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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88862108
· 쪽수 : 236쪽
· 출판일 : 2018-04-26
책 소개
목차
모스크바, 파리, 베를린 • 7
디지털 디재스터 • 16
베를린 동물원과 스툴볼 • 29
탈출하는 동물들 • 39
파벡 스트라세 7번지 • 48
미스터 하이 라이프 • 59
마르크스 동상으로부터 • 71
베를린 일기 • 83
비스마르크식 청어 • 93
베타니엔 갤러리 • 104
롤플레잉 • 117
나의 토마스 만 • 129
나무와 무당벌레와 숙녀 • 143
브란덴부르크 공항과 드레스덴 • 155
나치의 벙커였던 건물에서 • 168
소호하우스 베를린 • 180
베를린에서의 문화생활 • 195
로자 룩셈부르크 광장 • 210
베를린 리포트 • 218
에필로그 • 231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멋을 낸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무슨 상황인지 알아야 그곳을 벗어날 수 있는 게 나란 사람의 성격이고. 알고 보니 그들은 입장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고, 그들이 가고 싶어하는 그곳은 그 유명한 ‘몽키바’라는 곳이었다.
몽키바라면 나도 알고 있는 곳이었다. ‘베를린에 왔으니 몽키바에는 가봐야지’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뭐가 있는데요?”라고 묻자 몽키바에 가보라고 추천한 사람들은 별다른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들 역시 거기를 가보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그런 종류의 떠들썩한 곳에 대해 가봐야겠다는 의무를 느끼고 실천하는 종류의 사람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걸 보고는 ‘대체 뭐가 있길래?’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는 유명해서 유명한 곳이 있기 마련이고, 여긴 이를테면 그런 곳 같았고, 그런 곳을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 같았다.
나중에 몽키바를 다녀온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몽키바에서는 원숭이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에, 고작 그건가?’ 싶었다. 순서를 기다려서 이곳에 힘겹게 입성한 사람들은 맥주나 칵테일에 감자튀김 같은 것을 먹으며 숲속의 원숭이를 내려다보는 것이다. ‘동물원을 내려다보는 스카이라운지’ 같은 걸 한국에서 시도한다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졌다.
베를린 동물원이 베를린의 신흥 복합몰에 기꺼이 자신의 자원을 내주며 그것들을 부양하는 게 내게 이상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어떤 예감이 들었다. 나는 베를린 동물원에 가지 못할 것이라는.
─ 「베를린 동물원과 스툴볼」 중에서
베를린에서, 그리고 독일에서 가장 많이 본 동상은 비스마르크였다. 비스마르크가 그만큼 많다기보다는 내가 식별한 동상이 별로 없어서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처음 비스마르크를 본 것은 반제에 있는 클라이스트의 무덤에 갔을 때였다.
우연히 보게 되었다. 나와 함께 베를린을 ‘탐험’하기로 한 K가 짜왔던 탐험 경로에 클라이스트 무덤이 있었고, 그 무덤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 비스마르크 동상을 보았던 것.
그 동상은 머리가 있는 토르소 형태였고, 거대했다. 이 비스마르크는 머리에 공군 조종사들이 쓸 법한 디자인의 군모를 쓰고 있었다(그런데 왜 공군 조종사 모자는 목을 덮게 디자인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아시는 분?).
나는 잠시 그 동상이 왜 토르소 형태로 제작되었는지 생각해보았다. 그건 비스마르크가 입은 옷―군복으로 보이는 트렌치코트류의 옷―을 부각시키기 위해서였던 게 아닌가 싶었는데, 아닌 게 아니라 그 옷은 정치가였으나 군인이기도 했던 비스마르크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서 나 같은 외국인도 ‘콧수염’과 ‘강인한 턱’ ‘군복’이라는 세 가지 기호를 해독해내어 ‘아, 비스마르크!’라고 외치게 되었던 거고.
‘그런데 왜 반제에 비스마르크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반제는 낭만적이고 몽상적인 느낌을 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아주아주 큰 호수, 반Wann이라는 이름을 가진 호수See라서 반제인 곳. 베를린 사람들이 놀러가는 교외 같은 곳. 클라이스트는 이곳에서 자살을 했다. 여자와의 동반 자살이었다. 정사情死같은 것.
*
독일식의 독특하고도 기이한 재료와 레시피의 조합이란. 그리고 엄청난 양과 밀도와 시각적 고려가 거의 없이 배치한 음식이 주는 충격.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독일 음식의 경제성과 실용성을 다시 느끼고 있다.
얼마 전, 요리에 대한 역사서를 읽다가 이 청어 요리를 부르는 이름이 있다는 걸 알았다. 비스마르크식 청어 혹은 비스마르크의 청어.
그러니까 나는 그날 비스마르크 동상을 보고 비스마르크식 청어를 먹었던 것이다. 클라이스트의 무덤을 가려고 했던 것뿐이었는데. 이 놀라움!
─ 「비스마르크식 청어」 중에서
7월 1일, 나는 인천에서 에어프랑스를 타고 샤를 드골로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