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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중기(임진왜란~경종)
· ISBN : 9791185701035
· 쪽수 : 236쪽
· 출판일 : 2014-07-31
책 소개
목차
서문│붓의 시대를 칼로 버틴 한 조선 武人의 처절한 美學
〈제1부〉 큰칼 옆에 차고
제1장·원칙 장교의 스타트 라인
순천향대학의 이순신연구소를 찾은 까닭
《난중일기》는 조선 수군을 지휘하기 위한 메모
어머니의 친정 있던 아산으로 이사한 까닭
군인의 길
첫 백의종군
꼿꼿 처신
히데요시의 협박장― “명을 치려고 하니 향도가 되라”
제2장·나무못 박은 판옥선, 일본 군선을 압도
國難에 대비함
판옥선은 박치기의 명수
火砲에서 일본 수군 압도
최초의 勝戰―옥포대첩
히데요시의 특명
한산대첩의 현장
제3장·고뇌하는 인간의 悲歌
국가지원 전무한 가운데 전력 증강
신경성 위장질환
국보 제305호 洗兵館에서
당포해전의 현장
순천왜성을 향해
제4장·유키나가를 역사법정에 세우다
多重性格의 임진왜란 선봉장
死易假道難
“대왕의 수레는 어디로 가시려는지?”
이순신 제거하기 위한 이간책
제5장·임진왜란 도발의 원흉
일본 통일을 완성한 히데요시
도요토미 정권 붕괴의 자충수
침략 당초에 동원된 병력 30만7000의 편제
마닐라 총독에 대한 히데요시의 협박장
제6장·10전10승의 기지― 여수
국보 제304호 鎭南館과 鎭海樓
출전!
거북선 등장
히데요시가 왜장에게 준 지휘용 금부채 노획
제7장·한산도해전의 세계사적 의의
굶주림
목동도 첩보원
登船肉薄戰
부산포해전
제8장·“이순신을 그냥 두고서는…”
식량난에 전염병
3도수군통제사의 한계
선조, 원균의 수군을 과대평가
군사문화가 낮았던 조선왕조
알몸으로 최후 맞은 원균
원균이 나쁜 장수로 평가되는 이유
〈제2부〉 울돌목의 大逆戰
제9장·이순신의 행보에 걸린 나라의 운명
조선 수군의 재건
녹도만호 鄭運을 생각하며
녹동→사동→도장→마량 항로
제10장·“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이 있습니다”
‘Only One Point’ 울돌목
바다의 急流
名將의 조건
敵將을 토막 내다
“이순신에 비하면 나는 하사관 축에도 못 드는 사람”
이순신이 열흘간 머물며 앓았던 섬―고군산도를 바라보며
제11장·“왜선들이 마음대로 돌아다녀 통분합니다”
“고금도의 형세가 한산도보다 배나 좋습니다”
고니시의 도주로를 차단한 朝·明 연합함대
제12장·사천왜성의 시마즈 요시히로
朝·明 연합군 1만의 수급이 묻힌 사천왜성 앞 무덤
유인작전
사천왜성의 내부
4路병진 작전
한려수도의 중심
제13장·최후의 美學―노량海戰
히데요시의 죽음을 알리고 ‘철군 결정’ 통보
“전투가 급하니 내가 죽었다 하지마라”
노량 협수로의 처절한 夕陽
제14장·동아시아 3국의 ‘포스트 임진왜란’
히데요시 죽음 후 豊臣 정권의 내부 분열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엇갈린 왜장들의 운명
냉혈한
제15장·동아시아 최강을 결정한 사르후 전투
만주족(여진족) 누르하치의 흥기
사르후 전투에서 나타난 광해군의 국제감각
임진왜란 참전 후 귀국한 明將들의 불운
사대 존명주의자의 집권으로 왜란 종전 40년 후 胡亂 자초
〈제3부〉 “잘못을 고치는 책” 《징비록》
제16장·‘이순신의 후견인’ 柳成龍의 향리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
엘리자베스 여왕
문화재 당국의 沒歷史性
제17장·히데요시의 공갈외교
朝鮮의 上下를 깔본 倭使
외교적 儀典을 무시했던 히데요시
공갈외교를 감행한 까닭
倭使가 진상한 鳥銃을 창고에 처박아 두다
모병 현장에 과거준비 위해 試卷 들고 와
제18장·用兵을 모르면 敵에게 나라를 내주는 것
방어의 요충 鳥嶺을 지키지 않고
사격과 기동에 능숙했던 왜군
평안도인가, 함경도인가
“用兵을 봄에 들놀이 하듯 해서야”
제19장·對간첩작전
“왜가 병법을 모른다”
倭의 첩자를 일망타진
결전을 회피한 明의 구원군
南溟 문하생 출신 義兵들이 잘 싸운 까닭
砲樓 공사 중단해 쉽게 공략당했던 晉州城
중강진 開市로 戰時경제 운영
왜적 방어에 효과적인 ‘戚繼光 병법’ 활용
제20장·포퓰리즘이 횡행하는 그때와 오늘
적의 모략전에 넘어간 조정
서애의 失脚과 《징비록》 집필
대한민국의 갈 길을 묻고 싶다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원칙장교’였기 때문에 그의 하급 무관(武官)시절은 대체로 불우했다. 그는 시속(時俗)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먼 친척이었던 율곡 이이(栗谷 李珥)가 이조판서로 있으면서 한번 만나자고 해도 “율곡이 인사권을 맡아 보는 자리에 있는 동안에는 찾아뵐 수가 없다”고 사양했다. 이이(李珥)와 이순신은 같은 덕수(德水李氏)이다. 항렬로 치면 9세 연하(年下)인 이순신이 오히려 이이보다 높아 19촌 숙질간이 된다. 율곡 이이는 서인(西人)의 영수였다. 이순신은 동인(東人)의 영수인 서애 류성룡과 가까웠다.
-35페이지 <제1부1장 원칙장교의 스타트라인>
이순신은 와키사카의 함대를 넓은 바다로 유인하는 전술을 구사했다. 먼저 전선(戰船) 5~6척을 투입해 일본 함대의 선봉과 전투를 벌이다가 짐짓 약세를 보이며 퇴각하자, 일본 함대는 일제히 돛을 펴고 추격에 나섰다. 그들이 한산도 앞 넓은 바다에 이르자, 이순신 함대는 일시에 大선회하여 鶴翼陣(학익진)을 펴면서 반격으로 전환했다. 학익진은 함대의 공격력을 최대화할 수 있는 橫列陣(횡렬진)의 한 형태이다.
영국의 해군제독 밸라드(Ballard, G. A.)는 그의 저서 《The Influence of the Sea on the Political History of Japan》에서 이 같은 이순신 함대의 대선회에 대해 “전문가 외의 사람에게는 이 기동이 종이 위에서는 아주 간단하게 생각될지 모르나 해군장교만이 숙련된 함대의 표준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극찬했다.
-57페이지 <제1부2장 나무못 박은 판옥선, 일본 군선을 압도>
<한산섬 달 밝은 밤에 / 수루에 홀로 앉아 / 큰 칼 옆에 차고 / 깊은 시름 하는 차에 / 어디서 일성호가(一聲胡笳)는 / 나의 애를 끓나니>
…이순신은 무인(武人)이면서도 깊은 문학적 소양을 지닌 인물임을 한산도가(閑山島歌) 하나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비가(悲歌)는 문학적 재능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절대고독(絶對孤獨) 속에서 잠 못 이루며 고뇌하는 인간이 아니라면 이런 시작(詩作)은 불가능하다. 그 무렵, 그에겐 최악의 시기가 닥쳐왔다.
-60~61페이지 <제1부3장 고뇌하는 인간의 悲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