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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91187100515
· 쪽수 : 488쪽
· 출판일 : 2018-03-10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나는 원래 처음 만나는 손님에게 몇 달, 어떨 때는 몇 년이 지난 다음에서야 믿음직한 단골고객 없이 올 수 있는 자격을 부여했다. 그런데 아그네스는 처음에는 불안한 모습을 보이긴 했어도 옛 보물을 이해하고 소중히 여길 줄 아는 타입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루비 이야기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부모님처럼 성실한 성격이었고 진실한 면모가 있었다. 나는 그녀가 부모님의 사랑을 낭만적으로 포장하지 않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공개하지 않았던가. 내가 보기에는 그것이 내 보물을 맡겨도 될 만큼 괜찮은 사람의 자질이었다.
좀 이따가 시장에 가서 싱싱한 저녁거리를 사 와야겠다고 머릿속에 새겨두었다. 화분에 뭐가 있는지 확인하러 발코니로 갔다. 허브들이 하룻밤 새 두 배로 자란 듯 태양을 향해 줄기를 꼿꼿하게 세우고 있었다. 소박한 음식이 어울리는 계절이었다. 데친 후 뵈르 블랑 소스와 한 움큼의 신선한 파슬리를 곁들인 연어. 갓 뽑아서 버터와 섞은 타라곤을 얹은 아스파라거스. 오늘은 훌륭한 요리사이자 오랜 시간을 들여서 내게 프랑스 음식의 기본을 가르쳐준 엄마를 떠올리며 점심으로 비시수아즈(감자와 크림을 넣어서 만드는 수프 ?옮긴이)를 만들어놓고 스토브 위에서 식히고 있었다. 엄마가 봄에 즐겨 만들었던 그 감자 수프는 식었을 때 가장 맛이 좋았는데, 나는 거기에 골파 한 줌을 싹둑싹둑 잘라서 넣었다.
“우리 이제…….”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트리스턴이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가 조슈아를 보았기 때문에 내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서 무릎을 꿇었을 따름이라는 것을 나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는 내 뺨을 손으로 감싸고 허락을 얻으려는 듯 눈썹을 들었다. 나는 대답 대신 그의 입술에 내 입술을 갖다 댔고, 눈을 감고 새로운 사람의 느낌을 받아들인 순간 우리 주변의 세상은 멀어져갔다. 내 입술에 닿은 트리스턴의 입술은 부드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