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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87342106
· 쪽수 : 96쪽
· 출판일 : 2018-07-09
책 소개
목차
1.거대한 뿌리의 강림
2.앉는 법
3.매끄러움
4.김일성 만세!
5.술값
6.파블로프의 개
7.대한민국 만세!
8.우주정거장
[부록]
1.거대한 뿌리_김수영
2.김일성 만세_김수영
책속에서
청년 시절 강렬하게 매료됐던 시, 그러나 고작 기억하고 있는 것이라곤 ‘아이스크림은 미국놈 좆대강이나 빨아라’와 비숍 여사 어쩌고저쩌고 한 것이 전부인데, 다시 읽어보니 특히 이 대목(아래 인용)은 내 똥구멍에 손을 홀라당 뒤집어 까놓고 오장육보를 오천 미터 맥반석 지하수로 확 씻어내는 기분이었다.
비숍 여사와 연애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진보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네에미 씹이다 통일도 개좆이다
저게 바로 거대한 뿌리야, 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꿩 대신 닭이라고 술잔을 세차게 내리쳤다. 그러고 나서 하고 싶은 말을 할 능력이 없는 나는 벌떡 일어나 “김수영 만세, 김일성
만세”라고 외쳤다. 아, 이번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식당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눈에 시퍼런 불을 켜고 나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이 화형식의 불길에 대항하기 위해 김일성 만세를 두 번 더 외쳤다. 김병관이 외마디를 질렀다.
“형 왜 그래? 미쳤어?”
이 순간 공주형은 서부의 건맨처럼 순식간에 카메라를 꺼내 나를 찍기 시작했다.
“그래, 나 미쳤다. 니들은 안 미쳐서 좋겠다. 김수영 시인
이 안 미쳤으면 〈김일성 만세〉라는 시를 썼겠냐. 이 호랑말코 같은 새끼들아.”
나는 손가락을 대창처럼 꽂꽂이 세워 나를 화형시키려는 무지한 인간들의 눈을 겨냥했다. 바로 그때 뜻밖의 사태가 벌어졌다.
나는 내일 경찰서에 출두해서 다시 한 번 묵비권을 행사해야 한다. 내가 묵비권을 행사하는 건 수사관 앞에서 무슨 사실을 말한다는 게 코미디이기 때문이다. 당신 왜 김일성 만세라고 불렀어? 하면 뭐라고 말해야 하는가? 김수영 시읜의 시를 낭송했소, 라고 해야 하는가. 수사관이 원하는 건 딱 한 가지. 종북 혐의가 있느냐 없느냐인데 거기다 대고 문학을 이야기하고 자유와 기본권을 말해 무엇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