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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여행 > 프랑스여행 > 프랑스여행 에세이
· ISBN : 9791186732397
· 쪽수 : 472쪽
· 출판일 : 2018-09-10
책 소개
목차
*감사의 말
part 1 하녀의 다락방에서 낭만적으로 만나다
1 기구를 타고 머리 위를 날다/ 02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파리를 해독하다/ 03 페르 라셰즈 묘지로 가는 증기선
part 2 첫번째 위대한 낭만주의 서클을 발견하다 - 마레지구, 생 루이 섬
04 프랑스 혁명 기념일/ 05 게스트의 출현/ 06 반항의 낭만/ 07 정의할 수 없는 것을 정의하다:낭만주의/ 08 시詩라는 무기를 보관하고 있는 무기고/ 09 빅토르, 아델, 생트뵈브의 삼각관계/ 10 에르나니 전투/ 11 로미오, 줄리엣을 찾다/ 12 빅토르에게 정복당하다/ 13 템플 기사단/ 14 역사적인 선물/ 15 발자크의 마레지구
part 3 보들레르의 섬
16 기쁜 슬픔 혹은 낭만적인 불행/ 17 성性, 마약 그리고 멋진 포즈/ 18 꿈속의 섬
part 4 위대한 남성(그리고 여성)을 숭배하다- 노트르담 대성당, 팡테옹
19 낭만의 건축/ 20 반反낭만주의자/ 21 죽은 자들의 아카데미 프랑세즈
part 5 낭만적인 유희 - 뤽상부르 공원, 라틴지구, 생 제르맹 데 프레
22 녹음이 우거진 낭만의 팡테옹/ 23 상드의 자리/ 24 나비 수집가/ 25 회전목마와 사연을 품은 조각상들/ 26 슬며시 보헤미안이 되다/ 27 물 마시는 사람들/ 28 정답은 모뮈스/ 29 색이냐 선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30 술 취한 배, 배고픈 작가, 커다란 클라리넷 두 개/31 들라크루아의 마지막 저항
part 6 볼테르 부두
32 센 강변의 무대/ 33 달타냥과 아몬틸라도의 술통/ 34 뒤마, 들라크루아에게 퇴짜 맞다
part 7 낭만주의의 전성기부터 모더니즘의 탄생까지 - 신아테네와 몽마르트르
35 들라크루아의 수명이 짧은 작품, 길이 남다/ 36 파리의 아크로폴리스/ 37 쇼팽의 손 / 38 언덕 중의 언덕/ 39 악마가 보살펴 주리니/40 빈민가에 출입한 부유한 문인 스타인과 피카소의 푸른 장미/ 41 돌 안에 깃든 영혼
part 8 열린 결말
42 길고도 험난한 길/ 43 파시지구의 고요한 나날들/ 44 SMS를 보내며: 발자크가 사랑을 담아서
*주요 사건 연표
리뷰
책속에서
사진판만큼이나 민감한 감성의 소유자였던 나다르의 머릿속에는 파리의 모습이 속속들이 담겨 있었다. 당시에는 고층빌딩이나 에펠탑도 없었지만 그는 로맨틱한 높이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모습을 종종 상상했다. 마치 새가 된 듯 하늘에서 굽어보며 길거리와 골목, 공원을 누볐고, 땅 아래로 내려와 파리의 하수도와 지하묘지를 탐험했다. 언젠가는 플래시 촬영기법을 발명해서 깜깜한 땅속 깊은 곳의 모습도 기록으로 남기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나다르는 여자들의 마음을 울리는 나쁜 남자로도 유명했다. 그는 당시 다른 프랑스 남자들보다 머리 하나 정도 더 커서 키가 180여 센티미터에 달했다. 살짝 사시가 있었던 그는 풍성한 적갈색 머리카락이 시야를 가리지 않도록 머리를 젖히는 습관이 있었다. 그에게 인생은 장난이었고 끝없는 추격전과 같았다. 그는 고딕 스타일의 유행에 맞춰서 이름을 나다르로 바꿨다. 어렴풋이 중세와 보헤미안의 분위기가 풍기고 도발적으로 들리는 이 이름은 그의 라이프스타일과도 잘 어울렸다. 그와 그의 못 말리는 친구들은 쫓겨나기 하루 전에 이 술집에서 저 술집으로 도망다니는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다. 파리의 다락방을 무대 위로 옮겨온 오페라 〈라 보엠 La Boheme 〉의 원래 이야기 속 주인공은 바로 펠릭스 나다르다.
사실 사랑을 만들어낸 것이 프랑스 사람들은 아니었다. 또한 낭만에 대한 독점권이 파리에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직접 체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내가 음미했던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보헤미안 기질이 느껴졌고 전체적으로 봤을 때 낭만적인 면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로마와 베니스 역시 지극히 낭만적인 도시였다. 내가 경험한 도시들 중 상당수는 파리 못지않게 멋졌다. 그중에는 더 볼 만하거나 흥미진진한 곳들도 있었다. 그런 도시들은 강이나 운하, 만이나 해안가, 언덕과 계곡 혹은 제대로 된 산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눈부신 건축물이 들어서 있었다. 몇몇 도시의 날씨는 기가 막힐 정도로 좋았고, 아름답고 멋지며 섹시하고 친근한 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또한 훌륭한 음식과 풍부한 와인, 역사, 미스터리 등을 간직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파리의 특별함은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일까? 파리에서는 시큼한 효모 반죽 같은 일그러진 석고 회반죽 위로 낭만의 이스트라도 자라는 것일까? 끊이지 않고 내리는 비는 낭만적일까? 나는 파리에 도착한 후 처음 몇 달 동안에는 마냥 행복에 겨워 도시를 활보하고 다녔다. 그 낭만의 토대이자 뿌리가 되는 것들, 정말로 중요하지만 밖으로 드러나 있지 않은 거대하고도 어둡고 비밀스런 것들, 즉 파리와 파리지앵들에게 가장 중요한 생명선과 다름없는 것들을 그냥 지나쳐갔던 것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었지만 파리는 대체로 큰 화는 면했다. 반면 1848년에는 단 나흘 만에 2만 명의 사망자를 내며 참혹하게 짓밟혔다. - 이중 만 명의 시신은 센 강에 버려졌다고 한다. 1870년에서 1871년으로 넘어가는 겨울과 봄에는 프러시아 군대의 침략과 내전으로 인해 수만 명이 사망하면서 파리는 폐허가 되었다. 이 두 번의 난리가 할퀴고 간 흉터는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이 도대체 왜 중요한 것일까? 1830년 7월과 1848년 2월, 1870년, 1871년의 겨울과 봄에 일어난 정치적, 군사적 대격변은 그보다 앞서 일어난 1830년 2월의 이와는 다른 봉기, 즉 예상치 못했던 문학적, 연극적, 예술적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결코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바로 이러한 문화적 반란으로 인해 파리는 낭만주의의 수도가 되었으며, 사랑과 빛의 도시, 낭만의 도시가 되는 길을 떠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