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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치 아다다

백치 아다다

(계용묵 단편전집 1)

계용묵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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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치 아다다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백치 아다다 (계용묵 단편전집 1)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86639894
· 쪽수 : 344쪽
· 출판일 : 2019-01-10

책 소개

한국문학을 권하다 34권. 낭만적이고 모호한 현실 인식을 걷어내고 당대적 삶의 실상을 생생하게 포착해낸 계용묵의 작품들을 모은 단편전집으로, 1925년부터 1939년까지 발표한 단편소설 20편을 담았다.

목차

목소리를 삼키고 머뭇거리다가 웅크리고야 마는 _ 전석순

상환相換
최 서방崔書房
인두지주人頭蜘蛛
제비를 그리는 마음
백치 아다다
고절苦節
연애삽화戀愛揮話
심월心月
장벽障壁
목가牧歌
오리알
심원心猿
청춘도
병풍에 그린 닭이
유앵기流鶯記
붕우朋友
캉가루의 조상이
마부馬夫
부부夫歸
준광인전準狂人傳

계용묵 연보

저자소개

계용묵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04년 평북 선천에서 태어난다. 유년시절에 할아버지인 계창전 밑에서 ≪천자문≫, ≪동몽선습≫, ≪소학≫, ≪대학≫, ≪논어≫, ≪맹자≫ 등의 한학을 배운다. 1914년 삼봉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한 뒤 1919년 졸업한 후 서당에서 공부를 지속한다. 1918년에는 안정옥과 결혼한다. 1921년 조부 몰래 상경해 중동학교에 입학한다. 이때 만난 김억을 통해 염상섭, 남궁벽, 김동인 등과 교유하며 문학에 뜻을 두게 된다. 하지만 조부가 신학문을 반대해 잠시 학업을 중단하고 낙향하게 된다. 1922년 4월 다시 조부 몰래 상경해서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6월에 강제로 낙향하게 된다. 17∼18세에 이미 ≪조선일보≫에 논문, 감상문, 시 등을 발표하면서 스스로를 과대평가해, 선배들을 누르고 올라서겠다는 욕심에 5년 동안 두문불출하며 문학 공부를 하게 된다. 이때 이광수가 주재한 ≪조선문단≫으로 ‘최서해, 한설야, 채만식, 임영채, 박화성’ 등이 당선되어 문단에서 대우를 받은 것에 고무된다. 그리하여 1925년 ≪조선문단≫ 제8호에 ‘자아청년(自我靑年)’이라는 필명으로 소설 <상환>을 발표하며 등단한다. 하지만 작품 평이 마음에 들지 않아, 1927년 <최 서방>을 통해 ≪조선문단≫에 재당선된다. 하지만 최서해에 의해 원고가 당선된 것을 알고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1928년 3월 일본 도쿄로 건너가 동양대학 동양학과에서 공부하고 야간에는 정칙학교에서 영어를 배운다. 1929년에는 장녀 정원이 출생한다. 1931년 집안이 파산해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한다. 1932년 차녀 도원이 출생한다. 1935년에는 정비석, 석인해, 전몽수, 김우철, 장기제, 장환, 채정근, 허윤석 등과 함께 동인지 ≪해조(海潮)≫의 발간을 협의했으나 무산되었다. 1938년 5월 조선일보 출판부에 입사했고, ≪매일신문≫에 친일 수필인 <일장기의 당당한 위풍>(1942)을 발표한다. 1943년 8월 일본 천황 불경죄로 구속되었다가 10월에 석방된다. 12월에 방송국에 다시 취직했지만, 일인과의 차별 대우로 사흘 만에 퇴직한다. 징용을 피해 출판 업무를 보다가 ≪조선 전설집≫을 편집해 수만 부를 판매한다. 시골로 낙향했다 해방 이후 상경해서, 1945년 정비석과 함께 종합지 ≪대조(大潮)≫를 창간한다. 1948년 4월에는 김억과 함께 ‘수선사(首善社)’라는 이름의 출판사를 세운다. 또한 1951년 1·4 후퇴 당시 피난을 갔던 제주도에서 월간 ≪신문화≫를 창간해 3호까지 출간한다. 1954년 서울로 환도하고, 1961년 ≪현대문학≫에 <설수집(屑穗集)>을 연재하던 중 장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1986년 은관문화훈장을 추서받는다. <최 서방>(1927), <인두지주>(1928), <백치 아다다>(1935), <별을 헨다>(1949) 등 40여 편에 이르는 과작의 소설을 남겼다. 그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인본주의적 관점을 밑바탕에 깔고 있으며,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등 소외된 약자들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연민이 드러난다. 대표작인 <백치 아다다>(1935)는 벙어리 여성 ‘아다다’의 삶과 죽음을 통해 물욕에 물든 사회의 불합리를 지적하면서, 불구적 조건과 물질적 탐욕으로 인해 비극적 인생을 마감해야 했던 수난당하는 여성상을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인간의 순수성에 대한 따뜻한 연민을 통해 삶의 비애와 질곡을 담담하게 포착하면서, 물욕에 젖은 인간성 상실의 시대에 대한 회의와 질문을 던진 휴머니스트로 평가된다. 첫 창작집 ≪병풍에 그린 닭이≫(1943)를 일제 말기에 출간하면서 창작에 대한 욕심과 겸손을 강조하며 부끄러움과 반가움을 토로한다. 해방 후 출간하는 두 번째 단편집 ≪백치 아다다≫(1946)에서는 검열의 탄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임과 동시에 38선 이북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고백한다. 세 번째 창작집 ≪별을 헨다≫(1949)에서는 해방 이후 창작된 작품들만을 모아 묶어 내면서 작품 창작의 배경을 토로한다. 수필집으로 ≪상아탑≫(1955)이 있으며, 세계 명작 소개집인 ≪여자의 생태≫(1958)를 출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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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최 서방
“이번에도 회계가 채 안 되는군. 모두 오십이 원인데.”
하고 다시 계산을 틀어본다.
“어떻게 그렇게 되오.”
최 서방은 자기의 예산과는 엄청나게 틀린다는 듯이 깜짝 놀라며 이렇게 반문을 했다.
“본(원금)이 사십 원에 변(이자)을 십이 원 더 놓으니까.”
“무어 그 돈에다 변까지 놓아요?”
“변을 안 놓으면 어쩌나. 나도 남의 돈을 빚낸 것인데.”
“그렇다기로 변은 제해주세요.”
“그 돈으로 자네 부처가 일 년이란 열두 달을 먹고 산 것인데 변을 안 물단 게 안 돼 안 돼 건.”
그는 엉터리없는 수작이라는 듯이 ‘안 돼’ 하는 ‘돼’ 자에 힘을 주었다.
최 서방은 보통의 농채와도 다른 이물푼 삯(인수세)에 고가의 변을 지우는 데는 젖 먹던 밸까지 일어났으나 송 지주의 성질을 잘 아는 그는 암만 빌어야 안 될 줄 알고 아예 아무 말도 안 했다.
실상 그는 말하기도 싫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태반이 넉 섬씩이지. 한 섬에 십 원씩 치고도 모자라는 십이 원을 어쩌나? 오라 가만있자, 또 짚이 있것다. 짚이 마흔 단이니까 스무 단씩이지. 그러면 한 단에 십 전씩 치고 이 원, 응응 겨우 우수 떼논 그래 십이 원은 어쩔 테야?”
그는 최 서방이 그리 해주겠다는 승낙도 얻지 않고 자기 혼자 이렇게 결산을 치고 다짜고짜로 일꾼들을 시켜 한 섬도 남기지 않고 모두 자기네 곳간으로 끌어들였다.


백치 아다다
아다다는 수롱이에게 돈이 있다 해도 실로 그렇게 많은 돈이 있는 줄은 몰랐다. 그래서 그 많은 돈으로 밭을 산다는 소리에 지금까지 꿈꾸어오던 모든 행복이 여지없이도 일시에 깨어지는 것만 같았던 것이다. 돈으로 인해서 그렇게 행복할 수 있던 자기의 신세는 남편(전남편)의 마음을 악하게 만듦으로 그리고 시부모
의 눈까지 가리는 것이 되어, 필야엔 쫓겨나지 아니치 못하게 되던 일을 생각하면 돈 소리만 들어도 마음은 좋지 않던 것인데, 이제 한 푼 없는 알몸인 줄 알았던 수롱에게도 그렇게 많은 돈이 있어 그것으로 밭을 산다고 기꺼워하는 것을 볼 때, 그 돈의 밑천은 장래 자기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기보다는 몽둥이를 가져다주는 데 지나지 못하는 것 같았고, 밭에다 조를 심는다는 것은 불행의 씨를 심는다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아다다는 그저 섬으로 왔거니 조개나 굴 같은 것을 캐어서 그날그날을 살아가야 할 것만이 수롱의 사랑을 받는 데 더할 수 없는 살림인 줄만 안다. 그래서 이러한 살림이 얼마나 즐거우랴! 혼자 속으로 축복을 하며 수롱을 위하여 일층 벌기에 힘을 써야 할 것을 생각해오던 것이다.
“고롬 논을 사재나? 밭이 싫으문?”
수롱은 아다다의 의견이 알고 싶어 이렇게 또 물었다.
그러나 아다다는 그냥 힘없는 고개만 주억일 뿐이었다. 논을 산대도 그것은 똑같은 불행을 사는 데 있을 것이다. 돈이 있는 이상 어느 것이든지간 사기는 반드시 사고야 말 남편의 심사이었음에 머리를 흔들어댔자 소용이 없을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 근본 불행인 돈을 어찌할 수 없는 이상엔 잠시라도 남편의 마음을 거슬림으로 불쾌하게 할 필요는 없다고 아는 때문이었다.
“흥! 논이 좋은 줄은 너두 아누나! 그러나 가난한 놈에겐 밭이 논보다 나았디 나아…….”
하고, 수롱이는 기어이 밭을 사기로 그 달음에 거간을 내세웠다.


준광인전
선생님! 저는 기가 막히었노이다. 지금껏 제 지방 사람들이 저를 가리켜 위인이 똑똑하다고 그렇게 신용을 하여왔다는 것은 제가 결코 선생님에게 대해서 하는 저의 자랑이 아니노이다. 그러나, 선생님! 김철호가 미쳤다는 풍설이 돌아가자부터는 저의 신용은 납작하여지고 말았노이다. 범사에 있어 도무지 저와는 말하
기를 싫어하고 자리를 같이하여주지 않노이다. 따라서 저는 저 호올로 이 세상에서 인생의 뒷골목 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되었노이다. 그리고 선생님! 아이들의 놀림을 받지 않으면 또 안 되었노이다. 미쳤다는 제 입에서 어떠한 허튼 말이 나오나 제 입에서 나오는 말이 가령, 우스운 말이라면 그것을 들으므로 서로 웃어, 웃음으로써 한때의 행복을 삼으려는, 다시 말씀하오면 즉 저라는 물건으로써 쾌락의 대상을 삼으려는 일종 향락을 위할 따름이었노이다.
선생님! 정신이 멀쩡하여 이렇게 미친 사람의 대우를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제 자신을 생각할 때 울고 싶도록 가슴이 아팠노이다. 아니, 선생님! 이런 것뿐이었겠노이까. 근거도 없는 허무한 풍설이 저를 이끌고 자꾸자꾸 파멸의 구렁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노이다. 김철호는 벌써 인간의 궤도를 벗어난 사람이다. 도덕과 예의는 물론 그에게는 오륜이 없다. 계집을 함부로 농락하고 사람을 치기가 일쑤다. 선생님! 글쎄, 이러한 풍설까지 도는 것이었노이다.
선생님! 저는 저에게 대하여 세상 사람들이 이러한 태도를 취할 때 자신이 파멸의 밑바닥에 떨어져 들어가는 것보다 허무한 풍설을 그대로 듣고, 믿는 그들이 오히려 더 불쌍하게 생각키었노이다. 이렇게도 세상은 어두운 것인가. 기분에서 기분으로 마치 의식이 없는 그것과도 같이 허공을 떠돌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그들의 존재임을 알았을 때, 선생님! 참으로 가슴이 아팠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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