 고통을 문학의 언어로 써 내려온 비엣 타인 응우옌. 첫 소설 《동조자》로 퓰리처상을 수상하며 세계 문학의 중심에 선 그가 자신의 문학과 삶을 관통해온 핵심 질문, “타자의 자리에서 쓴다는 것”의 의미를 본격적으로 탐구한다.
★★★퓰리처상 수상작 《동조자》 작가 신작★★★
★★★2025년 전미도서 비평가협회상 비평 부문 최종 후보작★★★
★★★《마이너 필링스》 캐시 박 홍 강력 추천★★★
“동시대 가장 중요한 문학적 목소리 가운데 하나”
베트남 난민에서 퓰리처상 수상 작가가 되기까지
비엣 타인 응우옌의 문학 비평서이자 자서전
전쟁과 이주의 기억, 식민주의의 폭력, 인종차별의 고통을 문학의 언어로 써 내려온 비엣 타인 응우옌. 첫 소설 《동조자》로 퓰리처상을 수상하며 세계 문학의 중심에 선 그가 자신의 문학과 삶을 관통해온 핵심 질문, “타자의 자리에서 쓴다는 것”의 의미를 본격적으로 탐구한다. 문학은 타자를 이해하는 통로인가, 배제하는 장치인가. 그는 타자성의 혼란과 짐을 외면하지 않고, 연대의 기쁨으로 확장한다. 문학이 파괴의 위험을 품은 채 어떻게 구원의 가능성으로 나아가는지 보여주는 문학 비평서이자 자서전.
“타자의 자리에서 쓰는 글은 공포와 비극으로부터 아름다움을 창조한다”
전쟁과 난민의 기억, 인종차별의 고통을
성찰과 사유의 문학으로 바꾸어온 퓰리처상 수상 작가의 기록
전쟁과 이주의 기억, 식민주의의 폭력, 인종차별의 고통을 문학의 언어로 써 내려온 비엣 타인 응우옌. 첫 소설 《동조자》로 퓰리처상을 수상하며 세계 문학의 중심에 선 그가 자신의 문학과 삶을 관통해온 핵심 질문, “타자의 자리에서 쓴다는 것”의 의미를 본격적으로 탐구한 신작 《구원하거나 파괴하거나》(원제: To Save and to Destroy: Writing as an Other)가 출간되었다. 하버드대학교의 권위 있는 찰스 엘리엇 노턴 강의를 바탕으로 한 이 책은 비엣 타인 응우옌의 문학 비평서이자 자서전으로, 2025년 전미도서 비평가협회상 비평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며 주목받았다.
타자에 대해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타자의 위치에서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타자의 고통을 대신 말하는 데서 멈출 것인가, 아니면 타자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는 세계를 함께 상상할 것인가. “베트남에서 태어났으나 미국에서 만들어진” 응우옌은 베트남인과 미국인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했던 경험, 난민이자 난민의 자식이라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문학과 예술에서의 타자성, 윤리, 연대, 작가의 책임을 집요하게 묻는다. 타자성은 혼란과 짐을 안겨주지만, 동시에 예술과 연대의 기쁨을 가능하게 한다. 글쓰기는 공포와 비극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그로부터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일이며, 낯선 서로에게 다가가는 길을 여는 일이다. 이 책은 폭력의 기억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그 기억을 아름다움과 사유, 그리고 구원의 문학으로 바꾸어내는 글쓰기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역설과 모순에서 나는 불안하고, 당황스럽고, 희비극이 교차하는 타자성의 즐거움을 발견한다. 나만의 기이하고 색다르고 독특한 타자성에서부터 나와 내 부류들(그들이 아무리 부조리하고 부정당한 존재라 해도)에 투영된 집단적이고 체계적인 타자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즐거움을.”(179쪽)
작가의 책임은 단지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떤 말이 세계를 구원하고 또 파괴하는지 묻는 데 있다
침묵당한 이들의 목소리와 그들을 침묵하게 만든 세계를
함께 바라보는 타자성의 글쓰기
응우옌은 “목소리가 없는 자들을 위한 대변자”라는 자신을 향한 찬사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대신 그는 그 익숙한 찬사에 담긴 전제를 의심한다. 타자는 정말 목소리가 없는 존재인가. 아니면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세계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작가의 책임은 타자의 고통을 대신 말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더 근본적으로는 누가 왜 침묵당하며, 어떤 힘이 수많은 사람의 목소리를 없는 상태로 만들었는지 묻는 데 있다.
응우옌은 이 질문을 문학사의 고전과 타자의 문학을 오가며 밀고 나간다. 식민주의와 제국, 인종과 타자, 정복 욕망과 소속감의 문제가 문학 안에 어떻게 새겨져 있는지 읽어낸다.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서는 칼리반이 어떻게 괴물과 원주민의 자리로 밀려나는지, 또 《모비딕》 같은 미국 문학의 정전이 왜 타자인 작가 자신에게 소속되고 싶었던 세계이자 넘어서야 할 대상이 되었는지를 함께 살핀다. 토니 모리슨의 《타자의 기원》에서는 인종화된 타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차학경의 《딕테》에서는 식민의 기억과 이주, 여성의 몸과 언어가 뒤섞인 파편적 목소리를 발견한다. 그는 이 작품들을 단지 비판하거나 폐기하지 않는다. 타자가 어떻게 지워지고, 또 어떻게 스스로 말할 자리를 찾아가는지 살핀다.
이러한 비평은 응우옌 자신의 글쓰기와도 깊이 맞닿아 있다. 그는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베트남 민간인이 학살당하는 장면을 보며 자신이 살해를 저지른 미국인인지, 살해당한 베트남인인지 묻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베트남인을 목소리와 감정을 지닌 복잡한 존재가 아니라, 혼란에 빠진 순수한 희생자로만 그리는 재현 앞에서 자신의 타자성과 처음으로 온전히 마주했다. 베트남인과 미국인, 난민과 이민자, 내부자와 외부자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려온 그 경험은 그의 글쓰기 전체를 관통한다. 그 흔들림은 베트남인을 염탐하는 미국인이자 미국인을 염탐하는 베트남인이라는 이중의 화자로(《동조자》), 전쟁 이후에도 끝나지 않는 망명자의 분열과 생존의 감각으로(《헌신자》), 가족사와 전쟁의 기억을 함께 껴안는 회고의 형식으로(《두 얼굴의 남자》) 각각 이어졌다. 응우옌에게 글쓰기란 하나의 정체성에 자신을 고정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 안에 뒤섞인 여러 목소리와 역사, 기억의 파편들을 함께 통과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그는 타자를 하나의 정체성이나 단일한 서사로 고정하려는 시선을 거부한다. 타자성의 진정한 힘은 규정할 수 없음과 유동성에 있다. 타자는 순수한 희생자도, 완전한 악당도, 하나의 공동체를 대표하는 상징도 아니다. 《구원하거나 파괴하거나》는 인간과 비인간, 피해자와 가해자, 내부자와 외부자 사이에서 흔들리는 타자의 복잡함을 지우지 않는 문학을 말한다.
“타자와의 직면은 쉽지 않고 쉬워서도 안 되지만, 글쓰기를 통해 나 자신에 대해 배운 게 하나 있다면, 우리가 타자를 공포, 분노, 증오가 아닌 기쁨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새로운 무언가, 즉 개인과 공동체의 필요를 모두 아우르는 이야기와 사회를 창조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우리의 단일한 그림자가 동시다발적인 여러 자아로부터 만들어졌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176쪽)
제한적 연대에서 확장적 연대로
편안한 소속감에서 벗어나
우리 모두를 지키는 구원의 문학
응우옌은 아시아계 미국인의 문학과 정치가 자기방어, 수용, 연대라는 세 가지 방식으로 조직되어왔다고 말한다. 자기방어는 인종차별적 폭력으로부터 자신과 공동체를 지키려는 몸짓이다. 수용은 주류 사회 안으로 들어가 인정받으려는 욕망이다. 그러나 수용이 곧 동화가 되고, 동화가 주류 사회가 허락한 말과 행동만을 익히는 일이 될 때 타자는 안전한 자리를 얻는 대신 자신 안의 괴물성과 이음새, 불편한 목소리를 감추게 된다. 응우옌은 바로 이 아메리칸드림으로 대표되는 성공 서사의 이면, 곧 미국이 타자를 받아들이는 방식 속에 숨은 배제와 침묵의 조건을 날카롭게 짚어낸다.
그가 제안하는 것은 제한적 연대가 아니라 확장적 연대다. 제한적 연대가 나와 닮은 사람, 내가 속한 공동체의 삶만을 방어한다면, 확장적 연대는 미국이라는 제국의 질서 안에서 배제되고 공격받는 다른 타자들의 삶까지 함께 지키려는 시도다. 응우옌은 이 문제를 줌파 라히리의 단편 〈세 번째이자 마지막 대륙〉과 글로리아 안살두아의 《국경지대/라 프론테라》를 대비하며 선명하게 드러낸다. 라히리의 작품이 이민자의 정착과 성취, 미국 사회 안으로 들어가 인정받는 수용의 서사에 가까이 있다면, 안살두아의 글쓰기는 국경과 언어, 젠더와 성적 취향 사이에서 찢기고 뒤섞인 정체성을 감추지 않은 채 주류의 질서가 허락한 말과 형식 바깥으로 나아간다. 응우옌은 이 차이에서 길들여진 타자성에 저항하는 글쓰기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소속되기 위해 자신 안의 괴물성과 이음새를 가리는 대신, 말해선 안 될 것을 말하고 자신의 균열을 드러내는 글쓰기다.
이 책의 모태가 된 하버드대의 유서 깊은 노턴 강의 강연자로 초청받았을 때 그는 문학사의 중심에 초대받았다는 자만과 혹시 하버드대에서 같은 이름의 다른 사람을 자신과 착각한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을 동시에 느꼈다고 고백한다. 주류의 자리로 들어가는 순간에도 자신이 여전히 오인될 수 있는 타자임을 의식했던 그는 자신 또한 미국이라는 제국의 시민이자 작가로서 다른 타자의 고통을 보지 못하거나 침묵 속에 남겨둘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음을 직시한다. 베트남 난민의 자식으로 미국에서 성장한 응우옌은 자신을 피해자나 타자의 자리에만 고정하지 않는다. 우리가 때로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일 수 있고, 타자이면서 또 다른 타자를 밀어내는 사람이 될 수도 있음을 인정할 때 비로소 더 넓은 연대가 가능해진다. 《구원하거나 파괴하거나》는 이 불편한 인식이야말로 응우옌이 말하는 윤리와 정치, 예술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타자의 삶을 지키려 하지 않고 우리의 삶만 방어한다면 그 삶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그러면 누구와 연대해야 하는가? 실천하기 어렵겠지만 대답은 간단하다. 바로 바퀴벌레, 괴물 취급을 받는 이들이다.”(102쪽)
그러므로 저자가 말하는 연대는 편안한 소속감이 아니다. 더 넓고, 더 불편한 관계를 향해 자신을 여는 일이다. 《구원하거나 파괴하거나》는 타자의 삶을 지키는 일이 결국 우리 자신의 삶을 다시 묻는 일이며, 문학이 그 질문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2025년 전미도서 비평가협회상 비평 부문 최종 후보작★★★
★★★《마이너 필링스》 캐시 박 홍 강력 추천★★★
“동시대 가장 중요한 문학적 목소리 가운데 하나”
베트남 난민에서 퓰리처상 수상 작가가 되기까지
비엣 타인 응우옌의 문학 비평서이자 자서전
전쟁과 이주의 기억, 식민주의의 폭력, 인종차별의 고통을 문학의 언어로 써 내려온 비엣 타인 응우옌. 첫 소설 《동조자》로 퓰리처상을 수상하며 세계 문학의 중심에 선 그가 자신의 문학과 삶을 관통해온 핵심 질문, “타자의 자리에서 쓴다는 것”의 의미를 본격적으로 탐구한다. 문학은 타자를 이해하는 통로인가, 배제하는 장치인가. 그는 타자성의 혼란과 짐을 외면하지 않고, 연대의 기쁨으로 확장한다. 문학이 파괴의 위험을 품은 채 어떻게 구원의 가능성으로 나아가는지 보여주는 문학 비평서이자 자서전.
“타자의 자리에서 쓰는 글은 공포와 비극으로부터 아름다움을 창조한다”
전쟁과 난민의 기억, 인종차별의 고통을
성찰과 사유의 문학으로 바꾸어온 퓰리처상 수상 작가의 기록
전쟁과 이주의 기억, 식민주의의 폭력, 인종차별의 고통을 문학의 언어로 써 내려온 비엣 타인 응우옌. 첫 소설 《동조자》로 퓰리처상을 수상하며 세계 문학의 중심에 선 그가 자신의 문학과 삶을 관통해온 핵심 질문, “타자의 자리에서 쓴다는 것”의 의미를 본격적으로 탐구한 신작 《구원하거나 파괴하거나》(원제: To Save and to Destroy: Writing as an Other)가 출간되었다. 하버드대학교의 권위 있는 찰스 엘리엇 노턴 강의를 바탕으로 한 이 책은 비엣 타인 응우옌의 문학 비평서이자 자서전으로, 2025년 전미도서 비평가협회상 비평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며 주목받았다.
타자에 대해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타자의 위치에서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타자의 고통을 대신 말하는 데서 멈출 것인가, 아니면 타자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는 세계를 함께 상상할 것인가. “베트남에서 태어났으나 미국에서 만들어진” 응우옌은 베트남인과 미국인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했던 경험, 난민이자 난민의 자식이라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문학과 예술에서의 타자성, 윤리, 연대, 작가의 책임을 집요하게 묻는다. 타자성은 혼란과 짐을 안겨주지만, 동시에 예술과 연대의 기쁨을 가능하게 한다. 글쓰기는 공포와 비극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그로부터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일이며, 낯선 서로에게 다가가는 길을 여는 일이다. 이 책은 폭력의 기억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그 기억을 아름다움과 사유, 그리고 구원의 문학으로 바꾸어내는 글쓰기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역설과 모순에서 나는 불안하고, 당황스럽고, 희비극이 교차하는 타자성의 즐거움을 발견한다. 나만의 기이하고 색다르고 독특한 타자성에서부터 나와 내 부류들(그들이 아무리 부조리하고 부정당한 존재라 해도)에 투영된 집단적이고 체계적인 타자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즐거움을.”(179쪽)
작가의 책임은 단지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떤 말이 세계를 구원하고 또 파괴하는지 묻는 데 있다
침묵당한 이들의 목소리와 그들을 침묵하게 만든 세계를
함께 바라보는 타자성의 글쓰기
응우옌은 “목소리가 없는 자들을 위한 대변자”라는 자신을 향한 찬사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대신 그는 그 익숙한 찬사에 담긴 전제를 의심한다. 타자는 정말 목소리가 없는 존재인가. 아니면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세계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작가의 책임은 타자의 고통을 대신 말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더 근본적으로는 누가 왜 침묵당하며, 어떤 힘이 수많은 사람의 목소리를 없는 상태로 만들었는지 묻는 데 있다.
응우옌은 이 질문을 문학사의 고전과 타자의 문학을 오가며 밀고 나간다. 식민주의와 제국, 인종과 타자, 정복 욕망과 소속감의 문제가 문학 안에 어떻게 새겨져 있는지 읽어낸다.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서는 칼리반이 어떻게 괴물과 원주민의 자리로 밀려나는지, 또 《모비딕》 같은 미국 문학의 정전이 왜 타자인 작가 자신에게 소속되고 싶었던 세계이자 넘어서야 할 대상이 되었는지를 함께 살핀다. 토니 모리슨의 《타자의 기원》에서는 인종화된 타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차학경의 《딕테》에서는 식민의 기억과 이주, 여성의 몸과 언어가 뒤섞인 파편적 목소리를 발견한다. 그는 이 작품들을 단지 비판하거나 폐기하지 않는다. 타자가 어떻게 지워지고, 또 어떻게 스스로 말할 자리를 찾아가는지 살핀다.
이러한 비평은 응우옌 자신의 글쓰기와도 깊이 맞닿아 있다. 그는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베트남 민간인이 학살당하는 장면을 보며 자신이 살해를 저지른 미국인인지, 살해당한 베트남인인지 묻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베트남인을 목소리와 감정을 지닌 복잡한 존재가 아니라, 혼란에 빠진 순수한 희생자로만 그리는 재현 앞에서 자신의 타자성과 처음으로 온전히 마주했다. 베트남인과 미국인, 난민과 이민자, 내부자와 외부자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려온 그 경험은 그의 글쓰기 전체를 관통한다. 그 흔들림은 베트남인을 염탐하는 미국인이자 미국인을 염탐하는 베트남인이라는 이중의 화자로(《동조자》), 전쟁 이후에도 끝나지 않는 망명자의 분열과 생존의 감각으로(《헌신자》), 가족사와 전쟁의 기억을 함께 껴안는 회고의 형식으로(《두 얼굴의 남자》) 각각 이어졌다. 응우옌에게 글쓰기란 하나의 정체성에 자신을 고정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 안에 뒤섞인 여러 목소리와 역사, 기억의 파편들을 함께 통과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그는 타자를 하나의 정체성이나 단일한 서사로 고정하려는 시선을 거부한다. 타자성의 진정한 힘은 규정할 수 없음과 유동성에 있다. 타자는 순수한 희생자도, 완전한 악당도, 하나의 공동체를 대표하는 상징도 아니다. 《구원하거나 파괴하거나》는 인간과 비인간, 피해자와 가해자, 내부자와 외부자 사이에서 흔들리는 타자의 복잡함을 지우지 않는 문학을 말한다.
“타자와의 직면은 쉽지 않고 쉬워서도 안 되지만, 글쓰기를 통해 나 자신에 대해 배운 게 하나 있다면, 우리가 타자를 공포, 분노, 증오가 아닌 기쁨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새로운 무언가, 즉 개인과 공동체의 필요를 모두 아우르는 이야기와 사회를 창조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우리의 단일한 그림자가 동시다발적인 여러 자아로부터 만들어졌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176쪽)
제한적 연대에서 확장적 연대로
편안한 소속감에서 벗어나
우리 모두를 지키는 구원의 문학
응우옌은 아시아계 미국인의 문학과 정치가 자기방어, 수용, 연대라는 세 가지 방식으로 조직되어왔다고 말한다. 자기방어는 인종차별적 폭력으로부터 자신과 공동체를 지키려는 몸짓이다. 수용은 주류 사회 안으로 들어가 인정받으려는 욕망이다. 그러나 수용이 곧 동화가 되고, 동화가 주류 사회가 허락한 말과 행동만을 익히는 일이 될 때 타자는 안전한 자리를 얻는 대신 자신 안의 괴물성과 이음새, 불편한 목소리를 감추게 된다. 응우옌은 바로 이 아메리칸드림으로 대표되는 성공 서사의 이면, 곧 미국이 타자를 받아들이는 방식 속에 숨은 배제와 침묵의 조건을 날카롭게 짚어낸다.
그가 제안하는 것은 제한적 연대가 아니라 확장적 연대다. 제한적 연대가 나와 닮은 사람, 내가 속한 공동체의 삶만을 방어한다면, 확장적 연대는 미국이라는 제국의 질서 안에서 배제되고 공격받는 다른 타자들의 삶까지 함께 지키려는 시도다. 응우옌은 이 문제를 줌파 라히리의 단편 〈세 번째이자 마지막 대륙〉과 글로리아 안살두아의 《국경지대/라 프론테라》를 대비하며 선명하게 드러낸다. 라히리의 작품이 이민자의 정착과 성취, 미국 사회 안으로 들어가 인정받는 수용의 서사에 가까이 있다면, 안살두아의 글쓰기는 국경과 언어, 젠더와 성적 취향 사이에서 찢기고 뒤섞인 정체성을 감추지 않은 채 주류의 질서가 허락한 말과 형식 바깥으로 나아간다. 응우옌은 이 차이에서 길들여진 타자성에 저항하는 글쓰기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소속되기 위해 자신 안의 괴물성과 이음새를 가리는 대신, 말해선 안 될 것을 말하고 자신의 균열을 드러내는 글쓰기다.
이 책의 모태가 된 하버드대의 유서 깊은 노턴 강의 강연자로 초청받았을 때 그는 문학사의 중심에 초대받았다는 자만과 혹시 하버드대에서 같은 이름의 다른 사람을 자신과 착각한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을 동시에 느꼈다고 고백한다. 주류의 자리로 들어가는 순간에도 자신이 여전히 오인될 수 있는 타자임을 의식했던 그는 자신 또한 미국이라는 제국의 시민이자 작가로서 다른 타자의 고통을 보지 못하거나 침묵 속에 남겨둘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음을 직시한다. 베트남 난민의 자식으로 미국에서 성장한 응우옌은 자신을 피해자나 타자의 자리에만 고정하지 않는다. 우리가 때로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일 수 있고, 타자이면서 또 다른 타자를 밀어내는 사람이 될 수도 있음을 인정할 때 비로소 더 넓은 연대가 가능해진다. 《구원하거나 파괴하거나》는 이 불편한 인식이야말로 응우옌이 말하는 윤리와 정치, 예술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타자의 삶을 지키려 하지 않고 우리의 삶만 방어한다면 그 삶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그러면 누구와 연대해야 하는가? 실천하기 어렵겠지만 대답은 간단하다. 바로 바퀴벌레, 괴물 취급을 받는 이들이다.”(102쪽)
그러므로 저자가 말하는 연대는 편안한 소속감이 아니다. 더 넓고, 더 불편한 관계를 향해 자신을 여는 일이다. 《구원하거나 파괴하거나》는 타자의 삶을 지키는 일이 결국 우리 자신의 삶을 다시 묻는 일이며, 문학이 그 질문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목차
프롤로그
1. 분신일까, 가짜일까?
2. 타자를 위해 말하기
3. 팔레스타인과 아시아에 대하여
4. 경계를 넘어서
5. 소수자로 사는 것에 대하여
6. 타자성의 기쁨에 대하여
감사의 말
주
참고문헌
책속에서

자신이자 타자로 존재하는 것. 이야기와 언어의 힘을 느끼는 것. 이 두 주제는 문학 전반에 걸쳐 서로 얽혀 있다. 이를테면 내러티브는 독자에게 어떤 면에서 자신의 타자와 동일시하도록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 타자는 물론 독자와 조금 다를 때도 있고 완전히 동떨어진 인간 부류인 경우도 있다. 작가 역시 작품 속에서 다양한 종류의 타자성과 씨름하는데, 적이나 낯선 이들이 제기한 문제부터 부모, 자식, 이웃, 친구, 연인과 관련된 친밀한 딜레마에 이르기까지 범주가 다양하다. 언어와 자아도 타자가 될 수 있다. 어쩌면 자기 존재나 언어와의 관계에서 이런 타자성을 예민하게 느끼는 것이 작가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인지도 모른다.
_ ‘프롤로그’ 중에서
‘타자’라는 것은 또한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이 노턴 강의 ‘타자의 기원The Origin of Others’에서 지적한 것처럼 우리 자신을 의미하기도 한다. 타자성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있는 신비롭고 알 수 없는 영역, 기껏해야 부분적으로만 아는 영역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낯선 사람, 외국인, 적, 침략자, 위협이라고 꼬리표를 붙여놓은 사람들에게 투사하는 두려움 및 욕망이 만나는 중심이다.
_ ‘1. 분신일까, 가짜일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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