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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87036135
· 쪽수 : 261쪽
· 출판일 : 2016-11-30
책 소개
목차
책머리에 5
제1부
7월의 나무 그늘 아래 서면 수선화가 그리워진다 13
나를 돌아보며 나를 찾으며 17
사람은 어디로 가나 23
자연의 손길 28
우리네 33
집을 청소하면 왜 내 마음이 맑아질까? 38
죽음 혹은 헤어짐, 쓸쓸함에 대하여 43
바람아, 겨울엔 친하지 말자 49
빈 밭에 서서 한 해를 돌아본다 55
삭도 63
제2부
막히면 막힌 대로 굽으면 굽은 대로 91
내몽골 메뚜기와 말 그리고 사람과 초원 111
나와 시 119
내 삶 속의 동물들 125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당신은 말하지만 134
보이지 않는 죽음을 본다 139
제3부
5월의 나뭇잎, 현준이에게 147
풀벌레 우는 밤은 흔들리지 않고 흐른다 152
손님 158
재잘재잘 163
겨울 어귀에서 바라보는 두 가지 길 그리고 169
사과를 하지도 받지도 않는 사람들 173
애국자들이 너무나 많다 176
무심함이 흐르는 삶을 바라본다 179
나를 지키며 나아가는 삶 181
나는 무엇이고 너는 또 무엇인가? 186
영원으로 이어지는 한 번의 만남을 생각한다 199
은행나무의 웃음 203
문득 걷고 싶은 날 211
봄은 흐른다 215
제4부
서로 다른 꽃이 핀다 221
가을로 가는 길목에 서서 227
저 새를 어찌 가둘 수 있으랴 235
파도소리 그리고 분봉 242
녹음 속에 가을은 있다 245
흐름 249
좁쌀영감 255
오늘 하루를 바라보며 258
저자소개
책속에서
농사를 축소했다. 세 사람 먹을 것만 짓기로 했다. 그리고 좀 더 많은 시간 동안 글을 쓰며 보내겠다고 마음먹었다. “남의 마을에 와서 공짜로 나무를 베어 때니 좋겠네.” 나무를 공짜로 땐다고 하는 마을사람의 말이 듣기 싫어 화목보일러도 연탄보일러로 바꾸었다. 그때부터 마을의 장례행사나 결혼식은 물론 일반적인 모임에도 가급적 참석하지 않았다. 나와 자연과 글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마을일에 협조하지 않는다며 뒷말을 하는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그렇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이 세계 전체와 맞설 자신이 없다면 나의 자유는 보장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아울러 자신만의 세계도 확보할 수가 없다). 자신을 위해 무리를 이루고 파벌을 만드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으려면 강해져야 했다.
별들이 가득한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니 닫혔던 가슴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멀리서 반짝이는 별들, 잊었던 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좁디좁은 마음을 풀어낸다. 낮이 현미경의 세계라면 밤은 망원경의 세계다. 밤하늘의 별들은 우주적 존재로 건너가는, 사람의 징검다리다.
드넓은 품을 간직한 ‘나’를 보고 싶다면 밤하늘을 바라볼 일이다. 거기 우주의 한 부분을 차지한 채 당당하게 반짝이는 내가 있다. 머리를 조아리지도 않고 웃음을 만들어 짓지도 않으며 좁지도 자잘하지도 않은, 우주의 가슴을 간직한 사람이 있다. 언제나 바라봐도 환한 얼굴이 거기에 있다.
인간의 모습으로 있는 동안, 밤하늘의 저 별들과 두 발 디디고 선 이 별 사이의 작은 별로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에 대해 하늘에 감사한다. 내가 죽어도 나는 이 세상의 별일 것이다.
이 좁디좁은 산골에서 살아가려면 사람의 가슴 또한 좁아야 마땅하다. 그래야 별 탈 없이 살아간다. 넓디넓은 가슴은 이런 산골짝엔 맞지가 않다. 품에 겨우 안을 만큼의 하늘 한 조각 가슴에 안고 살아야 한다. 좁쌀영감이 되어야 한다. 산골짜기가 되어야 한다. 저 들판과 바다로 나아가는 문이야 그저 쪼끔만 열어두고 살아야 한다. 산골에 사는 사람은 산을 닮아야 한다. 서로 좁쌀이라 욕하며 살아야 한다.
이 좁디좁은 산골에서 살아가려면 사람의 가슴 또한 좁아야 마땅하다. 그래야 별 탈 없이 살아간다. 넓디넓은 가슴은 이런 산골짝엔 맞지가 않다. 품에 겨우 안을 만큼의 하늘 한 조각 가슴에 안고 살아야 한다. 좁쌀영감이 되어야 한다. 산골짜기가 되어야 한다. 저 들판과 바다로 나아가는 문이야 그저 쪼끔만 열어두고 살아야 한다. 산골에 사는 사람은 산을 닮아야 한다. 서로 좁쌀이라 욕하며 살아야 한다.
내가 이런 마음을 갖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나도 처음엔 사람들의 속 좁음이 답답하여 한숨이 절로 나오곤 했다. 그렇다면 나는? 나는 넓디넓어서 사람들의 속 좁음을 탓하고 있었는가? 물론 아니다. 나 또한 그들의 속 좁음을 탓할 만큼 속 좁은 인간이었다. 어찌 보면 나 스스로를 탓하고 있었다.
그러면 어찌해야 하나? 마음을 넓게 갖겠다고 다짐한다고 해서 즉시 담대한 인간이 되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사람들 또한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여 면전에서 비판을 해봤자 사람됨이 당장 바뀌는 일은 없다.
그냥 인정하자. 어차피 이런 곳에서 넓디넓은 마음은 맞지도 않는다. 산골짜기, 딱 그만큼의 넓이를 가진 마음이면 족하다. 더 넓어봤자 무겁기만 하다.
마음을 정리하고 바라보니 산골 사람들의 얼굴이 곧 산골짜기였다. 그래,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하자. 산골짜기 작은 꽃송이 하나에서 우주를 바라보는 일도, 지금의 나, 나아가 사람들의 현재 모습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가능한 일이 아니다.
인정하고 인정하여 한 마디 말도 할 수 없는 벙어리가 된다한들 인정하지 못하여 답답함에 갇히는 것보다는 낫다. 최소한 감옥은 벗어나자. 나도 좁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