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88740031
· 쪽수 : 500쪽
· 출판일 : 2017-12-01
책 소개
목차
【추천의 글①】
치열한 성경읽기의 개가(凱歌) ......‘골수를 쪼개는 말씀의 힘’을 경험해 보자
- 민영진 전(前) 세계성서공회 아태지역이사회 의장
【추천의 글②】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부정, 그것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 정민영 전(前) 국제위클리프연맹 부대표
Curtain 1. 가까워지다
제1장. 백변
제2장. 침
제3장. imi@
제4장. 강남상파
Curtain 2. 하나가 되다
제5장. 그 이름, 성지혜
Curtain 3. 멀어지다
제6장. 또 한 번의 동행
제7장. 나카마
제8장. 현팀장
제9장. 오너
【에필로그】
세 번째 지은 집
【부록 : 해설 3제】
- 민영진
1. 에흐예 아셰르 에흐예 ...... 하나님은 늘 계시다?
2. ‘3중(重)’일까,‘아름다운’일까?
...... 히브리어의‘유음화(有音化)’와 해석의 문제
3. 신(神)은‘폭력적’이시다!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 성경 속 ‘진리’는 인간의 ‘윤리ㆍ도덕’이라는 외투를 입고 있다.
그때였다. 그가 느닷없이 내 손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끼고 있던 결혼반지를 빼 내 손에 쥐어주었다.
“자, 이걸 하나님 말씀이라고 생각해 보자고. 하나님은 기록자에게 이 금을 주며 인간 세상에 전하라고 하시지. 그런데 그냥 주라고 하시지 않는 거야. 옷을 입혀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지.”
“옷을 입혀라?”
“그렇지. 그래야 소중한 진리를 보호할 수 있을 거 아냐. 만일 진리를 날 것 그대로 준다고 쳐봐. 어떤 이들은 그걸 팔아 술 사먹을 수 있고, 어떤 이들은 먹을 수도 없는 걸 줬다며 욕을 할 수도 있어. 그러니 포장이 필요한 거지. 개나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지 말라! 어때, 같은 말 같지 않아?”
이렇게 얘기한 그가 내 손에 있던 반지를 다시 가져갔다. 그리고는 반지를 손수건으로 쌌다. 손수건에 싸인 반지. 그걸 다시 내 손에 쥐어줬다.
“그래서 이렇게 예쁘게 옷을 입혀 전해 주라 하시는 거지.”
진리에 옷을 입힌다....... 막 그의 말을 음미할 참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속사포처럼 다음 말을 이어갔다.
“그럼 듣는 이들은, 내용물은 모른 채, 그저 손수건으로만 알고 이걸 갖게 되는 거야. 그리고 둘 중 하나로 살게 되는 거지. 영원히 손수건으로만 알고 살거나 아니면 그 안에 보석을 발견하거나 말이지.”
무슨 얘기인지 알 것 같았다. 보석은 하나님의 말씀, 즉 진리이고, 손수건은 삶의 지혜로서, 그 진리를 감추는 포장지 역할을 한다는 말이었다. 그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진리는 인간 윤리로 감춰져 있는 거야.”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그게 성경의 기술 원리 중 하나야. 인간 윤리에 감춰진 진리. 진리는 보이지 않도록 숨겨져 있다는 거지. 나는 그것에 ‘윤리/진리 원리’ 또는 ‘겉옷/속옷 원리’라고 이름을 붙여봤어. ‘속옷’도 ‘보석’이나 ‘정금(正金)’처럼 성경에서 진리를 상징하거든. 결국 ‘속옷’과 ‘진리’는 모두 ‘겉옷’과 ‘윤리’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이런 의미지. 그렇다면 각각은 보이지 않는 세상과 보이는 세상을 표상하는 거야. 보이는 세상, 마귀가 통치하는 세상, 보이지 않는 세상,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세상.”
<중략>
“내 생각에, 사람들은 겉옷만 보는 것 같아. 성경에서 윤리적, 도덕적, 역사적 일들만 본다 이거야.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해. 일종의 상식처럼 말이지.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름대로 성경에 대한 상식적 해석체계를 갖고 있는 것이고, 그 덕에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지.”
<중략>
“내가 보기에, 이 겉옷을 벗겨 내고 ...... 속옷을 보면 말이지, 성경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에게만 주신, 구원을 위한, 일종의 가이드북이야.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암호지령을 담고 있는 책이라고나 할까. 하나님은 당신 백성에게만 암호를 해독할 수 있는 코드를 알려주시지. 영적 코드를. 그래서 다른 사람은 아무리 읽어도 그 뜻을 알 수가 없는 거야. 이사야서에 그 말 있잖아. 그들의 귀를 닫고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여 듣고 보아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라.”
말을 마친 그가 천천히 소주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소주 한 모금을 마치 몇 십 년 된 고급 와인 음미하듯 마셨다. 그리고는 슬며시 내 눈을 쳐다봤다. 그 눈. 내 말 어때? 맞는 것 같아? 이렇게 묻고 있었다.
■ 금식할 때는......
“금식할 때는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이 구절, 어떻게 생각해?”
“글쎄, 말 그대로 아닐까. 예수 당시 바리새인들에게는 금식할 때 외모를 단장하는 게 금기였어. 그러니까 예수 말씀은 그 금기와 형식, 율법을 깨버리라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지. 하지만 요즘은 그런 금기가 없잖아. 그러니 현대적 의미의 해석은 달라져야 할 거야. 보통은 금식하면서 너무 힘들다는 티를 내지 말라는 정도로 알고 있지. 그게 일반적인 해석이야. 예수께서 말씀하셨듯이 금식할 때는 아무래도 사람이 초췌해지잖아.......”
“맞아. 그런데 그건 겉옷 아닐까? 난 이 말의 ‘속옷’을 찾아보다가 정말 엄청난 반전을 보게 됐지.”
“속옷? 반전?”
“이 구절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었지.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어. 여기서 말하는 ‘금식’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 ‘금식’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야. 갑자기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 너는 이제 내 백성임을 알았다, 그러니 이제 하늘의 양식만 먹고 세상의 양식은 금해야 한다, 이렇게 말이야.”
“뭐? 세상 양식을 먹지 말라는 의미에서의 금식? 그럼 금식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는데.......”
“맞아. 그런데 그렇게 해석해 보면 금식뿐 아니라 구절 전체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지.”
“어떻게?”
“머리에 기름을 바르다, 뭐 떠오르는 거 없어?”
“있지. 성경에서는 왕이나 제사장을 임명할 때 그 말을 쓰잖아.”
“맞아. 마태복음에는 ‘금식할 때 네 머리에 기름을 바르라’고 나와 있어. 그리고 성경은 성도를 지체라고 하잖아. 그럼 머리는 누구일까?”
“예수?”
“그렇지.”
“예수에게 기름을 발라라? 그럼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거야?”
“이런 거지. 내 백성아, 너는 이제 세상 양식을 금하여라, 그리고 나 예수를 구세주로 받아들여야 한다!”
아.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새로웠다.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해석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말이 됐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머리가 빙빙 도는 느낌이었다.
■ 신은 왜 폭력을 쓰시는 것일까......
“신의 폭력성. 그게 기독교의 정수(精髓) 아닐까?”
그런데 한 술 더 떴다. 하나님을 폭력과 연결시키는 게 귀에 거슬렸었다. 그런데 그게 ‘정수’라고까지 했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에게 물었다. 왜?
“선악과 따 먹은 인간은 선악을 자기마음대로 정하잖아. 신처럼 말이지. 하나님 백성이라 해서 하나님 말씀을 순순히 따를 리가 없어. 그러니 폭력을 쓰시는 거지. 당신 백성을 바른 길로 데려가자니 어쩔 수 없는 거야. 내가 너희에게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 아닐까?”
인간은 교만하다, 자신을 하나님으로 안다, 당연히 하나님을 따르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 하나님은 폭력을 쓰실 수밖에 없다, 그래야 당신 백성을 올바른 길로 데려갈 수 있다....... 꼭 틀린 말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직 그의 속내를 알 수 없었다. 난 여전히 말꼬리를 흐렸다. 그러자 그가 쏜살같이 말을 이었다.
“반드시 죽으리라! 하나님이 선악과 따먹은 아담에게 하셨던 말씀이지. 이건 결국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겠다는 뜻이잖아. 그렇게 해서 펄펄 살아 날뛰는 육(肉)을 죽이고, 죽어 있던 영(靈)을 살리신다는 거 아닐까? 예수처럼. 하지만 인간은 누구도 죽고 싶어 하지 않잖아. 그게 문제야. 그러니 인간은 하나님 뜻에 저항할 수밖에 없어. 결국 하나님은 폭력을 쓰실 수밖에 없는 거지.”
<중략>
“글쎄.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당연하지. 왜냐하면, 인간은, 육이 펄펄 살아 날뛰는 인간은, 절대 육적인 자신을 죽이려 하지 않거든.”
“죽는다......”
“‘환란’의 의미를 생각해 봐. 많은 이들이, 콩 한 알을 맷돌에 넣고 형체도 없이 갈아버리는 것, 그게 ‘환란’이 갖는 진정한 의미라고 말하지. 인간의 자아가 완전히 으깨지는 거야. 선악과를 따 먹은 인간은 옳고 그름을 스스로 정하는 존재가 됐어. 자신을 신으로 여기는 거지. 성경은, 그 환란의 과정 없이, 인간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수 백 번도 더 얘기하고 있다고.”
“죽는다....... 그건 그저 세속에 대한 욕심을 버린다는 정도로만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세속에 대한 욕심을 버린다? 그게 되겠어? 하나님은 말이야, 욥에게 하셨던 것처럼, 성도의 소유 모두를 빼앗아 버리신다고. 그래서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닌 존재임을 깨닫게 만드시는 거지. 그 과정에서 폭력이 쓰이는 거야. 그리고 그게 바로 ‘죽음’이 갖는 의미지. 성도는 이 땅위에서 그 과정을 반드시 겪어야 해. 그래야 절규하듯 토해 낼 수 있는 거야. 하나님, 저는 신이 아닙니다, 신은 당신이십니다! imu! 이렇게 말이야.”
“글쎄.......”
“글쎄? 인간이란 말이지, 그렇게 죽었다 살아나도, 변하기 어려워. 여전히 육체를 갖고 있는 탓이지. 인간은, 육신을 갖고 있는 인간은, 세상과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세상에 대한 욕심을 결코 완벽하게 버릴 수가 없다고. 세상 사랑과 욕정이 다시 스멀스멀 일어나게 돼 있어. 그게 인간이야. 사랑의 매? 그것 갖고 되겠어? 어림없는 얘기라고.”
“글쎄, 난 꼭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해. 하나님께서 매를 드시기 전에 순종하면 되는 거지. 나도 그렇게 살았고, 그렇게 설교 해.”
<중략>
“아니야, 그렇지 않아. 하나님은 반드시 하나님 백성을 죽이신다고. 폭력적으로.”
“왜 꼭 그렇게 생각을 하지?”
“그게 진리거든, 진리.”
“진리?”
“그래 진리. ‘진리’가 히브리어로 뭔지 알아? 알레프(א), 멤(מ), 타브(ת)라는 자음 세 개로 만들어진 문자, 에메트(תמא)야. 에메트의 첫 자음 알레프는 ‘신’을 뜻하지. 그리고 메트(תמ)는 ‘죽음’이란 뜻이야. 놀랍지 않아? ‘진리’란 결국 ‘신’과 ‘죽음’의 연합인 셈이지.”
“신과 죽음. 그게 진리의 의미라고?”
“그렇지. 신과 죽음.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신의 죽음, 신이 함께 하시는 죽음, 신이 이끄시는 죽음, 신이 실행하시는 죽음. 하나님은 하나님 아들 예수를 죽이신 뒤, 하나님의 백성 모두를 예수처럼 십자가에 못 밖아 죽이신다고. 반드시. 그로써 성도를 진리로 만드신다는 거야. 예수께서도 말씀하셨잖아. 너희는 자기 십자가를 메라. 십자가에 달아 죽이시겠다는 얘기야. 그게 ‘사랑의 매’로 되겠어?”
어느새 그의 목소리가 커졌다. 화난 사람 말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