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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88841172
· 쪽수 : 272쪽
· 출판일 : 2021-09-20
책 소개
목차
4│작가의 말
제1부│강물처럼
12 녹운綠雲
16 입장 불가함에도 불구하고
20 강물처럼
24 독장수
28 손
32 다이어트
37 입성하다
42 눈썹을 그리며
46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50 나잇값
53 지금처럼
제2부│책 사랑
58 책 사랑
62 퍼즐puzzle
66 보자기, 어깨에서 날다
70 들여다보다
74 남편의 본심
78 고백하다
82 논어의 말
85 덧물
88 짝짝이
92 눈물
96 본本
제3부│선물
102 설마
106 수필집과 옥수수
110 착각
114 몽당연필
118 악萼
122 그녀는 예뻤다
125 선물
129 입덕하다
133 헌책방
137 조락의 계절
141 완장
144 지퍼
제4부│구경꾼
150 노랑 타령
154 구경꾼
158 받침
162 폐업
165 진행자
169 들불, 번지다
173 날개
177 속도위반
181 돌아오다
185 장아찌
188 콩나물과 떼과부
192 떡 해 먹을 세상
제5부│소리를 입다
198 꺼꾸리에 올라
202 수數를 세다
207 소리를 입다
211 나빌레라
214 접시를 깼다
219 놓치다
223 겉과 속
227 지방脂肪 재배치
231 힘을 빼세요
235 헤라
239 흩다
243 치유의 울림
250 발문 일상의 해석으로 벼리는 삶의 정의定義
저자소개
책속에서
녹운綠雲
멋진 아호雅號가 생겼다. 내가 글줄깨나 쓰는 사람이라도 된 것 같아 마음이 들썽거렸다. 설다문 입가로 웃음이 연기처럼 솔솔 새어 나온다.
호나 본명이나 많이 불려야 좋은 것이 아닌가. 문학회 대화방에 호 자랑을 한바탕 늘어지게 했다. 몇 군데 SNS 계정에 프로필도 수정했다. 동네방네 마구 퍼뜨리고 싶었지만, 경망스럽게 수선을 피우는 것 같아 이쯤에서 참았다.
‘녹운綠雲’ 희디흰 구름은 옅은 초록빛이 나지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맑고 깨끗하고 고와서 감추어진 사랑 같습니다.’ 호에 의미를 불어넣어 주셨다. 책을 읽다가 만난 녹운이 불현듯 내게 어울릴 것 같았다고 한다. 분에 넘치는 사랑이다.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었다. 예전에는 제자가 성년이 되면 스승이 호를 지어주기도 했단다. 하지만 나는 글을 배운 햇수로 보나 글 지은 품으로 보나 성년이 되려면 아직 한참 멀었는데 스승께 호를 받고 보니 황송하기 짝이 없다.
디지털 세대에 사는 우리는 대부분 이미 호를 사용하고 있었다. 법명이나 세례명을 비롯하여 닉네임 한두 개쯤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도 Ruby, 행복 전사, 수경 맘, 백조, 지노 그랜맘 등 댓 개나 된다. 하지만 이 닉네임은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지어 온라인상에서 썼다.
예전에 조상들이 호를 지을 때는 짓는 기준이 있었다. 고려 시대 이규보는 그의 백운거사어록에서 “거처하는 바를 따라서 호로 한 사람도 있고, 혹은 얻은 바의 실상을 호로 쓴 사람도 있었다.”라고 했다. 신용호는 소처이호所處以號, 소지이호所志以號, 소우이호所遇以號, 소축이호所蓄以號 네 가지 기준을 두었다고 한다. 나의 호는 소지이호所志以號에 해당하지 않을까.
‘녹운綠雲’ 사전상은 푸른 구름이다. 예전에 어머니께서 옥양목 홑이불에 양잿물을 넣어 삶으면 하얗다 못해 푸른빛이 돌곤 하였다. 희디흰 구름이 그 홑이불처럼 푸른빛이 났나 보다. 또 초록색은 청색으로부터 나왔으니 푸른 구름이라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벽운碧雲, 취운翠雲, 청운靑雲이 모두 비슷한 구름이다. 초록 구름이든 푸른 구름이든 보통의 눈으로 쉽게 볼 수 없으니 귀함의 은유로 보인다.
내가 구름이 되었으니 그 의미를 곱씹어 천착해 봐야겠다. 구름은 학문을 연마하고 인격을 수양하면서 입신양명을 지향하는 뜻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청운의 뜻을 품었다는 말도 나왔지 싶다.
구름은 가없이 높고 멀리 있어서 가까이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다. 하지만 높은 산에 오르면 바람을 타고 성큼성큼 내려와 우리 주변에서 서성인다. 내가 먼저 다가가야 상대방도 다가온다는 인간관계의 진리를 깨닫는다.
구름은 아주 작은 물방울이 유기적으로 연대하여 뭉쳐서 지내다가 그 무게가 힘에 겨우면 지상으로 내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러다 햇빛에 증발하여 생기는 수증기가 여전히 모여 또 만들어진다. 생성과 소멸이 반복된다. 소인배 같은 내 마음에 번뇌와 욕심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처럼.
구름은 늘 모양이 변하며 언제나 새로운 모습이다. 하늘 위로 뭉게뭉게 피어오르기도 하고, 얇고 보드라운 새털을 펼치기도 한다. 양이 떼로 몰려다니기도 하고, 털실을 꼬아 감아 놓은 두루마리 모양을 만들기도 한다. 내 삶도 구름처럼 늘 새로움을 추구하며 다양하게 변화하면 좋겠다.
‘정옥貞玉’은 부모님께 받은 이름이다. 굳이 한자 뜻으로 풀이하자면 절개가 곧은 구슬이다. 그 시대의 고루한 남존여비 사상이 눈에 보인다. 1950년대 딸자식의 이름은 큰 의미 없이 짓는 집이 많았다. 내 이름도 매한가지다. 어찌 됐건 정옥이로 이날까지 무탈하게 잘살고 있으니 이름이 촌스럽다는 둥 흔하다는 둥 이러쿵저러쿵하지 말아야겠다.
혹자는 이름이 그 사람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한다. 이름 때문에 몸이 많이 아프고 사업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도 보았다. 급기야 개명하고 관청의 서류와 은행에 명의까지 죄다 바꾸었다. 길흉화복이 어디 이름 때문이랴. 매사 도리에 어긋나지 않으며 과업에 최선을 다하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다.
이젠 외양은 정옥이로 살고 속내는 녹운으로 살아야겠다. 녹운이 ‘감추어진 사랑’ 같다고 하였으니 남모르게 맑고 고운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연후에 변화무쌍한 구름처럼 늘 변하도록 끊임없이 사고하고 궁리하여 내면이 일신하도록 담금질을 할 터이다. 타인에게 내가 먼저 다가가 손을 내미는 도량을 키워가며 온 누리를 덮는 너른 품을 닮아야겠다. 생성과 소멸하는 우주 만물의 순리를 알고 인생의 덧없음을 깨우쳐 바람 따라 흘러가는 구름처럼 유유히 살아가리라. 구름은 한곳에 머물러 있는 듯할 때도 멈춰있지 않았다. 나도 그러리라. (2021. 4.)
입장 불가함에도 불구하고
탁구 동호회 가을 야유회 날입니다. 어제가 입동이라더니 날씨가 제법 쌀쌀합니다. 바깥바람을 쐬는 게 한참만입니다. 옷은 두툼해도 마음만은 가을 하늘에 떠 있는 새털구름만큼이나 가벼웠습니다.
아기 궁둥이처럼 탱탱하게 부풀었던 기분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습니다. 관광지에서 ‘루지’를 타려는데 65세 이상은 입장이 불가하다는 바람에 혼자만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회원들은 나만 떼어놓고 타려니 미안한 모양입니다. 누군가 같이 남겠다느니, 괜찮다느니 하며 실랑이를 했습니다.
예순예닐곱 살만 같아도 신분증 보여 달라면 안 가져왔다고 둘러대고 어떻게 회원들 틈에 묻어 들어가 볼 것입니다. 내 나이 칠십 살이나 되었으니 그럴 엄두나 낼 수 있겠습니까. 회원들에게 신경 쓰지 말라고 하며 내가 먼저 그 자리를 떴습니다.
같이 놀던 동무들이 뿔뿔이 집으로 돌아가고 나 혼자만 동그마니 남은 것 같았습니다. 하릴없이 길가에 핀 들꽃이나 들여다보았습니다. 손질 잘된 측백나무 옆에 열 지어 선 빨갛게 물든 남천나무가 꽃보다 예뻤습니다. 잎은 머위 같으나 꽃은 전혀 다른 털머위도 유심히 살펴보고 다보록하게 핀 서양톱풀꽃과 눈인사도 했습니다.
소슬바람 따라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는데 ‘입장이 불가합니다.’가 자꾸 생각나는 겁니다. 하기야 요즈음은 건물에 들어갈 때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입장 불가라는 말은 흔하디흔합니다. 나이 불문,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마스크 미착용자는 절대로 입장을 못 하지 않습니까.
나이에 선을 그어대고 입장 불가라고 못을 박으니 씁쓸합디다. 하긴 입장이 불가하다면 안 들어가면 그만입니다. 그 또한 시설 책임자가 사고를 미연에 막으려는 방책일 것입니다. 그리 생각하면 입장 불가라고 미리 알려주니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입장이 불가하다고 말하기도 전에 밀고 들어온 손님 때문에 골치가 아픕니다. 오래전부터 매미가 귓속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댑니다. 내보내려고 무진히 애를 썼습니다. 용하다는 병원을 수소문해서 서울까지 갔었습니다. 한의원에 가서 나무 마치로 목덜미를 내리치는 치료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들을 기척도 안 합니다. 하다 하다 이젠 포기했습니다. 그냥 매미와 친구처럼 지내야 하나 봅니다.
매미 하나라면 친구 삼아 지내겠는데 눈앞에 날아다니는 ‘날파리’는 어째야 합니까. 처음 날파리가 나에게 찾아온 날 기억이 뚜렷합니다. 탁구를 치는데 날파리가 자꾸 앞에서 어른거리지 뭡니까. 한겨울에 웬 날파리냐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잡겠다고 연신 낚아채려고 했습니다. 누가 눈여겨봤으면 왜 저러나 했을 겁니다. 아무것도 없는데 손을 휘둘렀으니까요. 알고 보니 비문飛蚊 현상이랍니다. 불청객이 나이 먹었다고 만만하게 생각한 모양입니다. 입장 불가함에도 불구하고 들어오니 말입니다.
불청객 이야기를 하자드니 연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옵니다. 얼굴에 핀 검버섯 이야기입니다. 본래 자리인 나무에서나 혹 축축한 곳에서 필 일이지 사람 얼굴에 피는 것은 무슨 심보랍니까. 한번 자리 잡으면 줄어들기는커녕 점차 세력을 넓힙니다. 입장 불가인데 들어온 것이 양심도 없고 부끄러운 줄도 모릅니다. 옛날에 미성년자 입장 불가 영화를 보러 갔을 때 고개도 제대로 못 들고 간을 조리면서 봤는데 이놈은 체면이고 뭐고 없나 봅니다.
부끄럽지만 하나만 더 말해야겠습니다. 이것도 나이와 관련이 있나 봅니다. 젊은 사람에게는 안 달라붙는 것 같으니 말입니다. 바로 여름에 샌들 신을 때 신경 쓰이는 발톱 무좀입니다. 엄지발톱이 피가 고인 것처럼 시커멓기도 하고 코끼리 가죽처럼 울퉁불퉁합니다. 이것도 내치려고 레이저로 지지기도 하고 독한 약을 먹어 발톱이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숨었다가 다시 나타나곤 하니 끈질기기가 고래심줄 같습니다.
나이 먹었다고 넘보고 달라붙는 것이 괘씸합니다. 늦으면 발붙일 곳이 없을까 봐 서둘러 들어오는 것도 같습니다. 모르고 왔다고 철면피하게 꿈쩍도 안 하고 있으니 걱정입니다. 세상이 나이에 선을 그어대고 입장 불가라고 하듯이 내 몸에 ‘청하지 않은 손은 입장이 불가합니다.’라고 빨간색으로 써서 붙이고 싶습니다.
게다가 몸속 깊은 곳에 청하지도 않은 객客이 똬리를 틀까 봐 걱정입니다. 면역력이 약해진 틈을 타 침입하는 나쁜 세균 말입니다. 허약한 곳에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올 것도 같습니다. 이 또한 입장 불가할 비책?策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마음에도 불청객이 무시로 찾아옵니다. 아집과 욕심이 갈마듭니다. 오욕칠정五慾七情에 물든 마음이 거들먹거리고 있습니다. 겸손이라고 포장을 하고 교만도 찾아옵니다. 내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시샘은 어찌해야 합니까. 빗장을 걸어둘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한번 들어오면 내칠 방법을 찾기가 매우 어려우니 난감합니다. 부적符籍이라도 붙여 잡귀 쫓듯 불청객을 쫓아야 할까 봅니다.
서양톱풀은 우리나라에 입장을 허락받고 들어왔겠습니까. 봄부터 여름까지 노란 물결을 이루는 큰금계국도 북미가 원산지랍니다. 번식력이 강해서 생태계를 교란한답니다. 한번 자리 잡으면 나가기도 어렵고 내치기도 힘든 것이 식물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왼쪽 귀에서 매미가 더욱 요란하게 울어댑니다. 이젠 입장 불가함에도 불구하고 세월에 묻어온 반갑지 않은 손님을 한식구처럼 받아들이려 합니다.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하고 타협하며 살아보렵니다. 한 번 더 눈길을 주고 다독다독하며 보듬어 볼 터입니다. 그러면 고약한 상객常客이 잠잠해지지 않겠습니까. (2020. 11.)
강물처럼
배롱나무가 선홍빛으로 물들었다. 코로나로 세상이 어수선해도 꽃은 피고 지며 계절이 바뀌고 바람 따라 세월도 흘러간다. 강물도 굽이굽이 감돌아 물꼬리를 휘갈기다 잔원하게 흐르는데 고붓고붓한 인생길이 한 모롱이를 도나 보다.
돌아간 모롱이에서 난기류를 만나기라도 했나. 돌연 허리가 까탈을 부린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아픈 것은 물론이고 한 발짝이라도 걸을라치면 다리가 당기며 저려 움직일 수가 없다. 누워 있으면 그나마 조금 나으니 밥 한술 뜨고 침대에서 온종일 시간을 보냈다. 친구들이 내가 그중 건강하다며 부러워해서 은근히 기분이 좋았는데 이 지경이 되니 그 말을 도로 무르고 싶다. 유성 ‘수통골’ 둘레길을 걷자고 미리 날짜 맞춰놓은 것도 나 때문에 무산되었다. 올 스톱이다. 예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어 조바심이 나고 애가 탄다.
세간의 우려대로 코로나19 확진자가 갑자기 급등세다. 모임과 외출을 자제하라고 안전 재난 문자가 연신 빗발친다. 탁구장도 폐쇄하고 평생교육원도 개강이 연기되었다. 남들도 집에 콕 박혀 있을 때 난 아파서 나갈 수 없는 처지니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서울 작은시누이가 남편상을 당해 이틀 동안 가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왔다 갔다 했지만 크게 힘든 일은 없었다. 화장장과 봉안당에서 서 있었고, 장의차로 두세 시간 이동했으나 많이 무리한 것도 아니다. 딱히 그럴만한 이유가 없는데 웬일일까. ‘이러다가 말겠지. 설마, 큰 병일라고.’
몇 년 전 어깨가 고장이 났을 때 다녔던 정형외과에 갔다. 몸을 요리조리 돌려가며 여러 방향으로 엑스레이를 찍는다. 척추관절염이라고 한다. 척추 신경이 눌려 엉덩이와 다리가 아픈 거라며 허리와 엉덩이에 인대 강화 주사와 진통제를 놔주고는 4일 정도 약을 먹어 보란다. 팔만 원이나 하는 주사를 맞았으니 좀 나아지겠지.
껍적거리다 제풀에 주저앉은 형국이다. 생각해보니 젊은 사람들 혈기에 질세라 그들과 똑같이 밤 11시까지 탁구를 치며 물색없이 촐랑댔다. 운동하고 와서도 밤 한두 시까지 변변찮은 글 나부랭이 쓴다고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강물이 바위를 만나면 대들듯이 부딪치고, 낭떠러지를 만나도 겁 없이 내리뛰는 오만을 저지르듯 내 주제도 모르고 세월에 항거했나 보다.
딸들이 갑자기 무슨 일이냐며 연신 전화를 해댄다. 갈비탕을 사 오고, 택배로 설렁탕이며 사골곰탕이 왔다. 바쁜 애들이 공연히 신경 쓸까 봐 아프다는 말을 안 하려고 했는데 작은딸이 다니러 온다는 바람에 실토할 수밖에 없었다.
진단이 잘못되었나, 치료가 문제인가 나흘이 지나도 차도는커녕 더 아팠다. 누워도 아프고 앉아도 괴롭고, 답답해 죽겠다. 몸이 아프니 마음도 잿빛으로 낮게 드리운 구름처럼 가라앉아 찌뿌드드하다. 딸과 지인들은 병원은 한 군데만 다녀서는 안 된다며 한의원에 가서 침도 맞아보고 여기저기 다녀 보라며 하루돌이로 차도를 묻는다. 진심으로 염려하는 마음이 전해온다. 그들이 고맙다.
문우에게 용한 병원을 소개받았다. 엑스레이로 본 소견으로 척추관 협착증이란다. 먼젓번 병원 의사와 진단부터 다르고 치료비마저도 적다. 주사 맞고 물리치료를 받고 왔는데 기분부터 나아진다. 하룻밤 자고 나니 조금씩 차도가 보인다. 용하긴 용한가 보다.
척추관 협착증을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척추 중앙의 척주관이 좁아져서 허리의 통증이나 다리의 복합적 신경 증상을 일으키는 질환으로 제일 큰 원인은 퇴행성이란다. 서글픈 일이지만 이제 몸이 고장 나면 모두 노화老化로 귀결이 된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얼마 전부터 ‘나 힘들어’하며 허리가 말을 걸어왔었다. 책상에 오래 앉았다 일어설라치면 굽혔던 허리를 펴는데 한참씩 걸리곤 했다. 심지어 머리 감고 일어설 때도 잠깐씩 뜸을 들였다. 노구老軀가 삶에 무게를 견디느라 힘들어하는데도 나는 아직은 늙지 않았다고 도리질해댔던 주책없는 노추老醜가 부끄럽다.
오래 써먹어 낡은 육신이 힘들다고 말을 걸어올 땐 한 번씩 쳐다보고 다독다독해야겠다. 어르고 달래며 밀고 당기면서 사랑하는 사람처럼 보듬어야지. ‘팔준마八駿馬라도 주인을 잘못 만나면 삯말로 늙는다.’는데 준마도 못 되는 몸, 주인의 꼴같잖은 만용으로 고로롱고로롱하며 늙어 가면 되겠는가.
‘상수여수上壽如水’란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흐르는 물처럼 도리에 따라서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흐르는 것은 거슬러 올라가지 못하는 게 섭리일 터이다. 그런데 나이가 무색하도록 주책없이 나부댔다. 세월을 거슬러보려고 볼썽사납게 껍적댔다. 흐르는 강물처럼 물의 순리대로 그저 구름이 바람결 따라 흐르듯이 나도 그랬어야 했다.
‘천천히 걸어야 멀리 간다.’는 말을 거울삼아 이제부터 뭐든 슬슬 해야겠다. 지나친 과용果勇도, 오만도, 넘치는 욕심도 과감하게 버리자. 강물처럼 유유히 흐르다 풀등에 앉아 쉬기도 하고 일렁이는 물살에 살살 리듬도 타며 살아야겠다. 굽이쳤던 강물이 평평한 곳에서 다시 안온하게 흘러가듯 구붓했던 내 굽이도 평온해지기를 갈망한다.
이제 통증은 좀 가셨지만 두 다리가 천근만근이다. 가을 하늘은 풍덩 빠지고 싶을 만큼 파랗고 삽상한 건들마 한 자락이 코끝을 스치는데 나는 아직도 답답한 집안에서 빌빌거리고 있다.
선홍빛 배롱나무가 물색이 바래지기 전에 산책이나 슬슬 나가볼까. (2020. 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