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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91185851044
· 쪽수 : 356쪽
· 출판일 : 2019-11-11
책 소개
목차
제 1 부
1967
1977
1997
제 2 부
2017
리뷰
책속에서
그때 뭔가가 그녀의 오른쪽 옆구리를 세게 쿡 찔러서 윌라는 옆으로 비켜났다. 그러나 옆구리를 찌르는 물체도 같이 따라왔다. 윌라는 옆자리 남자를 돌아보았다. “똑바로 앞만 봐.” 남자가 중얼거렸다. 남자도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고 입술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뭔지는 모르지만 어떻게든 피해 보려고 해도 옆구리를 찌르는 물체는 계속 그 자리에 박혀 있었다.
윌라는 눈을 깜빡거리며 앞좌석 등받이만 쳐다보았다.
“이건 총이야.” 남자가 나지막이 말했다. “총알이 들어있어. 움직이면 쏠 거야. 절대 자리에서 일어나지 마. 옆에 있는 남자도 마찬가지야.”
윌라는 자기 목소리 같지 않게 약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물었다. “왜 일어나면 안 되는지 어떻게 설명해요?”
“뭐라고?” 데릭이 물으며 윌라를 돌아보았다.
총구가 더 세게 옆구리를 찔렀다. 윌라가 황급히 둘러댔다. “아니, 아무 말 안 했어.” 데릭은 다시 잡지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지금처럼 드물게 서로 얼굴을 마주할 때도 일레인은 마치 어떤 자연재해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생존자처럼 강박적으로 어린 시절 얘기를 반복했다. “나는 그때 우리 책상 앞에 서 있었어.” 한번은 그녀가 말했다. “아주 이른 아침이었고 난 발까지 막혀있는 잠옷을 입고 있었어. 그때 난 세 살이었고 그전까지 한 번도 나 혼자 옷을 갈아입어 본 적이 없었어. 하지만 그날은 혼자 힘으로 옷을 갈아입고 엄마랑 아빠를 놀라게 해 줄 생각이었어. 그래서 속옷 서랍을 열고 엉덩이 쪽에 주름장식이 달린 속바지를 찾고 있었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거였거든. 그때 엄마가 방에 들어왔다가 ‘내가 신경 써서 잘 개어놓은 것들을 엉망으로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구나’라고 말했어. 그래서 내가 ‘아니에요!’라고 말했는데 엄마가 내 뒤로 다가와서는 힐긋 보더니 ‘다 어질러놨잖아!’라고 말했어. ‘네가 다 어질러 놨잖아!’ 엄마는 머리를 빗고 있었는지 손에 브러시를 들고 있었는데 그걸로 내 머리를 때리기 시작했어. 브러시로 머리 한쪽을 후려치고 다른 쪽도 때려서 난 손으로 머리를 가리면서 피했는데…”
“그래, 나도 알아.” 윌라가 말했다. “사실 엄마가 갑자기 그렇게 돌변할 때도…”
“괴팍한 엄마 밑에서 시달리는 아이들을 보면 제일 슬픈 게 뭔지 않아? 그런 순간이 지나고 나면 결국은 또 엄마에게 두 팔 벌리고 다가가 위안을 얻어야 한다는 거야. 정말 불쌍하지 않아?”
“일레인, 이제 그만하고 잊어버려.” 윌라가 말했다.
그러고 나서 윌라는 그렇게 매몰차게 말한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윌라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늘 일레인에게 어떤 죄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윌라가 달리 뭘 할 수 있었을까? 윌라 역시 엄마 때문에 그렇게 혼란스러운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았던가?
윌라는 데릭의 꿈을 꾸었다. 그렇게 바라고 기다렸어도 지금껏 꿈에 나온 적은 없었는데. 꿈속에서 데릭은 멀쩡하게 살아 있었고, 모든 게 오해였다. 초인종이 울려서 나가보니 그가 서 있었다. 주근깨투성이 다정한 얼굴과 햇볕에 그을린 눈가의 자국도 그대로였다. 그러나 좀 짜증 난 표정이었다. 윌라도 잘 알고 있는 표정이었다. 데릭이 말했다. “장난하는 거야, 여보? 내 옷을 다 내다 버렸어?”
“어머나, 여보!” 윌라가 말했다. “정말 미안해요. 난…….”
“잠시 등을 돌렸을 뿐인데 그 새 내 물건을 다 버렸단 말이야?”
꿈을 꾸는 동안 계속해서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 윌라는 문을 닫고 다시 거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소파에 앉았다가 다시 몸을 쭉 펴고 누워서 눈을 감고 꿈을 다시 불러내려고, 다시 앞으로 되돌리려고 애썼다. 윌라는 데릭이 누르던 초인종 소리를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서 문을 열어주려고 걸어갔다. 그러나 그녀의 정신은 커피 한 주전자를 몽땅 마신 것처럼 말짱하게 깨어있었다.
그래도 윌라는 어떻게든 꿈을 되살리려고 계속 애썼다. 복도를 지나 현관문을 열었다. 현관문 앞에 데릭이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빌어먹을, 여보.” 데릭이 말했다. “당신이군요.” 윌라가 말하며 한발 앞으로 다가가 두 팔로 그를 감싸 안고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