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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을 꿈꾸는 광야의 선지동산

출애굽을 꿈꾸는 광야의 선지동산

(교직 30년 외전)

유정욱 (지은이)
  |  
참(도서출판)
2019-09-20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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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을 꿈꾸는 광야의 선지동산

책 정보

· 제목 : 출애굽을 꿈꾸는 광야의 선지동산 (교직 30년 외전)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88572137
· 쪽수 : 256쪽

책 소개

4번의 대학교수 임용과 1번의 공직 임용으로 4번의 사직과 5번의 기회가 주어졌기에 인생 4막 5장을 살고 있는 저자가 교직 30년을 회고한 책이다. 시인으로서 고독을 품고 있는 저자가 여러 인간관계와 사건들이 얽히고설킨 대학에서 어떻게 자신의 삶을 유지하고 살았는지 담담하게 서술되어 있다.

목차

서문
서평
추천의 글

1부 장정봉의 추억
고독(Solitude)
장정봉 아래에서
다시 장정봉 아래로
사랑은… 실천이다.
45세의 허무
교원 전공전환의 성공적 사례
신입생 충원율 80%가 주는 의미
무더운 여름, 대학의 현상
구조조정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요?
아침 단상
이제 저는 저의 작은 행복(HappYness)을 찾고자 합니다
광복 66주년, ****대학 개교 66주년
콩 한 쪽 약속
올바른 보필이 무엇일까?
어찌할꼬
장정봉을 또 떠나야 할 때
장정봉아!
장정봉을 다시 떠나며

2부 애굽을 향한 발걸음
장정봉아, 잘 있어
인내와 믿음: 신앙 성장의 조건
[교육 포커스] 대학의 수업목적 저작물 이용 보상금 지급에 대한 합리적 대응
[발언대] 대학 수업목적 저작물 이용보상금제 유예를
인문학적 사고( ), 99세까지 88하게 사는 길
2013 도전! 희망의 **대학교
존경하옵는 이사장님께!
글을 쓰게 된 동기
긴 하루
봄비
슬픈 것이 인생
마음의 빚
선지동산 365일
<시집> 고난의 선물

3부 출애굽을 꿈꾸며
멍에
교수회의 긴급 안건 상정에 관한 일
<시집> 천 개의 소망이 되어
선지동산 가족께!
학내사태의 빠른 해결 촉구 문자
선지동산의 대립과 갈등을 바라보며
신대원 교수님께! (2017.12.06.)
마지막 고언
고별
성탄, 위대한 가르침에 순종
사랑하는 91기 주바라기 여러분!
[기사] 총신대 전산실, 비대위 학생들이 점거 사태 발생
[기사] 총신대 학생들, 김** 총장 면담 요구 철야 대치
[기사] 총신 유정욱 교수, 김** 총장 형사 고발
[기자회견문] 선지동산 가족께!
[특별기고] 추녀 빌려 줬더니 본가를 빼앗다
[특별기고] “출애굽을 꿈꾸는 선지동산”
교육부 실태조사단에게 제출한 보고서(4건)
총신! 이젠, 잠잠할 때라.
신속판결을 요망하는 탄원서

4부 광야의 선지동산
재회
[기사] 교육부 임시이사 파견
「총신대학교 정상화를 위한 현황 과제 제출」
총신대학교 내부대책위원회가 김** 총장 부역자들에게 공개사과를 촉구했던 취지
2018학년도 아동학과(4학년 편입학 과정) 학·석사 연계과정 운영 관련
대학 정상화를 위한 인사행정 개편의 공개 촉구 필요성에 대하여
「대학 정상화를 위한 인사행정 개편 및 규정 미준수의 건 해결」요청
2013년 이후의「 미지급 가족수당」에 관한 공동 신청 안내문
학교법인 이사회에 드리는 청원문
총장 이재서 교수 선출…총신 정상화 ‘새바람 예고’
[기사] 총신, 비대위 천막 완전철거
「새로운 100년을 향한 총신의 변혁을 소망하며 드리는 호소문」
연봉제 교원에 대한「 가족수당 및 자녀학비보조금 지급」 차별에 관한 개선 요구의 건
교육중점교원 및 직무직(무기계약직) 직원 선생님께!
합동 총회 교단 지도자 및 제 교회 목회자님과 성도님들께!
선지동산 공동체에게 드리는 서신!

부록
총신의 정상화를 위해 ‘용서와 화해를 촉구’한 총회장의 목회서신(1-3보)
◈ 학내사태의 주요 경과 및 개인 활동 일지

저자소개

유정욱 (지은이)    정보 더보기
전북 남원 출생(1959년생) 시인, 수필가(창조문학) 공학박사(명지대 화학공학) 행정학박사(목포대 자치복지행정학) 호남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휴학) 총신대학교 부교수(2013.3.1.~2019년 현재) 강동대학교 부교수(2012.3.1.~2013.2.28.) 동아보건대학교 교수(1996.3.1.~2012.2.28.) 중소기업청 공업연구사(1995.6.21.~1996.2.29.) 동아전문대학 조교수(1994.3.1.~1995.6.20.) 명지대학교 실습조교(1983, 1988~1990) 시집 : 고난의 선물(쿰란출판사, 2015) 천 개의 소망이 되어(창조문학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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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제1부 장정봉의 추억!

1. 고독(Solitude)

“사람과 함께 기뻐하고 사람과 함께 웃어라.
그대가 가진 모든 것을 서로 나눌 때 고독은 없어지리라.”

인간은 원초적인 본능으로만 살아가는 동물과 달리 희로애락의 감정과 삶의 목표를 추구하며 더불어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행복을 느끼고 때로는 실패에 대한 쓴맛을 느끼며 고뇌와 번민에 빠지곤 한다.
낮 동안에 정신없이 생활하다보면 잡념과 피로를 덜 느끼지만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가는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을 쉴 여유가 생기는 해질 무렵에는 간혹 짙은 고독이 찾아온다. 이 테두리를 벗어나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어디론가 자유롭게 떠나고 싶은 마음.
이런 생각은 처자식이 있는 몸이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상상만으로 그치곤 하지만, 이 상상자체로도 작은 즐거움을 맛 보곤 한다. 이러한 생각은 오늘을 사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할 것이다. 계속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기계처럼 꼭 돌아가는 틀에 박힌 듯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
문득 이 단조로움과 무력감에서 벗어나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솟곤 한다. 가끔 내 자신이 기쁨도 없고 사랑도 없는 무감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시인 릴케는 “우리들은 두려우리만치 고독하여 서로서로가 의지하고 있다”라고 읊고 있지만 현대인은 그렇지 못하고 있다.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거리를 걸으며 이 세상과 자기 자신을 향해 욕설을 내 뿜으며 원망을 하지 않는가. 물론 예외의 사람들도 있다.
왜 쌓인 스트레스와 고독을 이런 방법으로 풀어가야 하는지 자조하지만 범부에 지나지 않는 나 자신도 이런 방법에 가장 쉽게 이르게 된다.

1995.
****대학 학보

보관해 온 파일 중 가장 오래된 글이다. 이 글은 대학 학보의 원고 청탁을 받은 동료 교수의 부탁을 떨쳐내지 못하고 마지못해서 대신 써준 글이다. 아마도 여기저기 자료를 뒤적이며 힌트를 얻어 모방한 글일 것이다. 그렇지만 글을 쓰게 된 계기인 것만은 분명하다.


2. 장정봉 아래에서

35℃를 넘나드는 이 찌는 더위.
바람 한 점 없는 이 무더운 여름날.
새 직장 50여일 만에 부서장에게 청하여
광복절 휴일과 연계하여 얻은 휴가 중 둘째 날.
누구를 위하여 아무도 없는 이 학교에서
무엇을 위해 빗물처럼 흘러내리는 땀줄기와 함께
골치 덩어리 이 서류를 뒤적이어야 할까?
너무 더워 울분이 치솟는다.
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곳을 떠나간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왜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가?
너 스스로를 자문해 보라.
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너는 누구를 위해 사는가?
너는 지금 누구를 무엇을 위해
이 자리에 있는가?
옛 직장을 위해? 이는 분명 아니다.
그럼 옛 상사를 위해 이 또한 아니다.
그러면 가족을 위해? 결코 이 또한 아니다.
난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다.

이도 저도 아니면 무엇 때문이란 말인가?
너 자신을 위해? 결코 이 또한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이란 말인가?
아무런 주관 없이 시류에 따라
그냥 그렇게 살아왔단 말인가?
그것은 분명 아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왔다면
짧은 휴가에 이 답답한 심경을
이 흰 종이에 그려가고 있을까?
차라리 그렇게 살아왔으면 좋겠다.
그러면 이렇게 펜을 들지도 않고
그냥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겠지.

이 무더운 더위를 이기기 위해 오늘 이 시점에 있는 나를 조용히 돌이켜 보자. 어려운 환경 속에서… (무엇이 어려운 환경이란 말인가. 이는 결코 아니다. 과거의 너 자신을 돌이켜 보라. 과연 너 자신이 그렇게 어렵게 지내왔는가?) 부모님 잘 만나서 하고 싶은 대로 다하고, 특히 남들은 자립하여 부모님께 효도할 때 결혼하여 처자식을 두고 7년 동안이나 공부한답시고 부모에게 의지하여 겨우 공부를 끝내지 않았는가? 그렇게 부모에게 35년이나 신세지며 살아왔던 네가 부모 형제의 기대를 저버리고 1년 4개월 만에 학교를 그만 두고 이제 와서 이러한 한 숨을 쉰단 말인가?
그래 이것은 한숨이다 못해 통탄이다. 무엇이 그리도 통탄스럽단 말인가? 이 학교를 너 스스로 떠난 것이 못내 아쉬워. 아니다. 그러면 교수직이 못내 아쉬워서. 이도 아니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솔직히 사람(人)이 싫다. 왜 사람이 싫은가?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 그냥 사람이 싫다. 그냥 사람이 싫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래 그냥은 아니다. 솔직히 인간의 배신행위에 대해 참으로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다. 누가 너를 그리도 분노에 넘치도록 배신을 하였는가? 뭐 특별한 사람도 없다. 그저 모두가 나를 배신한 느낌이 들 뿐이다. 말도 안 된다. 왜 그런 생각을 하는가?
그냥 이곳에서 지나간 1년 4개월 동안 내 주변을 스쳐간 사람들이 그저 그렇게 느껴질 뿐이다. 질시와 시샘. 파벌. 음모와 중상모략. 목적을 위한 야합과 이용. 자신만을 생각하는 보신주의. 그저 이러한 것들과 함께 모두가 싫다. 이런 곳에서 내가 무슨 청운의 꿈을 꾸어. 그러는 너 또한 마찬가지 아닌가? 그래 그렇다. 그래서 더욱 이곳이 아니 솔직히 나 자신이 싫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함께했던 날들이 더욱 싫은 것이기에 그러한 나를 피하기 위해 남들을 핑계로 이곳을 박차고 나갔는지도 모른다. 평소 당찬 내가 아닌데. 그런 결정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아니 만용인지도 모르겠다. 용기이든 만용이든 그 힘이 어디서 생겼을까?
누구 이야기대로 술을 먹으면 간이 부어서 간덩이 부은 놈이 된다던데… 혹시, 아니야. 아니야. 그 이야기가 그래 나에게 하는 소리였구나. 그래 내가 간이 부었던 모양이구나. 그런데 요즈음은 간부기가 빠진 모양이다. 그러니 이런 상념에 빠져 있지…. 에이 차라리 간덩이가 부은 내가 좋다. 교수도, 열심히 하면 미래 학장 암시도 그냥 떨쳐 버릴 수 있는 간덩이 부은 남자의 만용이 좋다. 아니야, 결코 간덩이가 부어서는 아니야!
그래 저거야! 저 장정봉에 쉬어 넘는 하얀 구름. 저 높고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 장정봉에 잠시 쉬어 넘는 아무런 미련 없이 그저 쉬어 넘는 저 구름. 그래 저 구름에 이끌려 2개월 전에 모든 것을 버릴 생각을 했었지.
저 장정봉을 보고 있노라면 나의 마음은 한없이 넓고 부드러워진다. 어느새 찌는 더위도 분노도 다 어디로 가고 매미 소리와 알 수 없는 산새의 울음소리 멀리서 덤프트럭의 뱃고동 소리와 같은 크락션 소리가 들려온다. 시원하고 상큼한 바람이 나의 피부를 스친다.
이 좋은 방에. 이곳 동아에서 제일 좋은 곳에 위치한 이 방에 새 주인이 온다 한다. 정 실장이 연구실로 사용한다니 가급적 빨리 방을 비워야겠다. 학기말 수업을 마치자마자 갑자기 떠나게 된 관계로 추후 연구실을 비우기로 양해는 구했지만 너무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나 보다. 하긴 이곳을 떠난 지가 벌써 50여일이나 되었는데. 그러나 걱정이 된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장정봉은 모든 것을 용해해 내는 어떠한 힘이 있는데. 혹 정 실장도 나처럼 저 장정봉에 쉬어 넘는 구름처럼 무념무상에 사로잡혀 모든 것을 포기하지나 않을까? 아니야 쓸데없는 기우야. 그래 기우야.
어쩠든 참으로 좋다. 저 장정봉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의 마음은 한결 풍요롭다. 더욱더 시원함이 느껴진다. 전화벨이 울린다. 박 계장이다. 아버님의 병간호 때문에 광주에서 늦게 내려왔다 한다. 아버님의 병세가 악화되어 걱정이 많은 모양이다. 그래도 일 때문에 나와의 약속 때문에 이 더운 한낮에 내려온 모양이다. 독천 터미널에서 이 높은 곳까지 또 걸어 올라왔겠지. 얼마나 더웠을까. 나보다도 더 많은 땀을 흘리며 왔겠지. 아마도 땀으로 온몸에 목욕을 했을 거야. 부끄럽다. 실내에서 그 더위를 이기지 못해 이렇게 짜증을 내며 펜을 들고 있는 내가 부끄럽다. 아무래도 난 속물인 모양이다. 추우면 춥다. 더우면 덥다. 호들갑을 떨고 있으니. 아무래도 난 심중이 깊지 못한 모양이다. 종기 깍지만이나 한 모양이다. 그러니 모든 것이 즉흥적이지.
조금만 더 일찍 저 장정봉을 쳐다 볼 것을. 그래 저 명산 장정봉. 내 마음 속 깊이 안고가자. 이곳에서의 짧은 생활 결코 헛되지 않았구나.
항상 내 가슴 속에 장정봉에 쉬어 넘는 구름을 가득 안자.
장정봉에 쉬어 넘는 저 구름처럼….

1995. 8. 15.
광복 50주년 기념일에 장정봉 아래
동아 연구실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3.다시 장정봉 아래로

장정봉을 떠난 지 8개월 만에 다시 장정봉 아래로 되돌아왔다. 1994년 3월 2일 부임과 함께 시작된 교직 생활은 많은 꿈과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지연·학연 등으로 엉킨 조직 내에서 첫해 2학기에 보직을 임명받아 수행하는 것은 그리 녹녹하지가 않아 많은 갈등을 초래하였다. 이로 인해 나 자신에 대한 심리적 갈등이 증폭되어 결국에는 1995년 6월 20일자로 교수직을 사직하고 다음날 중소기업청 대전충남지방지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전을 굳이 선택한 이유는 서울 생활이 싫어 본원보다는 처가가 있는 대전이 아내에게는 덜 외로울 것 같아서였다. 이러한 생각에 선택한 결과 외롭지는 않았으나 근무만족은 덜하였다. 왜냐하면 학업 과정에서 많은 연구 경험을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를 경험하여 4년제 대학으로 가는 데 조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직을 하였는데 지방지청은 본원과 달리 연구개발 업무보다는 시험검사가 주 업무였다.
나는 대학 졸업 이후 바로 대학원 석?박사과정에 진학한 관계로 현장 경험이 전무하였다. 더구나 박사과정 중에는 대학 내에 화학과가 신설되어 성실하다는 이유만으로 3년간이나 파견되어 학과 조교를 해야 했다. 이 기간 중 불만도 참 많았다. 동료 원생들은 직장을 가지고 학업을 병행하거나 각종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연구원으로 참여하여 다양한 경험을 쌓아가며 모교 또는 타 대학에 출강하여 강사 활동을 하면서 학생들로부터 교수님 소리를 듣고 있는데 나는 학교 내에서 잡다한 행정업무들이나 처리하고 있는 한심한 처지였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 것 아니었지만 그때는 어린 관계로 그렇지 않았다. 한심한 생각이 들 때마다 지도교수님께 저는 언제까지 조교를 해야 하는지 따지곤 하였다. 그때마다 교수님께서는 네가 대학에 가면 조교 이력도 도움이 되지만 행정적으로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니 묵묵히 열심을 다하라고 타이르시곤 하였다. 사실 지나고 보니 이 경험이 나의 행정력에 큰 도움이 되었다.
직무에 대한 불만족에 비해 직장 내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 나의 표정에 불만스러움이 보일 때마다 동료들은 ‘유 박사 그러니 대학에 있지 뭐 하러 왔어’하며 장난스럽게 놀리곤 하였다. 사실 이직 후 대학에 공채가 있을 때 몇 곳에 지원을 해보았으나 다들 대학에서 나와 공무원으로 또 다시 대학으로 오려고 하는 것에 대한 궁금증을 묻곤 하였다. 다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인식을 가지고 묻는 질문에 뭐라 답하기가 참 곤란하였다.
11월 중순경 대학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료 교수들이 고교 홍보 출장 중 찾아왔다. 동료교수들을 맞이하고 외출을 하기 위해 외출신청서를 제출하였다. 이때는 유난히 공직기강 확립에 초점을 두고 근태를 철저히 하던 시기였다. 옛 동료들 보기에 조금은 민망하였다. 대학에서는 생각하지도 못할 일 이었으니까. 그러나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때 업무적으로 다룬 공공행정 경험은 대학행정 보다는 더욱 엄격하고 체계적이었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외출에서 옛 동료들과의 즐거운 시간을 가지며 위로와 격려를 받고, 다시 대학으로 돌아오라는 권유도 받았다. 사실 대학에서는 그만두고 간 이유를 또 현 직장에서는 왜 왔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모두들 나 스스로에 대한 갈등을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시키기도 어려웠다. 또 굳이 이해시킬 필요성도 없었다.
이후 동료들의 방문이 계기가 되어 김** 교수로부터 전화가 와서 한번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목포에 내려가 만났다. 지난 추억들을 이야기하던 중에 혹 대학으로 돌아오는 것은 어떻겠냐는 권유에 내 전공분야에 신규채용이 있다면 지원을 하겠다고 하였다. 다행히 초창기라 신규채용 계획이 매년도 별로 있었기에 1개월 후 신규채용 공고가 있어 지원(공업화학과에서 화공과로 학과 명칭이 바뀌었다)하고 옛 동료들로부터 면접을 받았다. 지원자가 많아 걱정을 하였으나 연구실적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옛 동료에 대한 배려의 덕분인지는 몰라도 별 어려움 없이 임용 통보를 받았다. 사실 재임용 통보를 받은 이면에는 개교 초창기에 내려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갈등하던 나의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시던 안** 이사장님과 김** 이사님의 배려가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1996년 3월 2일 나를 포함한 5명이 임용되어 첫 출근을 하였다. 나에게는 두 번째 첫 출근이 되었다. 연구실은 이전에 사용하던 방이었고, 찌는 무더위에 바라보던 장정봉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1996. 7. 8개월 전 사직 후 다시 제자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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