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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경제경영 > 기업 경영 > 경영 일반
· ISBN : 9791187289142
· 쪽수 : 284쪽
· 출판일 : 2017-01-31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 당신의 비즈니스에 위대한 ‘예술적 개입’을
1장 미약한 나를 직시한다
완생(完生)은 없다, 진화가 있을 뿐
― 비둘기 발만 300회
― ‘끝’이라 말할 수 있는 순간은 결코 오지 않는다
― 변화하고 진화하는 조직은 죽지 않는다
나를 발견하라
― 그들이 가장 사랑한 피사체
― 거울속의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라
― 당신에게는 내면을 보는 눈이 있는가?
2장 영감을 얻되 흉내 내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것 너머를 본다
― 라파엘로 그림에 담긴 죽음의 징후
― 보지 말고 관찰하라
― 본질을 보는 자만이 새로움을 만들 수 있다
멀리서 빌려오라
―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 애플의 디자인을 낳은 ‘피카소 방식’
전통을 파괴하다
― 원근법을 파괴하다
― 존속과 파괴, 혁신에는 두 가지 모두 필요하다
― 양손잡이 조직이 되어야 한다
몸으로 느끼고, 몸으로 영감을 얻는다
― 그는 왜 그토록 많은 여인을 원했던 걸까
― 머리가 아니라 몸에 폭풍을 일으켜라
3장 경쟁의 에너지를 이용한다
고통스럽지만 위대한 춤
― 마티스의 ‘삶의 환희’ vs 피카소의 ‘삶의 절규’
― 경쟁이 위대함을 만든다
― 룰을 차지하는 경쟁을 하라
비슷하게 훌륭한 것은 필요 없다
― 뚱뚱한 것이 아름답다?
― 거꾸로 가는 경쟁의 기술
자신을 뛰어넘어라
― 안주하는 삶에서는 명작이 나오지 않는다
― 살인자 카라바조가 탄생시킨 ‘테네브리즘’
― 최후의 장애물은 나의 두려움이다
4장 인간의 매력과 한계를 포용하라
모든 것은 인간에 관한 것이다
― 〈사비니 여인들의 중재〉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
― 인간을 인간답게, 리더는 리더답게
인간의 비합리성을 이해하라
― 사형수에게 무죄가 언도된 이유
― 어느 돈은 공돈, 어느 돈은 피 같은 돈?
소통 없이는 독창성도 없다
― 피카소, 독창성을 세일즈하다
― 탁월한 두뇌보다 탁월한 인맥이 더 중요하다
자신의 시야를 의심하라
― 인간의 시야는 원래 좁다
― 틀에 갇힌 그림은 죽은 그림이다
― 기존의 틀을 깨고 보는 법
5장 영혼의 힘을 믿는다
직관을 발휘하라
― 녹아내리는 치즈에서 ‘시간’을 발견하기까지
― 불평하고, 기록하고, 믿어라
기본이 갖춰져야 걸작이 만들어진다
― 동서고금의 절대적 성공법칙
― 원칙이 노하우를 이긴다
말이 아닌 행동을 들어라
― 욕하면서 보는 그림?
― 겉 다르고 속 다른 인간의 속성을 이해하라
에필로그 | 이윤을 넘어, 어떤 흔적을 남기겠는가?
주註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피카소는 1881년 10월 25일, 에스파냐 안달루시아의 말라가에서 태어났다. 그는 고통으로 세상을 맞이했다. 출산을 돕던 산파는 아이가 죽은 줄 알고 그냥 내버려두었다고 한다. 혼자서 제대로 호흡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삼촌이 담배연기를 그의 콧구멍에 불어넣어주어 비로소 삶이 시작되었다.
피카소는 중산층에 속했던 어머니 마리아 피카소 로페즈와 화가이자 투우광이었던 아버지 호세 루이즈 블라스코의 첫째아이로 태어났다. 양가 모두 귀족의 혈통을 잇고 있었지만 피카소가 태어날 즈음에는 어떤 고상함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버지 호세는 말라가의 미술학교에서 그림을 가르치는 교사이자 지방 미술관의 큐레이터였다. 아들의 예술적 재능을 일찌감치 간파한 아버지로부터 전통적인 아카데미 방식의 미술 수업을 받았지만, 화가로서 그는 어머니의 이름을 따서 ‘파블로 피카소’라 불렸다. 무의식중에 아버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열한 살이 되도록 가장 초보적인 읽기나 쓰기, 덧셈, 뺄셈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으니, 피카소의 학교생활은 그리 대단할 것이 없었다. 오직 그림만이 그의 즐거움이었다. 남아 있는 초기 스케치와 그림들에는 그 시절 그의 특출한 재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특히 아버지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그림에서 투우와 비둘기들을 훌륭하게 표현해냈다. 피카소가 아홉 살 때 완성한 첫 작품 〈피카도르〉를 보라. ‘피카도르(Le Picador)’라는 제목은 ‘투우경기에서 말을 탄 남자’라는 뜻이다. 언뜻 보면 여느 아이들이 그린 그림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다. 우선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배치가 매우 안정적이고 사실적이다. 인물과 말의 비율 또한 어느 정도 맞다. 아직 원근법에 대한 개념은 없어 보이지만 공간감, 명암, 그림자 등은 비교적 잘 표현되었다.
이것이 오로지 타고난 재능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면 오해다. 사실 그의 재능은 아버지의 혹독한 훈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의 아버지는 피카소에게 비둘기 발만 300회 이상 반복해서 그리도록 시켰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15세가 되자 피카소가 사람의 얼굴은 물론 몸체도 다 그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비둘기 발밖에 그리지 않았지만 어느덧 모델 없이도 어떤 그림이든 그릴 수 있게 되었다.
- 1장 미약한 나를 직시한다
모방의 반대말이 창조라는 것은 적어도 현실의 예술세계에서는 잘못된 개념이다. 창조는 모방에서 시작되며, 나아가 모방은 창조를 위한 선행변수다. 비즈니스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적으로 애플을 보라. 애플은 위대한 기업이다. 미적으로 아름답고 탁월한 디자인뿐 아니라 사용하기 쉬운 시스템을 개발해 전자제품의 대변혁을 몰고 왔다. 그들의 혁신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오늘날 애플이 혁신의 대명사가 된 배경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애플이 아이폰, 아이패드, 애플워치 등에 특유의 세련된 디자인을 구현할 수 있었던 것은 피카소에 대한 꾸준한 모방을 통해서 가능했다.
〈뉴욕타임스〉는 2014년 8월 애플 직원들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애플 대학(Apple University)’으로 불리는 애플 연수원의 커리큘럼과 건물구조, 운영방식 등을 소개했다.
인터뷰에 응한 애플 직원들은 연수원 수업의 핵심과정으로 애니메이션 제작사 픽사 출신인 랜디 넬슨 교수의 ‘애플 소통법’을 꼽았다. 다양한 직위의 구성원들이 동시에 수강하는 이 강좌는 애플에서 효과적으로 일하는 법을 소개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이 수업에서 넬슨 교수는 피카소의 1945년 작품인 〈황소 연작〉을 소개했다.
당시 넬슨 교수는 피카소가 황소를 1개월 동안 꾸준히 관찰하고 작업하여 10개 남짓의 단순한 선만으로 표현한 사례를 언급하며, 애플 제품의 뛰어난 디자인과 성공도 ‘피카소 방식’에서 비롯됐다고 강조했다. 넬슨 교수는 78개의 버튼이 달린 ‘구글TV’ 리모컨과 단 3개의 버튼만 남긴 ‘애플TV’ 리모컨을 비교한 뒤, “구글은 구성원들 개개인이 원하는 것을 모두 넣는 바람에 버튼이 78개나 됐지만, 애플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 뭔지 치열하게 토론한 결과 버튼 3개면 충분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오늘날 세계를 매료시킨 애플의 단순함이 피카소의 심플함을 모방한 결과물이라는 의미다.
- 2장 영감을 얻되 흉내 내지 않는다
아직 실력이 무르익지 않은 젊은 화가들은 조바심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거장들의 특성을 다 결합시키고 싶어 한다. 마티스의 색채, 반 고흐의 터치, 피카소의 구성을 모두 합쳐보겠다는 식이다. 마치 아우디와 볼보가 서로의 장점을 접목했던 것처럼 말이다. 과연 보테로도 그렇게 했을까? 아니다. 그랬다면 오늘날 우리가 기억하는 보테로는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보테로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학생들과 달리 난 항상 추상미술에서 불완전한 무언가를 느낀다. 예술은 위대한 표현의 기술과 장식적인 형태의 조화라고 생각하는데, 내게 추상미술은 그저 장식예술에 불과하다.”
2003년 파리의 마욜 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보테로가 한 말이다. 그리고 그는 인물화에 집중한다. 인물화야말로 자신의 뿌리인 남미문화의 전통과 연결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했기 때문이다. 유럽에 체류하는 동안 보테로는 대가들의 작품을 그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여 그리기 시작했다. 라파엘로, 벨라스케스, 알브레히트 뒤러, 얀 반 에이크, 비제 르 브룅 등 대가의 작품을 독창적이고 전혀 색다른 느낌으로 재탄생시켰다.
백문이 불여일견, 그의 그림을 보자. 오른쪽 그림은 보테로가 그린 〈발레 바의 무용수〉라는 작품이다. 그림의 무용수는 키 150cm에 몸무게 100kg은 족히 넘어 보인다. 이상적인 몸매는 아닌데, 볼수록 매력이 느껴진다. 분명 뚱뚱하지만 무겁지는 않다. 오히려 바람 불면 훅 날아가버릴 듯 가벼운 느낌이다. 그래서 보는 관객들에게 답답함이 아닌 경쾌함을 전달한다.
여기에 덧붙여 보테로의 작품은 어딘가 모르게 촌스러움이 있다. 그런데 그 촌스러움이 ‘세련됨’의 반대말이라기보다는 ‘여유 없음’의 반대말처럼 느껴진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느긋한 여유가 생긴다. 이러한 이유로 보테로의 작품은 평론가들로부터는 이해받지 못할지언정 일반 관객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삶의 고통이나 침울함, 죽음 등의 무거운 주제를 다루어야 예술작품에 깊이가 생기는 걸까? 보테로의 ‘절대 볼륨’이라 부를 만한 독창적인 스타일은 서양 예술사에 깊게 뿌리박힌 편견에 경종을 울린다.
또한 그의 그림은 사물을 정확히 화폭에 재현해야 한다는 서양 미술사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오히려 사물에서 느껴지는 개성을 극대화함으로써 보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이는 대다수의 화가들이 놓치고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보테로의 볼륨감 있는 그림은 다른 화가들과 확실하게 구별되는 차별화 전략이다. 그가 그림을 시작한 당시에는 피카소를 비롯한 세잔, 루벤스, 고흐 등 거장들이 남긴 유산이 서양미술계를 여전히 지배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든 자기만의 개성이 필요했다. 구성과 구도, 색채, 형태, 스타일 등 모든 영역에 집중할 수는 없었다. 역량과 자원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보테로가 모든 영역에 집중했다면 그 역시 경쟁의 역설에 사로잡히고 말았을 것이다.
- 3장 경쟁의 에너지를 이용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