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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86639894
· 쪽수 : 344쪽
· 출판일 : 2019-01-10
책 소개
목차
목소리를 삼키고 머뭇거리다가 웅크리고야 마는 _ 전석순
상환相換
최 서방崔書房
인두지주人頭蜘蛛
제비를 그리는 마음
백치 아다다
고절苦節
연애삽화戀愛揮話
심월心月
장벽障壁
목가牧歌
오리알
심원心猿
청춘도
병풍에 그린 닭이
유앵기流鶯記
붕우朋友
캉가루의 조상이
마부馬夫
부부夫歸
준광인전準狂人傳
계용묵 연보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최 서방
“이번에도 회계가 채 안 되는군. 모두 오십이 원인데.”
하고 다시 계산을 틀어본다.
“어떻게 그렇게 되오.”
최 서방은 자기의 예산과는 엄청나게 틀린다는 듯이 깜짝 놀라며 이렇게 반문을 했다.
“본(원금)이 사십 원에 변(이자)을 십이 원 더 놓으니까.”
“무어 그 돈에다 변까지 놓아요?”
“변을 안 놓으면 어쩌나. 나도 남의 돈을 빚낸 것인데.”
“그렇다기로 변은 제해주세요.”
“그 돈으로 자네 부처가 일 년이란 열두 달을 먹고 산 것인데 변을 안 물단 게 안 돼 안 돼 건.”
그는 엉터리없는 수작이라는 듯이 ‘안 돼’ 하는 ‘돼’ 자에 힘을 주었다.
최 서방은 보통의 농채와도 다른 이물푼 삯(인수세)에 고가의 변을 지우는 데는 젖 먹던 밸까지 일어났으나 송 지주의 성질을 잘 아는 그는 암만 빌어야 안 될 줄 알고 아예 아무 말도 안 했다.
실상 그는 말하기도 싫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태반이 넉 섬씩이지. 한 섬에 십 원씩 치고도 모자라는 십이 원을 어쩌나? 오라 가만있자, 또 짚이 있것다. 짚이 마흔 단이니까 스무 단씩이지. 그러면 한 단에 십 전씩 치고 이 원, 응응 겨우 우수 떼논 그래 십이 원은 어쩔 테야?”
그는 최 서방이 그리 해주겠다는 승낙도 얻지 않고 자기 혼자 이렇게 결산을 치고 다짜고짜로 일꾼들을 시켜 한 섬도 남기지 않고 모두 자기네 곳간으로 끌어들였다.
백치 아다다
아다다는 수롱이에게 돈이 있다 해도 실로 그렇게 많은 돈이 있는 줄은 몰랐다. 그래서 그 많은 돈으로 밭을 산다는 소리에 지금까지 꿈꾸어오던 모든 행복이 여지없이도 일시에 깨어지는 것만 같았던 것이다. 돈으로 인해서 그렇게 행복할 수 있던 자기의 신세는 남편(전남편)의 마음을 악하게 만듦으로 그리고 시부모
의 눈까지 가리는 것이 되어, 필야엔 쫓겨나지 아니치 못하게 되던 일을 생각하면 돈 소리만 들어도 마음은 좋지 않던 것인데, 이제 한 푼 없는 알몸인 줄 알았던 수롱에게도 그렇게 많은 돈이 있어 그것으로 밭을 산다고 기꺼워하는 것을 볼 때, 그 돈의 밑천은 장래 자기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기보다는 몽둥이를 가져다주는 데 지나지 못하는 것 같았고, 밭에다 조를 심는다는 것은 불행의 씨를 심는다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아다다는 그저 섬으로 왔거니 조개나 굴 같은 것을 캐어서 그날그날을 살아가야 할 것만이 수롱의 사랑을 받는 데 더할 수 없는 살림인 줄만 안다. 그래서 이러한 살림이 얼마나 즐거우랴! 혼자 속으로 축복을 하며 수롱을 위하여 일층 벌기에 힘을 써야 할 것을 생각해오던 것이다.
“고롬 논을 사재나? 밭이 싫으문?”
수롱은 아다다의 의견이 알고 싶어 이렇게 또 물었다.
그러나 아다다는 그냥 힘없는 고개만 주억일 뿐이었다. 논을 산대도 그것은 똑같은 불행을 사는 데 있을 것이다. 돈이 있는 이상 어느 것이든지간 사기는 반드시 사고야 말 남편의 심사이었음에 머리를 흔들어댔자 소용이 없을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 근본 불행인 돈을 어찌할 수 없는 이상엔 잠시라도 남편의 마음을 거슬림으로 불쾌하게 할 필요는 없다고 아는 때문이었다.
“흥! 논이 좋은 줄은 너두 아누나! 그러나 가난한 놈에겐 밭이 논보다 나았디 나아…….”
하고, 수롱이는 기어이 밭을 사기로 그 달음에 거간을 내세웠다.
준광인전
선생님! 저는 기가 막히었노이다. 지금껏 제 지방 사람들이 저를 가리켜 위인이 똑똑하다고 그렇게 신용을 하여왔다는 것은 제가 결코 선생님에게 대해서 하는 저의 자랑이 아니노이다. 그러나, 선생님! 김철호가 미쳤다는 풍설이 돌아가자부터는 저의 신용은 납작하여지고 말았노이다. 범사에 있어 도무지 저와는 말하
기를 싫어하고 자리를 같이하여주지 않노이다. 따라서 저는 저 호올로 이 세상에서 인생의 뒷골목 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되었노이다. 그리고 선생님! 아이들의 놀림을 받지 않으면 또 안 되었노이다. 미쳤다는 제 입에서 어떠한 허튼 말이 나오나 제 입에서 나오는 말이 가령, 우스운 말이라면 그것을 들으므로 서로 웃어, 웃음으로써 한때의 행복을 삼으려는, 다시 말씀하오면 즉 저라는 물건으로써 쾌락의 대상을 삼으려는 일종 향락을 위할 따름이었노이다.
선생님! 정신이 멀쩡하여 이렇게 미친 사람의 대우를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제 자신을 생각할 때 울고 싶도록 가슴이 아팠노이다. 아니, 선생님! 이런 것뿐이었겠노이까. 근거도 없는 허무한 풍설이 저를 이끌고 자꾸자꾸 파멸의 구렁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노이다. 김철호는 벌써 인간의 궤도를 벗어난 사람이다. 도덕과 예의는 물론 그에게는 오륜이 없다. 계집을 함부로 농락하고 사람을 치기가 일쑤다. 선생님! 글쎄, 이러한 풍설까지 도는 것이었노이다.
선생님! 저는 저에게 대하여 세상 사람들이 이러한 태도를 취할 때 자신이 파멸의 밑바닥에 떨어져 들어가는 것보다 허무한 풍설을 그대로 듣고, 믿는 그들이 오히려 더 불쌍하게 생각키었노이다. 이렇게도 세상은 어두운 것인가. 기분에서 기분으로 마치 의식이 없는 그것과도 같이 허공을 떠돌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그들의 존재임을 알았을 때, 선생님! 참으로 가슴이 아팠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