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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91185923154
· 쪽수 : 152쪽
· 출판일 : 2016-06-20
책 소개
목차
축사
저자의 말
후원자들
오토랠리 참가자들
제1장
1992년
이전의 오토랠리들
지난 오토랠리 참가자들
제2장
러시아연방 지역발전부, 전러시아고려인연합회, <범민련>
러시아연방 외무부와 주러 한국 대사관, 북한 대사관
제3장
모스크바에서 출발
교통사고
바이칼 호수
하바롭스크 시
블라디보스토크
제4장
북한과 러시아 국경 하산(Хасан)
정상으로 오르는 길
백두산
바다
청소년야영소
금강산
평양
제5장 판문점
제6장 가슴 벅찬 서울에의 입성
오토랠리 결승 지점, 부산
명소 관광
제7장 대장정을 끝내며
러시아 고려인들, 150년
태평양의 꿈
두 개의 한국
시베리아를 가로지른 러시아 한인들의 기상
오토랠리의 사진 모음들
2014 한-러 국제자동차경주대회 - 고려인 이주 150주년 기념
평양에서 서울까지 인간 띠
책속에서
시간은 오토랠리처럼 빨리 질주해 간다. 오토랠리가 대장정의 길에 오른 지 1년여가 지난 지금 기억은 또 다시 나를 2014년의 여름으로 데려다 놓는다.
고려인의 러시아 이주 150주년을 기념하는 해에 걸맞게 추진된 오토랠리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을 맺었다. 다시 되돌아보아도 그 성공에 만족감을 느낀다. 고려인의 러시아 이주 150주년 기념행사를 맡은 조직위원회에서 승인된 많은 사업 중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고 그 의미도 컸다. 이 프로젝트에 관계한 모든 이들은 오토랠리가 여러 사업 중에서 우선순위에 자리하기를 바랐다. 그것은 고려인 사회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우리가 국민으로 있는 러시아와 우리의 역사적인 조국 모두를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에서 오토랠리 참가자들이 가장 먼저 고려한 것은 한반도의 38선을 통과하는 일이었다. 150년 전 처음으로 고려인들이 러시아 극동지역 연해주로 이주할 때만 해도 조선은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은 둘로 나뉘어져 있다. 그렇기에 남한과 북한 사이의 군사분계선을 돌파하는 의미 있는 행사를 통해 러시아 고려인들은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조국 통일에 기여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이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이것은 성공한 것일까? 그런데, 남북한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군사경계선을 돌파했다는 성취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아직 개인적으로 불만족스러운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일까.
오토랠리가 품고 있던 이상, 즉 남북 분단의 상징인 군사분계선을 통과하여 통일에 대한 염원을 보여주고자 한 우리의 이상은 그러나 계획을 수립할 때부터 러시아에서도 또 남한과 북한에서도 조소거리가 되었고,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도 않았다. 때로는 어떤 이들에게는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남북한 양측의 승인을 받는데 온갖 복잡함과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양측을 설득하여 이 프로젝트를 실현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한편, 오토랠리가 당초 계획대로 2014년 8월 15일(광복절)에 군사분계선을 통과하지 못하고 그 다음날인 8월 16일에 통과하게 된 것은 아쉽기 그지없다. 나는 지금도 그 사실에 실망을 금할 수 없고,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한 좌절감 비슷한 것을 떨칠 수가 없다.
나는 오토랠리 참가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하나의 민족을 갈라놓고 있는 군사분계선 돌파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래서 평양으로 날아갔다. 그때 나는 남한과 북한 사이의 상호관계가 얼마나 복잡한가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고, 왜 양측이 화합으로 나아갈 수 없는가를 생각했었다. 원칙적인 문제라 말할 수 있는 한반도 통일에 대한 문제는 꺼내지도 않았는데도 말이다.
지난 몇 달간의 일들을 되짚어보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남북한을 가로막고 있는 군사분계선, 국경 아닌 국경에는 예전이나 다름없이 무고한 피해자들이 나오고, 상호 간의 공격과 위협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앞으로 더욱 나아질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머지않아 곧 그때가 올 것이다. 그리고 그때, 하나된 조국을 보고자 염원하는 전 세계 모든 한인의 그 소중한 꿈을 실현하는데 있어 러시아 고려인들이 조금이나마 기여했다고 우리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