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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87756200
· 쪽수 : 167쪽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아버지의 발화점 ― 13
먼지 ― 15
폴리에스테르 로드 ― 16
Vincent Van Gogh 1 ― 17
캥거루의 밤 ― 20
대형 마트의 사회학 ― 24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 26
서커스 ― 29
붉고 슬픈 홈런 ― 30
지네 ― 34
헨젤과 그레텔 ― 35
소음 보청기 ― 40
52-hertz whale ― 42
제2부
마더 ― 47
흡혈귀의 시간 ― 48
클라인 씨의 병 ― 52
토이 크레인 ― 55
키위, 혹은 ― 58
모나미 153 ― 60
WELCOME JUICE ― 62
새장 ― 64
누이의 방 ― 67
목격담 ― 70
80년대식으로 말하다 ― 72
이상 성애 강철 거인 ― 73
겨우살이 ― 76
닭가게 마사오 ― 78
소문 배급소 ― 80
제3부
사월 초파일 ― 85
사상 검증 ― 86
암각을 헛디디는 정오 ― 88
Vincent Van Gogh 2 ― 90
루시드 드림 1 ― 92
핑크 플로이드 버전의 학교 ― 95
있을 법한 상담 ― 100
루시드 드림 2 ― 102
아카시아 아닌 ― 104
자목련 지다 ― 106
송정못에서 ― 107
기억해야 할 동행 ― 108
벚꽃 엔딩 ― 110
겨울 삽화 ― 111
습작기 ― 112
놀이터의 사회학 ― 113
제4부
울기엔 좀 애매한 ― 119
서점의 사회학 ― 122
노안 ― 125
거미줄바위솔 ― 126
우울한 오후 ― 128
나의 아내, 소냐 ― 130
안전한 병원 ― 132
거미 ― 135
바람이 쓴 일기 ― 136
신정동 ― 138
다시, 봄 ― 140
브레히트가 그린 나의 자화상 ― 142
섬의 방식 ― 143
해설
박정희 ‘빚 있는 자’의 발화(發火)를 위한 발화(發話)들 ― 147
저자소개
책속에서
아버지의 발화점
바람은 언제나 삶의 가장 허름한 부위를 파고들었고 그래서 우리의 세입은 더 부끄러웠다. 종일 담배 냄새를 묻히고 돌아다니다 귀가한 아버지의 몸에서 기름 냄새가 났다. 여름밤의 잠은 퉁퉁 불은 소면처럼 툭툭 끊어졌고 물 묻은 몸은 울음의 부피만 서서히 불리고 있었다.
올해도 김장을 해야 할까. 학교를 그만둘 생각이에요. 배추 값이 오를 것 같은데. 대학이 다는 아니잖아요. 편의점 아르바이트라도 하면 생계는 문제없을 거예요. 그나저나 갈 곳이 있을지 모르겠다. 제길, 두통약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남루함이 죄였다. 아름답게 태어나지 못한 것, 아름답게 성형하지 못한 것이 죄였다. 이미 골목은 불안한 공기로 구석구석이 짓이겨져 있었다. 우리의 창백한 목소리는 이미 결박당해 빠져나갈 수 없었다. 낮은 곳에 있던 자가 망루에 오를 때는 낮은 곳마저 빼앗겼을 때다.
우리의 집은 거미집보다 더 가늘고 위태로워요. 거미집도 때가 되면 바람에 헐리지 않니. 그래요. 거미 역시 동의한 적이 없지요. 차라리 무거워도 달팽이처럼 이고 다닐 수 있는 집이 있었으면, 아니 집이란 것이 아예 없었으면. 우리의 아파트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고층 아파트는 떨어질 때나 유용한 거예요. 그나저나 누가 이처럼 쉽게 헐려 버릴 집을 지은 걸까요.
알아요. 저 모든 것들은 우리를 소각하고 밀어내기 위한 거라는 걸. 네 아버지는 아닐 거다. 네 아버지의 젖은 몸이 탈 수는 없을 테니. 네 아버지는 한 번도 타오른 적이 없다. 어머니, 아버지는 횃불처럼 기름에 스스로를 적시며 살아오셨던 거예요. 아, 휘발성의 아버지, 집을 지키기 위한 단 한 번 발화. ***
키위, 혹은
지금 둘이 살기도 빠듯하고 힘든데 애를 낳으면 어떻게 해요? 애는 누가 키우구요? 우리가 뻐꾸기처럼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 것도 아닌데, 친정엄마도 아프고 시어머니도 질색이신데, 지금도 아파트 대출 원금은커녕 이자 갚기도 힘이 든데 아기를 낳는 순간 직장에서 잘릴 게 뻔한데 당신이 벌어 오는 고만고만한 월급으로 세 식구가 어떻게 살겠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에게 우리의 삶을 온전히 물려주기는 싫어요. 제발 날개가 퇴화되기 전의 우리 부모들과 우리의 삶을 동일시하지 말아요.
여기서 한나절을 꼬박 날아가면 닿게 되는 뉴질랜드에는 날지 못하는 새가 있다지. 제 이름을 스스로 부르는 새라는데, 키위 새는 날개를 쓰지 않다가 끝내 날개가 퇴화되어 손톱만큼도 날지 못하고 땅 위를 걸어 다닌다지, 그러다가 물려 죽거나, 제 몸의 4분의 1이나 되는 알을 낳다가 대부분 죽는다는데, 혹시 순산을 하게 되더라도 평생을 날개 없이 걸어 다녀야 하는 숙명을 물려주어야 한다는데, 키위 새가 사는 법은 알을 낳지 않은 것, 그리고 알을 낳지 않기 위해서는 짝짓기도 하지 않는 것,
우리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