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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외국시
· ISBN : 9791187141839
· 쪽수 : 200쪽
· 출판일 : 2024-11-08
책 소개
목차
기도시집
제1권 수도자의 삶의 책
제2권 순례의 책
제3권 가난과 죽음의 책
옮긴이의 해설
릴케 연보
책속에서
나의 두 눈의 빛을 끄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나의 두 귀를 꽉 막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두 발이 없어도 나는 당신에게로 갈 수 있습니다.
입이 없어도 나는 당신을 불러낼 수 있습니다.
내 팔을 부러뜨리소서, 나는 마치 손을 가지고 하듯이
나의 가슴으로 그대를 품어 안을 것입니다.
나의 심장을 움켜쥐소서, 그러면 나의 뇌가 고동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나의 뇌 안으로 불길을 던지면,
나는 당신을 나의 피에 실어 나를 것입니다.
『기도시집』의 제1권에서는 자기 만족적인 심미적 예배 ─ ‘신의 더 큰 영광을 위해’ ─ 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이 신과 시적 주체의 위상의 명백한 구도를 통해서 드러난다. 왜냐면 자아의 구성을 통해서 신 역시 끊임없이 재구성되기 때문이다. 주체의 시적 언어작업 없이는 이러한 신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신은 주체가 주체일 수 있기 위해서 필요로 하는 구성 요소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는지도 모른다. 차이의 체험들이 비로소 엄밀하게 자기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이다. 타자의 계속적인 새로운 기획은 자신의 지속적인 기획과 연계된다. 그 배경에는 예컨대 “내가 없이는 신은 살아 있지 않네/나는 내가 없이는 신이 한순간도 살 수 없음을 안다네”라고 노래한 안겔루스 실레지우스가 활동했던 바로크 시대에서 이미 전개되었던 것과 같은 일종의 신비주의적 사상이 있다. 실제로 『기도시집』의 비유나 상징언어는 특별히 성서와 신비주의 전통에서 유래한다.
나를 잃으면 당신은 당신의 의미를 잃게 됩니다.
신은 시적 창작 과정을 통해서 탄생한다. 이것은 인간이 신의 자식이라는 전통적인 관념을 전도시킨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신비주의의 전통을 알아차리게 된다. (......) 1905년 릴케도 처음으로 독일 신비주의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텍스트에 열중했을 때, 그 자신이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이 벌써 수년 전부터 이미 마이스터의 제자이자 포고자였음”에 대해서 놀라움을 나타냈다. “우리가 신을 떠나서 있을 수 없듯이 신도 우리들 현세의 인간을 몹시 필요로 할 것임이 틀림없다”고 믿는, 횔덜린이 읊는 것처럼 “천상적인 것들/무엇인가를 필요로 한다면,/영웅들과 인간들/그리고 기타의 필멸의 존재들이다. 왜냐면/ 가장 복된 자들 스스로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시 「라인강」)라고 믿는 신비주의 전통에 릴케는 서 있었던 것이다. 화가─수도자가 행하는 소박하게 연출된 친밀성도 그러한 신비주의의 현대성의 표현임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항상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작은 신호라도 보내 주십시오.
나는 아주 가까이 있습니다.
시적 자아는 그의 신에게 이렇게 격식을 차려서 자청하고 나선다. 반세기 넘게 지나 첼란(Paul Celan)은 그의 널리 알려진 시 「테네브레」(Tenebrae)에서 똑같이 읊는다. “기도하소서, 주여,/우리에게 기도하소서/우리는 가까이 있습니다.”(시집 『언어의 창살』, 1959)
- 옮긴이 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