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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86418598
· 쪽수 : 216쪽
· 출판일 : 2023-11-28
목차
프롤로그 … 6
1부 아들의 편지
아들의 편지 … 10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이름 ‘하브’ … 14
그 아버지의 그 아들 … 18
어머님! 그립습니다 … 22
엄마꽃 … 25
善浩야 안녕 … 28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 … 31
아들에게서 배운다 … 35
슬지와 슬아를 서울로 보내며 … 37
심쿵한 고백 “사랑해 하브!” … 40
7박 무일 … 44
주말 우리집의 풍속도 … 49
최고의 아빠상 … 53
2부 아내는 나의 숨소리를 잡고
남편들이여 공짜는 없다 … 60
목련꽃의 영성 … 62
남편들이여 장미꽃식초를 사라 … 64
소월 선생의 시가 그립다 … 66
류현진 게임의 교훈 … 68
사랑하는 당신에게 … 71
체코, 평화로의 초대 … 75
버킷 리스트 … 94
사랑연습 … 96
내가 깰 걸 … 99
또 하나의 꿈 … 101
아내는 나의 숨소리를 잡고 … 106
봄을 부르려네 … 108
사진 이야기 … 112
풀의 시인, 김수영의 연인을 만나다 … 116
도전의 끝은 어디일까 … 120
3부 아내가 있는 풍경
아내는 늘 꽃소식이었다 … 127
우유니사막에서 … 133
배경화면 … 139
아! 타지마할 … 143
드림파크에서 … 147
꿈꾸던 산토리니 … 151
환희 … 157
유혹 … 161
4부 우리 잘 살았지요
최고의 내편 … 168
새해에는 이렇게 사랑하며 살고 싶다 … 171
남편죽 … 174
소확행(小確幸, 작지만 확실한 행복) 1 … 177
소확행 2 -처음으로 팥죽을 쑤었다 … 179
소확행 3 -사랑의 계기판 … 181
내 눈에 콩깍지 … 183
신랑짱 … 185
아내의 사랑은 싱겁지 않다 … 188
아내의 회갑을 축하하며 … 191
크리스마스트리를 정리하며 … 194
색다른 날 … 197
토란탕 … 200
아내에게는 아내가 없다 … 202
아내는 글도 잘 쓴다 … 204
양장피 … 208
우리 잘 살았지요 … 211
에필로그 … 214
저자소개
책속에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이름 ‘하브’
퇴근길.
22개월 된 손녀들이 좋아하는 딸기를 사 들고 집에 들어서니 쌍둥이 손녀들이 한 손에 양말 한 짝씩을 들고 빙빙 돌리며 하브~~하브~~를 연호한다. 고 예쁜 병아리 입에서 숨차게 불러대는 “하브! 하브!”
‘하브’는 아직 어려서 ‘ㄹ’발음이 서투른 어린 손녀들이 할아버지인 나를 부르는 호칭이다.
아들 하나만 키웠던 나는 늘 딸에 대한 아쉬움이 많았는데 고맙게도 며느리가 딸을 낳았다. 그것도 딸 쌍둥이로.
쌍둥이 보는 즐거움이 생활의 최애가 되어 버린 지 오래다. 하루하루 몰라보게 이뻐지는 손녀들이 나에게 주는 이 충만한 행복감!
매일 매일이 신기함을 넘어 경이로움이고 축복의 신세계 교향곡이다.
어느 목사님의 설교 중에 “손주를 보기 전에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한 말이 실감이 난다.
그런데 둘째 녀석이 감기에 걸리더니, 며느리도 심해져서 결국 코로나 검사까지 받게 되자 아들이 두 손녀를 인천 내 집에 데려다 놓고 갔다.
며칠 후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들도 열이 높아 회사에서 나와 코로나 검사 받으러 간다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아들은 그때까지 코로나 예방접종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꼼짝없이 아내와 둘이서 쌍둥이를 돌봐야 하는데 다행스럽게도 나를 잘 따른다.
밥을 먹을 때도 내가 있어야 먹고 산책을 나갈 때도 양말과 신발도 나에게 신겨 달랜다. 난감한 것은 똥을 싸도 기저귀를 나보고 갈아 달랜다. 잠잘 때도 할미는 늘 뒷전이고 서로 나하고 잔다고 난리법석을 떤다.
하는 수 없이 큰곰 인형을 가운데 두고 따로따로 재우다가 녀석들이 잠들면, 아내가 첫째와 자고 나는 둘째를 안고 내 방에서 잔다.
엄마 아빠 없이 재우다가 감기 들면 어쩌나 싶어 한 번 뒤척일 때마다 이불을 덮어주며 아파트인데도 문틈으로 들어오는 바람 막으려 이불을 방문 앞에 쌓아놓는다.
자다 보면 어느새 삥 돌아 손녀가 방바닥에 거꾸로 누워 있다. 깜짝 놀라 안아서 요 위에 누인다.
새벽녘에 ‘하브 하브’ 부르는 소리에 또 잠이 깼다. 꿈꾸는 모양이다.
엄마를 찾지 않고 하브를 찾다니!
나도 ‘하브 하브’ 말하며 가슴을 도닥여준다.
왜 이리도 이쁜지.
어쩜 이리도 사랑스러운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이 그대로 느껴진다.
아들 내외가 10일만에 왔다.
다행히 코로나는 아니고 감기가 심했던 모양이다. 인천 하브집에 있는 10일이 지난 뒤, 손녀들의 변화는 놀라웠다. 엄마 아빠가 안으려 해도 싫다 하고 나만 졸졸 따라다닌다.
녀석들이 엄마 아빠 따라 서울집으로 돌아간 다음날. ‘아버님! 둘째가 잠을 자다가 하브를 불러요’라는 며느리 카톡 한 구절에 내 가슴이 찡해온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창문에 드리워진 블라인드가 오늘 아침에는 유난히 밝아 보입니다.
노란 유채꽃 속에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를 보며 환하게 웃는 당신의 모습이 오늘따라 더욱 곱게 느껴졌기 때문이요, 23년 만에 다시 찍은 웨딩 사진 속의 싯구가 이 아침을 더 싱그럽게 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 그 사랑 내 곁에 있어
그 옛날 5월의 신부가
4월의 신부가 되었습니다.
사뿐사뿐한 걸음
잔걸음 종종걸음, 오랜 세월 저는 걸음
23년의 뒤안길 돌아
이제사 날개 달은 걸음, 제주도에 왔습니다.
그 사람 그 사랑 내 곁에 있어
4월의 신부는 그 옛날 5월의 신부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그래요. 25년의 결혼생활이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꿋꿋이 참고 기다리고 용서한 당신의 사랑이 있었기에 물수제비 뜨듯, 늘 달려갈 수 있음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돌아본 나의 삶이 정돈된 발자국임을 확인할 수 있음도 오로지 당신의 인내와 배려 덕분임을 압니다.
며칠 전, 신혼 시절에 살았던 단칸방 집을 보고 오면서 참으로 감회가 깊었습니다.
내가 출근할 때면 버스를 타나 택시를 타나 문 밖에 나와 지켜보고 서 있었다는 당신…
그 옛날 나와 함께 장보러 다니던 재래시장에서 500원이면 사 먹을 수 있던 순대를 한 푼 더 아끼려 그냥 지나쳤다던 당신…
이제야 시장 한 모퉁이의 좌판에 앉아 그 순대를 먹으며, 순대를 먹는 것이 아니라 25년의 세월을 먹었노라 말했던 당신…
멈추고 싶지 않던 시간이었지만 이렇게 세월이 흐르고 보니 가난했던 아픈 기억도 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가 봅니다.
어제 남이섬에서의 하룻밤 가을 여행도 밝은 햇살에 비친 노란 잎새와 함께 새로운 추억거리로 남을 겁니다.
3년 전 당신의 생일을 축하하며 썼던 시 한 구절을 늘 잊지 않을께요.
먼 훗날,
‘나는 당신으로 인해 멋진 인생이었습니다.’
라고 말할 고백을 준비하며 살고 싶습니다.
여보!
그렇게 살겠습니다.
그렇게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그렇게 멋진 인생으로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우리 잘 살았지요
며칠 전, 신문을 보다가 김혜자 주연의 ‘길 떠나기 좋은 날’ 연극 기사가 눈에 띄었다.
“우리 연극 한 편 보러 갈까?”
저녁 준비를 하는 아내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바쁜 사람이 웬일이냐며 아내는 반색한다. 20년이 넘도록 사진에만 빠져 아내가 좋아하는 연극 한 편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이 새삼 미안하다.
모처럼 찾은 극장 안, 쌍쌍이 앉은 관객들이 다정해 보인다. 극이 진행되면서 점점 연극에 빠져드는 나를 보며 아내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공연장에 왔음을 깨닫게 된다. 생색은 내가 내고 재미 또한 내가 보는 셈이다.
늙은 아버지 서진(송용태 분)은 오늘도 혼자 돌배나무 밑 그네에 앉아 있고 먼저 세상 떠난 아내 소정(김혜자 분)의 환영이 주변을 맴돌며 연극은 시작되었다.
어린 시절 꽃을 좋아했던 서진은 젊은 날에 축구공 하나만을 바라보며 달리고 달린다.
그러나 서진은 경기 중 다리를 다쳐 축구 인생을 잃어버리고 만다. 삶의 의미를 붙일 곳이 한 군데도 없는 절망에 빠지는 서진.
지혜로운 아내는 축구를 할 수 없는 남편에게 카메라를 선물함으로써 꽃을 찍는 사진가로의 새 삶을 찾게 해준다.
두 사람은 시골로 내려와 텃밭에 돌배나무를 심고 꽃과 채소를 가꾸며 예쁜 딸을 낳고 동화처럼 살아간다. 봄마다 돌배나무는 하얀 눈처럼 꽃을 피우고.
그러나 딸은 커서 가난하고 피부색이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 부모 곁을 떠나고 착하디 착한 아내마저 난치병으로 힘들어한다.
호스피스 병동으로 마지막 길을 떠나려는 아내를 붙잡고 남편이 오열하고 나도 울고…
나이 들어 내가 이런 상황이라면 나는 아내에게 어떻게 대할까?
‘지순하다’라는 형용사가 남자에게도 어울릴 때가 있나 보다.
막이 내렸는데도, 불치병을 앓고 있는 고통을 조용히 삭히며 돌배꽃처럼 단아하고 향기롭게 대처해나가는 아내의 대사가 시처럼 꽃처럼 내 마음 속에 흐른다.
덕수궁 돌담길이 가을비에 떨어진 은행잎으로 온통 노랗다. 주머니에 아내의 손을 꼬옥 잡고 노랗게 물든 길을 걸었다.
연극 속, 아내가 남편에게 지그시 건넨 마지막 대사를 되뇌이며.
‘우리 잘 살았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