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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선택

인간의 선택

(고전 단편으로 알아보는)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토머스 하디, 기 드 모파상, 셔우드 앤더슨,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허먼 멜빌, 에드거 앨런 포,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은이), 마이너스(Miners) (옮긴이)
해밀누리
16,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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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선택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인간의 선택 (고전 단편으로 알아보는)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91175052178
· 쪽수 : 264쪽
· 출판일 : 2026-01-23

책 소개

떠날 수 있었지만 남고, 말할 수 있었지만 침묵한 순간들을 고전 단편으로 따라간다. 행동하지 않기로 한 판단과 스스로를 버리는 선택까지, 인간의 심리와 책임의 무게를 조용히 질문하는 사유형 고전 단편 선집이다.

목차

1부. 남아 있기로 결정한 사람들
무무
아들의 거부

2부. 말하지 않기로 한 사람들
겁쟁이
손

3부. 지켜보는 쪽을 택한 사람들
내기
필사원 바틀비

4부. 스스로를 버리는 선택
심술궂은 악령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저자소개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28년 러시아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톨스토이 백작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1844년 카잔 대학교에 입학하나 대학 교육에 실망, 1847년 고향으로 돌아갔다. 진보적인 지주로서 새로운 농업 경영과 농노 계몽을 위해 일하려 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이후 삼 년간 방탕한 생활을 했다. 1851년 맏형이 있는 캅카스로 가서 군대에서 복무했다. 이듬해 잡지 《소브레멘니크》에 익명으로 「유년 시절」 연재를 시작하면서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작품 집필과 함께 농업 경영에 힘을 쏟는 한편, 농민의 열악한 교육 상태에 관심을 갖게 되어 학교를 세우고 1861년 교육 잡지 《야스나야 폴랴나》를 간행했다. 1862년 결혼한 후 문학에 전념하여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 대작을 집필, 작가로서의 명성을 누렸다. 그러나 이 무렵 삶에 대한 회의에 시달리며 정신적 위기를 겪었다. 그리하여 1880년 이후 원시 기독교 사상에 몰두하면서 사유재산 제도와 러시아 정교에 비판을 가하고 『교의신학 비판』, 『고백록』 등을 통해 ‘톨스토이즘’이라 불리는 자신의 사상을 체계화했다. 또한 술과 담배를 끊고 손수 밭일을 하는 등 금욕적인 생활을 지향하며 빈민 구제 활동을 하기도 했다. 민중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민담 22편을 썼는데 그중에서도 「인간에게 많은 땅이 필요한가」는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가 “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이야기”로 꼽기도 했다.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다. 사유재산 및 저작권 포기 문제로 시작된 아내와의 불화 등으로 고민하던 중 1910년 집을 떠나 폐렴을 앓다가 아스타포보 역장의 관사에서 영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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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은이)    정보 더보기
러시아 남부의 항구도시 타간로그에서 출생했다. 잡화상의 아들로, 조부는 지주에게 돈을 주고 해방된 농노였다. 16세 때 아버지의 파산으로 스스로 돈을 벌어서 중학 생활을 마쳤다. 1879년에 모스크바 대학 의학부에 입학했고, 그와 동시에 가족의 생계를 위해 단편소설을 오락 잡지에 기고하기 시작했다. 1880년대 전반, 수년에 걸쳐 〈어느 관리의 죽음〉 <카멜레온> <하사관 프리시베예프〉 <슬픔〉 등과 같은 풍자와 유머, 애수가 담긴 뛰어난 단편을 많이 남겼다. 작가 그리고로비치의 재능을 낭비하지 말라는 충고가 담긴 편지에 감동하고 자각해 〈초원>을 썼다. 희곡 〈이바노프> <지루한 이야기〉 속에는 그 시대 지식인들의 우 울한 생활상이 잘 묘사되어 있다. 1899년에 결핵 요양을 위하여 크림 반도의 얄타 교외로 옮겨 갈 때까지 단편소설 <결투> <검은 수사> <귀여운 여인>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골짜기> 등을 집필했다. 1896년 희곡 <갈매기>의 상연 실패는 그를 잠시 극작가의 길에서 멀어지게 했으나, <바냐 아저씨>를 써낸 이듬해인 1898년, 모스크바 예술 극단의 <갈매기> 상연은 성공적이었다. 1904년 병고 속에서도 <벚꽃 동산>을 집필해 상연하고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그해 요양지인 독일의 바덴바덴에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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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 (지은이)    정보 더보기
환상 문학과 미스터리 문학의 선구자 에드거 앨런 포는 1809년 보스턴에서 이민자 출신 배우였던 부모의 둘째 아이로 태어났다. 태어난 지 1년 만에 아버지가 떠나고 이후 어머니마저 병으로 사망하면서 세 살 때 리치먼드의 부유한 상인 존 앨런에게 입양되었다. 1826년 버지니아대학에 입학했으나 도박 문제로 양부와 불화를 겪으면서 1년 만에 중퇴했고, 1830년에 입학한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에서도 군사 훈련과 규율에 적응하지 못하고 제적당했다. 1827년 가명으로 출간한 첫 시집 『타메를란』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단편 「베르니스」(1835), 「어셔가의 몰락」(1835), 「리게이아」(1837), 유일한 장편 소설 『아서 고든 핌의 모험』(1838) 등을 출간하며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이후 첫 소설집 『그로테스크와 아라베스크 이야기들』(1839), 최초의 추리 소설로 평가받는 「모르그가 살인 사건」(1841),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검은 고양이」(1843), 「황금충」(1843), 「도둑맞은 편지」(1843), 단편집 『이야기들』(1845) 등을 잇달아 발표하며 뉴욕 문학계의 핵심 인물로 부상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경제난과 음주벽에 시달리던 포는 1847년 아내가 결핵으로 사망하자 폭음에 빠져들었고, 1849년 볼티모어에서 의식 불명으로 쓰러진 채 발견되어 그해 4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인간 내면의 음습한 광기를 파고들며 독특한 상상력을 펼치는 포의 작품들은 미국 문학의 기반을 다졌을 뿐 아니라 오늘날 환상 소설과 공포 소설, 추리 소설의 기틀을 마련한 걸작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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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하디 (지은이)    정보 더보기
《영국의 소설가이자 시인, 극작가다. 1840년 6월 2일 도체스터 근방 하이어보켐턴에서 석공인 아버지와 독서를 좋아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영국 남부의 웨섹스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데 이는 그의 고향 도체스터를 모델로 한 것이다. 어린 시절의 하디는 내성적이고 몸이 약했다. 학교에서 받은 공식 교육은 약 8년 동안의 이 기간이 전부다. 하디는 16세에 도체스터의 건축사무소에 수습공으로 들어가 건축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16년간 지속했던 건축 일은 소설 쓰기와 함께 그의 중요한 경력이 되었다. 1867년 후반에 첫 소설인 《가난뱅이와 귀부인》을 썼다. 1870년 봄, 교회 건물의 복원 작업 문제로 콘월의 세인트 줄리엇으로 파견되는데, 그곳 목사관에서 에마 기퍼드를 만난다. 1874년에 에마와 결혼했다. 결혼 후 그는 왕성한 창작 활동을 했고, 대표작 《테스》와 《무명의 주드》를 집필했다. 1893년, 하디 부부는 더블린을 여행하다가 우연히 단편 소설 집필을 함께했던 작가 플로렌스 헤니커를 만난다. 하디의 시편들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는 그녀에게 상당한 애정을 품게 된다. 당시 하디는 결혼 생활로 인한 고통을 감내하고 있었다. 아내 에마는 하디의 글쓰기에 많은 도움도 주었지만 에마는 변호사의 딸로서 자신이 하디보다 우월한 계급 출신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고, 이러한 신분의 차이는 결국 그들의 불행한 결혼 생활의 원인이 되었다. 이혼을 쉽게 허용하지 않던 경직된 당대의 사회 현실 속에서, 순탄치 않았던 결혼 생활은 《숲의 사람들》, 《무명의 주드》에서 심도 있게 형상화된다. 특히 하디의 《무명의 주드》는 사촌 간의 사랑을 다룬 것 때문에 파격적이고 급진적인 소설로 많은 비판을 받았는데, 하디는 이 작품을 끝으로 소설 쓰기를 그만두고 시와 극작에 전념했다. 말년 30년간은 영예로운 일들이 많았다. 1910년에 국왕으로부터 공로 대훈장을 받았고, 1920년과 1925년에 각각 케임브리지대학과 옥스퍼드대학으로부터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애버딘·브리스틀대학 등에서도 명예 학위를 받았다. 1912년에 아내 에마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큰 충격을 받았다. 비록 불행한 결혼 생활이었지만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상심한 그는 아내를 처음 만난 세인트 줄리엇으로 참회의 순례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1914년 2월, 74세의 하디는 자신의 비서인 플로렌스 덕데일과 재혼한다. 그녀는 후에 《토머스 하디 전기》를 집필한다. 그녀는 하디의 문학적 명성을 자랑스러워했고 그를 편안하게 해주려고 노력했으나 이 두 번째 결혼도 크게 행복한 편은 아니었다. 노년에 들어서도 하디는 시작(詩作) 활동을 계속했지만, 87세가 되던 해의 겨울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었다. 1928년 1월 11일, 하디는 플로렌스에게 오마르 하이얌의 《루바이야트》 시편을 읽어 달라고 부탁해 이를 듣고선 밤 9시경 사망했다. 그의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졌고 유해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 고향에 묻히고 싶어 했던 고인의 뜻을 받들어, 심장은 도싯의 스틴스퍼드 교회에 있는 에마의 묘 옆에 매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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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먼 멜빌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19년, 미국 뉴욕에서 부유한 무역상 집안의 8남매 중 셋째로 태어나 유복한 유년 시절을 보내나 13세에 아버지가 거의 파산상태에 이른 후 죽자 농장 일꾼, 가게 점원, 학교 교사 등을 전전하며 가족의 생계를 돕는다. 20세에 상선의 선원이 되어 영국의 리버풀까지 항해했고, 22세에 다시 포경선의 선원으로 남태평양에 나갔으며, 1844년에 군함의 수병이 되어 귀국하였다. 이때의 경험을 살려 쓴 작품으로, 포경선에서 탈주하여 남태평양 마르키즈제도의 식인종 마을에 살았던 경험을 그린 『타이피』(1846), 타히티섬에서 겪은 모험을 엮은 『오무』(1847), 태평양을 무대로 한 우화적 소설 『마디』(1849), 리버풀을 왕복하는 상선생활을 그린 『레드번』(1849), 군함에서 겪은 체험을 토대로 한 『하얀 재킷』(1850) 등이 있다. 『모비 딕』은 1851년 10월 런던에서 『고래』(3권)로, 11월 뉴욕에서는 『모비 딕, 혹은 고래』(단권)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너새니얼 호손은 “멜빌이 쓴 책은 대단하다!”라고 찬사를 보냈으나 평론가와 독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이어 니힐리즘의 책 『피에르, 혹은 모호함』(1852)을 발표하지만 혹평을 받았으며 판매도 저조했다. 그럼에도 멜빌은 글쓰기에 매달렸고, 걸작 중편 『필경사 바틀비』(1853), 미국 독립전쟁을 풍자한 『이스라엘 포터』(1855)를 출간했다. 1857년 장편 『사기꾼』을 출간한 후로는 소설을 발표하지 않았다. 1866년 뉴욕 세관의 검사관으로 임명되어 19년간 일했으며, 그사이 72편의 시로 구성된 『전투 조각과 전쟁의 양상』(1866)과 성지 순례를 다룬 장편 서사시 『클라렐』(1876)을 펴내기도 했다. 1891년 72세의 나이에 심장비대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유고로는 미완성 중편 『빌리버드』(1924)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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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드 모파상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50년 프랑스 항구도시 디에프 근처 미로메닐 성城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별거 이후 에트르타에 있는 어머니의 별장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이때 경험한 노르망디의 대자연, 시골 사람들의 성정과 습성 등은 그의 작품의 배경과 소재로 자주 나타난다. 고등학교 시절, 작가로서의 삶에 사표가 된 두 명의 스승, 시인 루이 부예와 소설가 귀스타브 플로베르를 만난다. 1869년부터 파리 법과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지만, 이듬해 프로이센과의 전쟁이 발발하면서 군대에 징집되어 학업을 중단한다. 1871년 7월에 제대하여 1872년 3월 아버지의 소개로 해군성에 취직한다. 1880년 모파상은 에밀 졸라 등과 함께 소설집 『메당의 저녁Les Soirees de Medan』을 출판하고, 여기 수록된 「비곗덩어리」가 프랑스 문단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890년까지 10년 동안 300여 편에 이르는 중·단편과 6편의 장편, 5편의 희곡 등을 창작하며 플로베르, 졸라와 더불어 19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소설가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이 10년은 육체와 정신의 병이 심각하게 나빠진 시기로, 그는 척추 통증과 시력 저하, 불면증 등 갖가지 질병에 시달렸다. 몇 번의 자살 기도 이후 1892년 파리 교외의 정신병원에 보내진 뒤 그곳에서 거의 혼수상태로 지내다가 1893년 7월 6일 생을 마감했다. 사진출처 - 창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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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우드 앤더슨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76년 미국 오하이오 주의 작은 마을 캠든에서 마구제작자의 일곱 아이 중 셋째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해 열네 살 때 정규교육을 그만두고 신문배달부, 심부름꾼, 마구간지기 등 여러 잡일을 하다 스무 살 무렵 형의 도움으로 야간학교를 다니며 독학으로 문학에 눈을 떴다. 졸업 후 광고회사에 취직해 카피와 칼럼을 썼고, 부유한 사업가의 딸과 결혼해 책임감 있는 남편이자 아버지, 성공한 사업가로서 평탄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서른여섯이던 1912년 “발이 점점 더 축축하게 젖고 있다”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기고 사무실에서 나간 뒤 나흘 만에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채로 발견되었다(이 나흘간의 기억은 평생 돌아오지 않았다). 이 일을 계기로 사업을 접고 전업작가의 길을 선택, 가족도 뒤로한 채 시카고로 혼자 이사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첫 소설 《윈디 맥퍼슨의 아들》(1916)을 출간한 뒤 1919년 훗날 그의 대표작이 되는 연작단편집 《와인즈버그, 오하이오》를 발표했다. 산업화가 시작된 마을을 배경으로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의 정서를 그로테스크하지만 아름답게 포착한 이 작품을 통해 “우리 세대 미국 작가들과 후계자들이 이어갈 미국문학의 전통을 낳은 아버지”(윌리엄 포크너), “현대 소설을 만든 인물”(존 스타인벡), “영어로 글을 쓰는 가장 훌륭하고 섬세한 작가”(스콧 피츠제럴드)라는 후배 작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모던라이브러리에서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영문소설 100선’에 들었으며 미국 대학에서 《위대한 개츠비》와 함께 가장 많이 수업 교재로 쓰이는 작품이다. 이 외에도 《달걀의 승리》(1921), 《수많은 결혼들》(1923), 《어두운 웃음소리》(1925) 같은 소설을 비롯해 시집과 여러 에세이 등 많은 작품을 썼다. 1941년 남미 크루즈 여행을 떠났다가 실수로 이쑤시개를 삼켜 장에 천공이 생기는 바람에 65세에 복막염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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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18년 11월 9일 러시아 오룔 지방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엄격한 가정환경 속에서 성장했으며, 이러한 경험은 인간 심리와 관계의 미묘한 균열을 포착하는 그의 문학 세계에 깊게 스며들었다. 모스크바대학 문학부와 페테르부르크대학 철학부에서 공부한 뒤 독일 베를린대학으로 건너가 철학과 역사, 고전어를 익혔다. 귀국 이후 그는 문학평론가 벨린스키와 교류하며 창작 활동에 뛰어들었다. 농노들의 삶과 러시아 농촌의 풍경을 사실적이면서도 따뜻하게 담아낸 《사냥꾼의 수기》(1852)는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대표작으로, 러시아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장편소설 《루진》(1856), 《귀족의 보금자리》(1859), 《전야》(1860), 《아버지와 아들》(1862), 《연기》(1867) 등을 잇따라 발표했으며, 〈첫사랑〉 〈아샤〉 〈봄 물결〉 같은 중·단편소설에서도 뛰어난 성취를 남겼다. 절제된 문체와 섬세한 감정선, 자연을 바라보는 서정적인 시선은 투르게네프 문학의 핵심으로 꼽힌다. 1843년 오페라 가수 폴리나 비아르도를 만난 이후 평생 특별한 관계를 이어갔으며, 1860년대 이후에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각지에서 활동했다. 플로베르, 모파상, 에밀 졸라 등 유럽 문인들과 교류하며 러시아 문학을 서구에 소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유럽에서 가장 널리 사랑받은 러시아 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했다. 1883년 9월 3일 프랑스 부지발에서 생을 마감했으며, 유해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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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Miners) (옮긴이)    정보 더보기
해밀누리 출판사의 안팎에서 모인 번역팀은, 언어라는 거대한 광산 속에 숨겨진 가장 빛나는 보석을 찾아내는 광부라는 뜻으로 마이너스(Miners)라는 이름을 지었다. 단순히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바꾸는 데서 멈추지 않고, 글에 담긴 영혼과 맥락, 그리고 저자의 진정한 의도를 찾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숙련된 광부가 원석의 내면을 꿰뚫어 보듯, 마이너스는 문장이 지닌 고유한 빛을 발견하고, 그것을 섬세하게 다듬어 세상에 선보이는 것을 팀의 사명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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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정보 제공 : Yes24(www.yes24.com), 알라딘(www.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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