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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87413288
· 쪽수 : 286쪽
· 출판일 : 2018-05-10
책 소개
목차
제1장 존재에 대한 단상
홍시 12
코스모스 14
벌레 16
까마귀 19
모과 한 알 31
모월모시(某月某時) 33
문답(問答) 36
법정 스님의 엽서 43
제2장 몸에 대한 사유
몸 48
몸을 붙들고 51
나는 몸으로 쓴다 58
간시궐(幹屎厥) 60
냉장고의 눈물 65
데미지 67
사드 후작에 관하여 74
제3장 자연에서 배우다
고엽(枯葉) 94
숲으로 가자 100
자연에서 배우다 105
화두 108
유택(幽宅) 114
가을 117
시간의 강가에서 124
제4장 문학의 힘
붓 한 자루 134
문학의 힘 138
정신에 영향을 주는 것은 문학밖에 없다 142
노년의 식탁 146
저물녘 벌판에 앉은 눈사람처럼 150
인공지능, 수필을 쓸 수 있을까 154
좋은 수필을 쓰려면 162
제5장 독서의 즐거움
그 밝은 것을 어둡게 하라 174
가득 찬 것은 오래 갈 수 없다 178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182
자아의 속임수를 폭로하다 185
만들어진 신 188
마지막 선물 191
보르헤스의 불교 강의 195
제6장 불교로 읽는 문학
사무엘 베케트 씨에게 200
몽테뉴의 ‘수상록’ 212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221
말라르메의 부재(不在)인식과 허공 꽃 237
해설 진심출사(眞心出死)의 수필미학 / 유한근 · 259
저자소개
책속에서
모과 한 알
수필가 K씨는 해마다 마당에서 수확한 가을을 보내온다. 이번에도 상자 속에 모과 세 개가 들어 있었다. 아기 머리통만한 모과는 손끝에서 무쭐했다.
아마도 그녀의 정원에서 간택된 제일 잘 생긴 놈이지 싶다. 피부는 어린 연두에 노랑 빛깔을 띠고 있으나 몸통은 산맥처럼 꿈틀대는 골격이 범상치 않다. 그 중 두 개는 모과차를 만들고 두상(頭像)과 빛깔이 제일 나은 것을 골라 안방 문갑 위에 두었다. 방문을 여닫을 때마다 은은한 향기가 따라나오고 빛깔도 점차 황금빛으로 익어갔다.
어느 날은 방문을 여니 모과가 그 방의 주인인 것처럼 정좌(靜坐)하고 있었다. 미더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의 시간은 어디까지였을까?
가을이 땅으로 내려앉고 하늘에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을 무렵인가, 그때부터 그의 모습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몸에 갈색 반점이 번지고 늙은 대추마냥 쪼그라들더니 시커먼 하나의 돌덩어리에 불과했다.
“들어내야지” 하면서도 왠지 손길이 쉽게 가지 않았다.
한가람 디자인미술관의 회랑을 돌 때였다.
울퉁불퉁한 시커먼 돌덩어리, 그건 내 첫인상이었고 청동으로 부조된 자코메티의 마지막 작품 〈앉아 있는 남자의 흉상〉이었다. 배코 친 두상에 비쩍 마른 얼굴, 눈빛은 형형한데 그친 입술〔止〕은삐뚤어졌고…… 뭔지 모를 고통이 솟구쳤다. 그때 등신불이 떠올랐다.
젖줄이 끊긴 아이처럼 나무에서 박리(剝離)된 채 제 모습의 꼴을 갖추느라고 힘들었을 모과의 고행(苦行)정진이 짚어졌다.
나는 그날 우연히 모과 한 알에서 고행승의 열반을 보는 듯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