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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발레

아무튼, 발레

(그래도 안 힘든 척하는 게 발레다)

최민영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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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발레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아무튼, 발레 (그래도 안 힘든 척하는 게 발레다)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86602430
· 쪽수 : 148쪽
· 출판일 : 2018-11-22

책 소개

마흔 살을 코앞에 둔 2015년부터 취미 발레를 시작한 저자의 에세이다. 저자는 어느 토요일, 발레 전문학원으로 쳐들어가 3개월 일시불 선결제로 발레수업을 등록하고 만다. “입구는 있지만 출구는 없는” 발레의 세계로 들어선 것이다.

목차

3개월 일시불 선결제 해주세요
1번 발, 2번 발이라는 게 있는데…
여기요! 미디엄, 미디엄 사이즈 갖다주세요!
좀 찢어드릴까요
오늘은 꽤 깊은 그랑 플리에를 하고 있구나
셰네로 돌다가 통베 파드부레 다음에 앙드오르로 두 바퀴 돌고
신발 가운데를 말이죠, (흡!)
소란스러운 고요함
고백하자면 나는 힘 빼기를 두려워했다
오오 터닝신이 강림하셨다!
어떤 동작이든 하나도 힘들지 않은 것처럼
나는 내 몸을 다시 빚는 중이다

저자소개

최민영 (지은이)    정보 더보기
취재기자. 2000년부터 신문사에서 일해왔다. 이달의 기자상도 여러 번 받았지만 여전히 적성에 맞는 일인지 생각하곤 한다. 사람 많은 회식 때는 말수가 줄어들고, 취재원에게 전화 걸기 전에는 울렁증에 시달린다. 마흔 살을 코앞에 둔 2015년부터 취미 발레를 시작했다. 10년 뒤 실버 아마추어 발레단의 오디션에 합격하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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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015년 1월 어느 토요일, 잔뜩 긴장한 채 서울 동교동의 한 성인 발레 전문학원에 들어섰다. 저 등록하러 왔습니다. 친절한 부원장이 물었다. 발레는 처음이신가요. 네 그렇습니다. 몸에 안 맞을 수도 있는데 기초반 한 달만 들어보고 계속할지는 그때 결정하시죠. 아닙니다. 그럴 순 없습니다. 나는 결연한 표정으로 신용카드를 내밀며 3개월 일시불 선결제 해주세요, 외쳤다. 개강은 2월 초니까 그때 오세요. 영수증을 손에 쥐고 문을 나서니 햇살이 따사로웠다. 수업 시작 전까지 살을 좀 뺄 시간이 있어 다행이었다. 당시 나는 마음 내키는 대로 행복하게 야식을 즐기다가 고3 때의 몸무게를 회복한 상태였다. 운동을 꾸준하게 했으니 기초대사량이 높을 것이다, 많이 먹어도 잘 찌지 않을 것이다, 방심하다가 의문의 벌크업에 성공해버렸던 것이다. _「3개월 일시불 선결제 해주세요」


운동이란 걸 처음 시작한 건 서른이 넘어서였다. 여러 운동을 골고루 방황했지만 어디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했다. 요가는 급한 내 성격에는 너무 조용해서 지루했다. 자전거는 한강 변에서 옷이 찢길 정도로 무릎에 심한 찰과상을 입은 뒤 속도 내기가 겁났다. 수영은 하필 새벽 수업이라 알 빠진 옥수수처럼 듬성듬성 나가다 보니 흥미를 잃었다. 피트니스는 잘못된 운동 방식 때문에 허벅지가 커져서 그만뒀다. 엉덩이와 허벅지 살을 빼는 데 좋다고 들어서 20킬로짜리 바벨을 등에 지고 각종 스쿼트를 무작정 열심히 했던 것이다. 젠장, 여자는 근력 운동을 해도 근육이 안 커진다고 누가 그랬는지는 몰라도, 생생한 반증이 여기에 있으므로 반드시 ‘대체로’라는 단서가 붙어야 한다. 그때 생긴 바위 같은 큰 근육은 없어지지도 않는다. 하체 비만이 근육 돼지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_「3개월 일시불 선결제 해주세요」


플리에는 스스로를 높이겠다는 마음으로는 스스로 높아지지 않는 삶과 참 많이 닮았구나, 생각할 때가 있다. 내려올 수 있는 힘이 없다면 올라갈 수 있는 힘도 나오지 않는다. 나는 바워크의 플리에를 하면서 가끔 불전에서 108배를 하는 기분이 들곤 한다. 나 자신을 최대한 낮춤으로써 사실은 스스로를 강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닮아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인생에 ‘플리에’의 순간이 있는 게 아닐까. 낮아지고, 떨어지고, 주저앉는 순간들 말이다. 원하던 일을 얻지 못했을 때, 추진하던 프로젝트가 어그러졌을 때, 사랑이 어긋났을 때, 누군가에게 거절당했을 때, 그건 넘어지는 게 아니다. 그저 각자의 ‘플리에’를 하는 거다. 높이 뛰어오르는 순간이 있으려면 플리에를 꼭 거쳐야 하고, 내려와야 할 순간에도 플리에는 꼭 필요한 거니까. 그래서 나는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날에는 ‘오늘은 꽤 깊은 그랑 플리에를 하고 있구나’ 생각하곤 한다. 플리에 같은 그 시기를 잘 지난다면, 인생의 속근육도 자라는 것이겠지._「오늘은 꽤 깊은 그랑 플리에를 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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