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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87685999
· 쪽수 : 266쪽
· 출판일 : 2023-03-20
책 소개
목차
여는 글
Ⅰ. ‘낙오’라는 이름의 저항
스키로 도 닦기
어떤 마음은 보인다
짓는(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
2달간의 강제 디톡스
대형마트를 가지 않는다
‘업데이트하시겠습니까?’
‘대충 잘 살자’는 말에 대하여
카톡 안 하는 고집
카톡도 안 하는 나는 문자메시지 ‘중독’이다
‘낙오’라는 이름의 저항
코로나19 시대의 ‘자발적 자가격리
Ⅱ. 천개의샘
이름, 뒤집지 말자
내 이름을 사랑한다는 것
이름의 역사를 아시나요?
‘자영이’를 아시나요?
모자 쓸 용기
천개의샘
<싱어게인 무명가수전>: 이름이란
마감형인간
무엇이 사람을 바꿀까?
다시 공부하는 사람들
“괜찮을까요?” “안 괜찮습니다만…”
미래를 보다
Ⅲ. ‘온전한 개인’으로 사는 일의 어려움에 대하여
‘아무개 교수입니다’와 ‘교수 아무개입니다’의 차이
‘개별자’ 되기의 어려움: 어디 사람인데?
‘온전한 개인’으로 사는 일의 어려움에 대하여: 어떤 정체성은 ‘약점’이다. 자넨 고향이 어딘가?
“경상도 사람들은 교육을 어떻게 시키길래…”
“며느리는 며느리지, 뭐!”_ ‘건강한 거리’를 위하여
서로를 가능한 한 끝까지 ‘개별자’로 인식하는 일, 지금 시작합시다
Ⅳ. 돛단배가 언제 가장 빨리 갈 수 있는지 아시나요?
돛단배가 언제 가장 빨리 갈 수 있는지 아시나요?
너는 알아서 잘하잖아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나도 아프다 해도 되지 않을까
상처를 직면하는 글쓰기
당신에게 가장 아픈 상처를 준 사람은 누구?
Ⅴ. ‘어쩌다 선생’의 자기고백
‘어쩌다 선생’의 자기고백
“꿈 = 직업 정하기?” 질문이 잘못되었다!
잘못된 질문의 부작용: 꿈이 사라졌다?
진로 문제는 젊은이들만의 문제?
‘원형질’이라는 것
원형질대로 사는 것이 더 좋은 것일까?
나의 원형질: “9시에 출근하는 직장에는 안 다닐래요”
원형질은 변하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원형질에 딱 맞는 단 하나의 일?
Ⅵ.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시달릴 젊은 그대들에게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시달릴 젊은 그대들에게
이래도 불안, 저래도 불안, 그래도 공무원? 그런데… 개인의 안녕이 가장 중요한 공무원?
어쩌다 직업?!
아니라 생각되는 길을 가는 학생을 더는 말리지 않는다
‘용감한’ 선택
늘 “아직 잘 모르겠어요”라는 멋진(!) 친구들
‘나쁜 속담’: 가다가 중지하면 아니 간만 못하다
학생들의 ‘잃어버린 청춘’을 함께 슬퍼함
네모가 세모에게
닫는 글
감사의 글
부록 | 학생들과의 기억 기록
저자소개
책속에서
자신의 일을 삶에서 소외시키지 않는 방식을 직접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참 ‘다행이다’ 싶습니다. 그분들이 나를 직접 먹여 살리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왠지 그분들을 보며 내 삶이 아직은 ‘안전’할 수 있겠구나, 이 나라의 내일이 있겠구나, 안도합니다. 적어도 이 경우에 인생은 복리의 법칙에 따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삶의 재미와 의미를 찾고 발견하고 누리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회가 ‘행복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지 않을까요? 그런 사회 안에 사는 내 행복지수도 자연스레 높아지겠지요? 그래서 내 주변에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만들어가는 행복한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더 자주 많이 만나고 싶습니다. 그들이 나눠주는 건강한 기운으로 나도 조금은 더 행복해질 수 있을 테니까요.
워낙 궁금한 것이 많은 인간이기도 하지만, 어떤 공간을 방문할 때 꼭 하는 일 중 하나가 공간 명의 ‘역사’를 확인하는 겁니다. 어떤 공간을 공들여 만들면서 이름을 ‘함부로’ 짓는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니까요. 공간 명의 뜻과 이유를 알게 되면 그 공간에 대한 이해가 한층 높아지지요. 근무하는 학교 근처 카페 중에 ‘주비’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곳이 있습니다. ‘두루 향기롭다’라고 이름의 뜻도 같이 적혀 있지요. 딸의 이름이라 들었습니다. 이런 이름을 지어주는 부모가 있는 이 따님. 몸 맘 건강하게 아주 잘 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카페 주인장과 잠시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본인의 카페 또한 ‘두루 향기롭기를’ 바라는 마음이 읽혀서 좋았습니다.
당시 가끔 교수님들이 물으셨습니다: “자넨 고향이 어딘가?” 살짝 고민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뭐라고 답을 해야 하나…. 사실 고민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서울입니다” 하면 될 일이었죠. 그러나 당시 내가 선택했던 대답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부모님 고향은 해남이시고, 저는 서울에서 나서 자랐습니다.” 나는 당연히(!) 서울 말씨를 쓰고 있었고, 부모님 고향을 물은 것도 아니었으니, 저리 대답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리 대답했어야만 했습니다! 대체 왜 나는 그런 대답을 했으며, 또는 해야만 했으며 심지어 앵무새처럼 계속해서 그 답을 반복 재생산했던 것일까요?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에 나는 지금도 똑같이 답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