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거 앨런 포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09년 보스턴에서 태어났으며, 두 살 무렵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세상을 떠나자 버지니아의 부유한 상인 존 앨런에게 입양되었다. 버지니아 대학에 입학해 고대어와 현대어를 공부했지만 도박에 빠져 빚을 지면서 양부와의 관계가 소원해졌다. 1년 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가명으로 시집 《테멀레인 외 다른 시들》(1827)을 출간했으나 주목받지 못했고, 두 번째 시집 《알 아라프, 테멀레인 외 다른 시들》 역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웨스트포인트사관학교에 입학한 후 계속되는 양부와의 불화로 파양당하고, 학교에서도 일부러 퇴학당했다. 그 후 단편 집필을 시작, 1832년 필라델피아 신문에 처음으로 다섯 편의 단편이 실리고, 이듬해 단편 〈병 속의 수기〉가 볼티모어 주간지 소설 공모전에 입상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양부 존 앨런이 유산을 전혀 남기지 않고 사망하자 경제적 궁핍으로 인해 잡지사 편집자로 취직했고, 이 무렵 사촌여동생인 버지니아 클렘과 결혼했다. 음주 문제로 잡지사를 그만두고, 장편 《낸터킷의 아서 고든 핌 이야기》(1838)와 단편집 《기괴하고 기이한 이야기들》(1839)을 발표했다. 새로운 잡지사에서 일자리를 구했으나 곧 해고당하고 아내 버지니아도 폐결핵에 걸리자 절망으로 폭음에 빠져들었다. 이 시기에 〈모르그 가의 살인〉, 〈검은 고양이〉, 〈황금 벌레〉 등 다수의 유명 단편들을 집중적으로 발표했고, 1845년 시 〈까마귀〉로 화제가 되면서 같은 해 시 창작에 관한 에세이 〈작법의 철학〉을 발표했다. 소설과 시뿐 아니라 비평 활동도 활발히 했으며, 신랄한 비판으로 문단과 마찰이 심했다. 1847년 버지니아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정신적으로 더욱 피폐해졌다. 1849년 10월 볼티모어 거리에서 인사불성 상태로 발견되어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4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펼치기
유진원 (옮긴이)
정보 더보기
프랑스 리모주대학교에서 불문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번역과 도서 기획을 하고 있다. 『샤를 페로 동화집』, 마리보의 『논쟁-사랑으로 세련되어진 아를르캥』, 『올리비아의 비만장애 탈출기』, 『올리비아의 공황장애 탈출기』, 『그래픽 노블로 읽는 에드가 앨런 포 단편선』, 『캠핑 서바이벌』 등을 번역했다.
펼치기
디노 바탈리아 (각색)
정보 더보기
1923년 8월 1일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태어난 바탈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정글멘(Junglemen)」 시리즈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휴고 프라트(Hugo Pratt)가 이어서 그렸으며, 두 사람은 잡지 『아소디 피체(Asso di picche)』에 함께 그림을 그렸다.
바탈리아는 가톨릭 신문과 아이들을 위한 신문에 정기적으로 작품을 게재했다. 그는 특히 『틸 오이렌슈피겔』, 『아이반호』 같은 역사 소설과 콩트를 각색할 때 원작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상당히 다른 내용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재능을 보였다. 그는 그래픽 노블을 창작하면서 동시에 삽화가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어느 때보다도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친 시기는 잡지 『리누스(Linus)』에 작품을 소개했던 1970년대였다. 문학에 심취한 그는 아내 라우라와 함께 문학 작품들을 각색한 시리즈를 오랜 기간 작업했고, 매우 깊이 있는 시험에 전념했다. 그는 기존의 만화에서 볼 수 있는 정형적인 칸과 면 구조를 벗어나 만화와 삽화를 결합한 새로운 방식을 탐구한 선구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의 그림과 서술 방식은 많은 동료에게 영향을 주었고, 훌륭한 전례와 전범이 되었다. 그가 각색한 여러 작품 중에서 멜빌, 포, 스티븐슨, 러브 크래프트, 모파상, 호프만, 라블레의 작품은 대단한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80년대에 친구이자 출판업자인 세르지오 보넬리는 그에게 ‘코크 형사’라는 인물이 등장하는 시리즈 만화를 그려보라고 권했다. 바탈리아는 이 시리즈의 세 번째 에피소드를 완성하지 못한 채 1983년 10월 밀라노에서 사망했다.
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