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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86557921
· 쪽수 : 156쪽
· 출판일 : 2021-04-05
책 소개
목차
1부 각을 잡다
각을 잡다
고독의 모양
마스터 오브 와인
조각상
이후의 계단
스타워즈 이후
찔레꽃에 청호반새 앉다
레퀴엠
매화도 르포
화산 봉우리를 넘어서
빙하기의 기록
그믐달의 잔영
프로의 문
우리들의 고도
산다는 일
2부 푸른 비눗방울
통 큰 아내
특종 인생
화가의 빈혈
데자뷰
숲속 밑면을 보다
말을 복제하다
교각을 수리하는 동안
푸른 비눗방울
소요騷擾
겨울 색채
장미의 뒤편
흰 수건
겨울 음화
시래기
가업
3부 봄으로 이어진 길
모르는 영역
슬라임
매트릭스
문신
반변천 강변에서
연노랑
봄으로 이어진 길
몽골 노동자의 화폭
만성 계절앓이
유기난
일 플러스 이
큰 그림
고생대 고사리
게임 아웃
아름다운 포도나무
4부 낡은 허기
술렁이는 오월
붉은 등대
Happy Bossday
암스트롱
완벽한 팔자
낡은 허기
지구본
일광놀이
통신원 보고서
넝쿨
가벼운 족속
사과를 들고서
금빛 설화
꽃이 찌른다
해설
고통의 지층학│ 오민석(문학평론가 · 단국대 교수)
저자소개
책속에서
각을 잡다
모서리는 힘을 필요로 할 때가 있다
외출할 때 두 각과 네 각이 동시에 눈치를 본다
나는 새 스카프를 걸치고 쇼윈도에 오래 서서
양어깨에 힘을 줄지 말지를 마음에게 물어본다
이를테면 모종의 행동 개시에 잠깐 주춤할 수 있다는 거지
바람을 감고 오는 너는 검은 소가죽에 마름모 퀼팅
거기에 금빛 체인을
늘어뜨리는 중력은 어떠냐고 물었다
나와 그녀, 시간이 막 물드는 사이
잇몸을 내보이고, 어깨를 늘어뜨리며
말하기엔 우리, 유리벽의 습기 같은 각이 각을 딛고 있다
어깨와 어깨 사이에서 안개를 헤치며 다니는 화상벌레에겐
겨울 한나절 볕을 향한
키재기란 얼마나 황당한 높낮이인가
카페에서, 금빛 체인에 끌려다녀 목소리를 잃었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스카프를 풀어버렸다
때로 걸치지 않는 알몸에서 오는 가벼움이란 신에게 두 손을 모으는
일보다 각을 수평으로 떨어뜨리는 게 더 힘들다는 걸
깊이에 든다. 그날 쇼윈도에 걸려있던 6
보는 방향에 따라 6이 9가 될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잊고
지배자의 독성을 감추었던 너
나는 네 목에 대낮을 짜서 감아주느라 정신이 없다
모르는 영역
땅을 짚어도 무중력 속인 나는 얼마나 가벼운지
어떤 향기가 누르는 달꽃
우리 보폭이 넓어지고 있어요
당신에게 왔다는 것이, 달의 비늘이었다는 것이
서로의 뺨을 비비는 일이죠
이 섬에는 달맞이꽃 향기가 나요
봄엔 집과 뜰에 이 꽃을 심어야지 생각하죠
달을 그리워하며 눈물짓는 당신
그윽한 눈동자를 가슴에만 넣고
이제 천 년 동안 잊고 살아가야 하는데
12월의 갈매기 눈빛도 젖어 있어요
당신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기억하려는 찰나
바람이 섬의 끝자락으로 데려가네요
파도의 기포들이 들끓어요
바글바글
우리 수신호 해요 나는 기억의 향기로 날았다가
식은 향기로 말하다가 웃다가 찡그리다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만 하고 있어요
엄마 안녕!
같이 있고자 기적을 일으키려니 달이 보고 웃네요
금빛 설화
화첩에서 클림트의 활옷을 보는 순간 정원의 생명나무며
불가사리 이런 것들이 따라오는 밤이다
빈의 벨베데레*가 너무 멀어서 갈 수 없고
죽은 황금 옷 조각을 꺼내 고민하는데 그녀가 그 먼
밤길을 날아와 얼굴의 위치를 바꾸며 나를 더듬는다
입술은 풍차다
바람을 일으키고 이곳에 있는 나는 내가 아니다
열 손가락에서 노래가 흘러나오던 자였다
가죽과 가죽 사이를 꿰어 나비를 붙이던 구두 수선공
서로 금빛 옷을 입고 칼로 부딪친 우리는 관 속
비행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죄는 둘이 함께 죽지 않으면, 인연에 의해서 사는 원수의 자식들
시간이 닫히는 반복 속에 나의 활옷이 관짝에
찍히고 말았다
활옷 조각이 나비로 변하는 설화다
그녀가 생명나무 잎사귀에 알을 소복하게 낳고 있다
깨어나고 성장하고 번데기일쯤
우리의 기도는 은빛 가루를 얻는 거다
성배聖杯가 하늘을 떠다니면서
땅 위의 젊은이들을 향해 빛을 뿌린다
번데기가 처음 기우뚱하는 날에 그녀는 온갖 호들갑이며,
연필심이 길어진다
지상에서 허공으로 포물선을 그으며 날아가는 나비는
낮 속에 밤을 질러 더 높은 하늘로 날아간다
최초의 밤
바람 따뜻한 구름 속에서 별이 반짝이고
밝은 빛 가루가 밤 속에 세워지고
활옷에 수놓아진 생명나무의 열매가 황금 각으로
반사되어 항해를 시작한다 이곳도 금성
*벨베데레- 클림트의 [키스]가 전시된 오스트리아 빈의 궁전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