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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서양사 > 로마사
· ISBN : 9791186889015
· 쪽수 : 248쪽
· 출판일 : 2015-11-25
책 소개
목차
들어가기 전에 | 프로코피우스와 유스티니아누스의 시대
영역자 서문
저자 서문
1. 대장군 벨리사리우스가 아내에게 속아 넘어간 사연
2. 벨리사리우스가 뒤늦은 질투심 때문에 군사적 판단을 그르친 사연
3. 여인의 음모를 방해하는 일은 위험하다
4. 테오도라가 아프리카와 이탈리아의 정복자를 모욕하다
5. 테오도라가 장군의 딸을 속이다
6. 유스티누스 황제의 무지, 그리고 그의 조카 유스티니아누스가 실질적 지배자였던 이유
7. 청색파의 만행
8. 유스티니아누스의 외모와 성격
9. 가장 타락한 여인 테오도라가 황제의 사랑을 얻은 방법
10. 유스티니아누스가 타락한 여자와 결혼할 수 있도록 새 법을 만들다
11. 신앙의 수호자가 신민을 멸망시키다
12. 유스티니아누스와 테오도라는 인간의 탈을 쓴 악마들이었음을 증명한다
13. 독재자의 거짓 미소와 신앙심
14. 판결을 돈으로 사고팔다
15. 모든 로마 시민이 노예로 전락하다
16. 테오도라의 눈 밖에 난 이들의 운명
17. 테오도라가 500명의 매춘부를 갱생시킨 사연
18. 유스티니아누스는 수천억의 인명을 살상했다
19. 로마의 모든 부(富)를 야만인들에게 줘버린 유스티니아누스
20. 재무관직을 타락시키다
21. 하늘세 그리고 국경 수비대가 야만족의 침입을 막는 게 금지되었던 이유
22. 고위직들의 극심한 타락
23. 토지 소유자들이 몰락한 이유
24. 군인에 대한 부당한 대우
25. 황제가 관리들의 재산을 강탈한 방법
26. 도시의 미관을 망치고 가난한 자들을 쥐어짜다
27. 신앙의 수호자가 기독교인들의 이익을 지켰다고?
28. 황제가 로마법을 어긴 일과 유대인들이 양고기를 먹고 벌금을 낸 사연
29. 황제가 거짓말쟁이이자 위선자임을 보여주는 다른 사건들
30. 유스티니아누스와 테오도라가 만든 새로운 관습들, 그리고 결론
리뷰
책속에서
하여간 유스티니아누스는 일시적이긴 해도, 5세기 전 최초의 위대한 아우구스투스가 남겼던 것과 유사한, 로마제국의 영토로 둘러싸인 ‘우리의 바다(Mare Nostrum, 지중해를 말함)’를 다시 한 번 만들었고, 하나의 국가, 하나의 교회, 하나의 법이라는 원칙으로 다스렸다. 국가는 ‘유스티니아누스’였고, 교회는 정통파 ‘가톨릭’이었으며, 법은 재정비되고 통합되었던 강력하고 영속적인 ‘유스티니아누스 법’이었다(이를테면 바바리아에서는 1900년까지도 이 법률의 정의들을 사용했다).
『비사』는 이 통일성이 얼마나 엄격하고 심지어 잔인하게 강제되었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프로코피우스는 이탈리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스페인의 재정복을 위해 야심찬 황제의 억압받는 신민들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했는지도 말해준다. 결국 이 재정복은 아무런 보람도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유스티니아누스의 후계자들이 즉시 서방 영토에 대한 지배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유스티니아누스가 만든 물질적인 기념물, 즉 성 소피아 성당만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그 뾰족탑들로부터 신실한 자들이 여전히 기도하러 찾아온다. 다만 아이러니한 것은, 기독교력 1453년부터 이 로마 교회에서 받들어온 신은 바로 무함마드의 ‘알라’라는 사실이다.
(31~32쪽 영역자 서문 중)
제국의 최종적 몰락에 대해서라면, 우리가 본 바와 같이 유스티니아누스의 시절에 이미 조짐이 있었다. 하지만 가을 단풍은 유난히 화려한 법. 로마의 가을도 이 법칙의 예외가 아니었다. 프로코피우스의 콘스탄티노플은 오늘날 삼류 극장의 비잔틴 양식 건물처럼 천박한 취향에 걸맞은 화려한 곳이었다.
이 도시에서 옛 비잔티움의 속된 그리스어가 골목마다 울려퍼졌다. 헤라클레스의 기둥(지브롤터 해협을 말함)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과 함께 노를 젓다 온 선원들, 페르시아에서 온 사절과 스파이들, 반달족, 서고트족, 동고트족 그리고 모든 야만 부족의 사자들이 조락한 메트로폴리스를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일군의 근위대 소대가 행진하며 지나갔고, 그 옆을 항상 화려한 옷을 입은 고급 창녀 무리들이 깔깔거리며 지나가는 군인들에게 휘파람을 불어댔다. 그 옆에는 아마도 귀족의 띠를 덧댄 유행 지난 토가를 입은 어떤 로마인(이름은 ‘데모스테네스’ 따위의 그리스 식 이름이었을 것이다)이 황제의 명에 따라 투표하기 위해 원로원으로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32~33쪽 영역자 서문 중)
벨리사리우스의 집안에는 트라키아의 아리우스파 집안 출신의 테오도시우스(Theodosius)라는 젊은이가 있었다. 벨리사리우스는 리비아 원정을 떠나기 전날 이 젊은이를 성수(聖水)로 세례시키고 기독교의 입양 의식을 치른 후 아들로 받아들였다.
안토니나는 성스러운 주문을 외면서 다정한 어머니처럼 기쁘게 테오도시우스를 끌어안고 보살피기 시작했는데, 그녀의 남편이 전쟁터로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와 격정적으로 사랑에 빠져버렸고, 신과 인간 앞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두려움과 수치심을 던져버리고 애정에 탐닉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처음에는 은밀한 즐거움을 누렸지만, 마침내 하인이나 시녀가 있는 곳에서도 애인을 희롱하기 시작했다. 열정적 사랑에 사로잡힌 그녀는 이제는 거칠 것 없이 쾌락을 추구했던 것이다.
한번은 카르타고에서 벨리사리우스가 그녀가 애인과 함께 즐기는 현장을 잡았는데도 그냥 넘어간 일이 있었다. 그는 지하에 있는 방에서 둘을 발견하고 매우 화를 냈는데, 안토니나는 숨길 게 없으니 전혀 겁날 게 없다는 투로, “전 우리가 노획한 물건들을 여기 숨기려고 얘와 같이 온 거예요. 안 그러면 황제가 알아챌지도 모르니까요”라고 말했다.
이게 그녀가 변명이랍시고 내놓은 이야기였다. 그러자 벨리사리우스는 마치 그녀의 말을 믿기라도 한 듯이 자신이 본 것을 없던 일로 해버렸다. 심지어 그는 테오도시우스의 바지끈이 풀려 있는 걸 보고서도 그러했던 것이다. 아마도 그는 안토니나에 대한 사랑이 너무 컸던 나머지 자신의 눈이 확인한 증거를 불신하는 쪽을 택했던 것 같다.
(64~6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