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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89176570
· 쪽수 : 272쪽
· 출판일 : 2020-10-30
책 소개
목차
005 작가의 말
013 독(毒)
039 누수(漏水)
072 황혼시장
100 너를 생각해
152 길 위에서
177 블루데이
201 비행
232 강이가 온다
255 평론 | 김대현(문학평론가)
저자소개
책속에서
죄송하다는 말로는 해결이 안 되는 일들을 사람들을 죄송하다는 말로 넘어가려고 했다. 아들도 이미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익혀 잘 써먹고 있다. 남편의 심장도, 천장의 누수도 모든 것이 다 잘 해결됐다고 생각했는데, 더이상 막히거나 새어나오는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내 착각이었다.
― 「누수(漏水)」 중에서
서주가 제법 큰 소리로 중얼거리는데도 아이들이 왁자지껄 밥 먹는 소리에 묻혀 아무도 서주가 혼잣말을 하고 있는지 눈치채지 못했다. 숟가락이 식판에 닿는 소리, 밥과 반찬을 씹는 소리, 온갖 떠드는 잡소리가 윙윙거리는 식당 안에서 서주는 가보지도 않은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해 질 녘 조용한 해변에 있는 것처럼 편안해지는 마음이 이상했지만 기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영 입에 붙지 않는 나라 이름이라고, 기차처럼 나라 이름이 길고 길어 영원히 가닿을 수 없을 거 같았다. 서주는 이틀 전 통화에서 영호의 마지막 말을 곱씹었다. ‘지금 나는…… 희망 같은 게 없이,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 서주는 밥 한 숟가락에 갈치 한 점을 입에 넣고 꼭꼭 아주 오래 씹어 삼켰다.
― 「너를 생각해」 중에서
더이상 숨을 참을 수도 없었다. 강이의 용골돌기 속 뜨거운 심장 박동 소리도 점점 더 빨라졌다. 강이의 비상근이 움찔했다.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날아올라 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내 이름과 강이 이름을 목이 찢어져라 번갈아 불렀다. 아버지가 얼음 바닥에 납작 엎드려 내려주는 긴 장대를 나는 손바닥에 갈퀴라도 달린 듯, 한 손으로 잡아 쥐고 다른 한 손으로 강이를 바짝 끌어안았다. 강이는 있는 힘껏 물살을 차올리며 물 밖으로 솟아오르려 했다. 나와 강이가 처음으로 마음이 맞는 순간이었다.
― 「강이가 온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