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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와 잔혹의 마블링

온유와 잔혹의 마블링

권미영 (지은이)
문학바탕
1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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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와 잔혹의 마블링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온유와 잔혹의 마블링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86418925
· 쪽수 : 229쪽
· 출판일 : 2023-03-24

목차

화경아,화경아....6
정오에 신을 신다....55
온유와 잔혹의 마블링....130
범람하던 날....148
당신....181
(에필로그) 2023년 봄 통신....226

저자소개

권미영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63년 경북 안동에서 태생 대학에서 교육심리학과를 졸업한 후 도미했다. 유학 중에 영국으로 건너가 중부의 목가적이고 고전적인 전원도시 ‘노팅햄셔’에서 머물던 1년 동안 첫 소설 「로이 손의 선택」과 「이상한 이별」을 썼다. 10대 때부터 쓴 시와 산문이 아직도 친정집 다락방에 가득 재어 있을 만큼 글쓰는 일은 자타에게 당연시 되었고 결국 미국에서 다니러 와 영구귀국을 결정한 2001년도에 한 문학지를 통해 시로 등단했다. 연이어 단편 「마음껍질」이 당선되어 본격적인 소설가의 길을 걷게 된다. 작품으로는 「탑지기 전설」, 「창가에서 돌아보면 여신이 서 있다」,「조르바식 결혼」, 「All Spirits」, 「서울, 다다」, 「목소리」 등이 있다. 문학 21 문학상과 설송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저서는 장편소설 『눈썹 속의 제국』, 『다섯 번째 부인과 이혼하기』, 『난, 난』, 『목화밭, 말 거는 별』과 단편집 『조르바식 결혼』이 있으며, 현재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국제문학바탕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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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중략…)
그의 이야기는 적잖이는 괴기스러웠고 적잖이는 감동적이었다.
나는 그녀의 일본인 남자친구를 떠올리고는 말했다.
“복수 당하는 시간은 이제 그만 가지고 언니에게 조만간 회복했다고 알리세요.”
“진희는 내가 죽길 바라는 거 같아요. 그렇게까지는 아니면 좋겠는데….”
“그건 아니죠. 그랬다면 송여사를 오게 해서 구형석씨를 돌보게 하지는 않을 걸요.”
“송이 새벽에 와서는 진희가 여행을 갔다더군요. 진희는 내가 죽길 바라기까지는 않겠지만 죽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은 할 거예요.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여행을 가겠어요. 집을 비운 사이에 내가 죽을 수도 있는데.”
“송여사가 잘 돌봐주니까 믿고 간 거죠. 이번 여행, 언니로서는 꼭 가고 싶은 것이었어요.”
“누구랑 어디로 갔담?”
“혼자 갔죠. 동경에 있는 친구의 초대를 받았어요.”
“아, 친구… 그렇군요. 어떤 친구? 기왕이면 남자의 초대면 좋을 텐데.”
그녀를 위하는 그의 아량이 참도 지극해 흥이 난 나는 얼른 알려주었다.
“그렇게 생각하세요? 맞아요. 남자친구 분이에요. 그 분이 멋진 집을 샀다는데 거길 초대했어요. 원래 사찰이었다니 나무가 많고 운치도 있겠죠. 크기도 상당할 거고.”
“남자요, 남자라… 그렇군요. 남자군요.”
그는 풀죽은 마른 목소리로 같은 말을 되뇌더니 돌연 서둘렀다.
“이제 그만 가 주시요.”
“그러죠. 너무 오래 끌지 마세요. 아무래도 남자친군데 언니가 그 분이랑 오래 친해지다 보면….”
화투판을 엎어버리듯 화드득 몸을 일으켜 세우며 그가 사납게 내 말을 잘랐다.
“그럴 일 없소.”

밤이 꽤나 깊었다. 잠자리에 들었지만 쉽게 잠이 들지 않는다. 구형석 씨로 인해 시한부의 비밀을 가졌으니 당분간은 그녀를 만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다.
구형석 씨가 사실을 알릴 때는 이미 들은 그의 진심을 내가 그녀에게 좀 더 자세히,
극적으로 말해서 그녀가 그를 용서하고 그의 사죄를 받아들이게끔 부추겨 그들의 화합에 크게 한몫해주어야겠다. 나는 한참을 그렇게 눈 번히 뜨고 있었다.

수요일 오후 2시, 그녀에게 문자가 왔다.
특이한 일이다. 그녀는 문자하는 걸 질색해서 아주 간단한 말도 직접 전화를 한다.
‘지금 경찰에 신고했어. 재경 씨는 벌 받아야 해.’
이건 대체 무슨 말이야, 나는 급히 그녀의 집으로 갔다.

그녀는 창백하게 질려있었고 나를 노려보았는데 그 눈이 섬뜩했다.
욕실 문짝에 흰 종이가 투명 테이프로 붙여져 있고 거기에는 휘갈겨 쓴 글씨가 적혀 있었다.

‘왜 이런 일이 생겼냐고 묻고 싶지? 당신이 예뻐서지.
예쁘다고 맘 내키는 대로 해? 일본까지 가서 남자를 만나다니.
돌아왔으니 이젠 어제의 즐거움에 값을 지불해야지.
지금은 흥분에 부푼 젖가슴을 꺼트리고 화끈거리는 아랫도리를 식힐 시간이야.’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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