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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89176730
· 쪽수 : 308쪽
· 출판일 : 2021-12-24
책 소개
목차
013 다른 사람
031 손톱자국을 봤어
093 제주
133 묻고 싶었어
201 정상
221 2002 부산
283 부부
299 평론 비루한 현실에서 빛나는 진실 소종민 문학평론가
저자소개
책속에서
입국장 문이 열렸다. 저 멀리, 그리고 확실하게 J가 있었다. J가 오른손을 번쩍 들어 크게 흔들었다. 저 문을 나가면 J의 손을 잡을 수 있게 된다는 사실에 청우는 복받쳤다. 그때, 청우의 오른손 손목 화상 흉터에서 제주 바닷속의 고등어들이 튀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바다 빛깔의 고등어들이 순식간에 무리를 이루더니 회오리바람의 형태로 청우를 휘감아 돌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고등어 비늘 때문에 청우는 무척 눈이 부셨고, 꿈속에서 꿈이라는 걸 깨달았지만 입국장으로 가는 길을 포기할 수 없었다. 청우는 입국장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나가며 J처럼 손을 들어 좌우로 크게 흔들었다. 고등어 무리들도 청우의 손을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며 푸른빛을 발했다.
이제 곧 청우는 J를, J는 청우를 만날 것이다.
― 「제주」 중에서
너와 함께 살았다면 나는 직장을 그만둘 수 없었을 것이다. 길바닥에서 미세먼지를 마시며 전단지를 뿌리고 사는 너를 견딜 수 있었을까. 몇 시간 전에 보았던 너의 노란 눈동자가 스치고 지나갔다. 간이 좋지 않은 게 분명했다. 건강관리를 잘하지 못하는 구질구질한 너의 삶이 보이는 듯했다. 내 국민연금 납부를 중단하고 생명보험을 해지해 그 돈으로 너를 먹여 살릴 걸 생각하니 냄새도 형체도 없었던 불안이 손에 잡히는 듯했다. 맞지 않는 운동화에 발을 구겨 넣고 일생을 오그리며 살 거 같아 나는 숨쉬기가 불편해졌다. 너와 나는 다른 사람이었다.
― 「다른 사람」 중에서
남편의 자리는 우리 집에서 반드시 필요하고 또 있어야 했다. 작은애가 곧 태권도학원에서 돌아올 것이다. 작은애도 살구를 따는 아이들 틈에 끼어 손을 뻗어 올릴 거 같다. 큼지막하고 먹음직스러운 살구 하나가 작은애의 손에 떨어질 것 같단 생각에 나는 서둘러 주방 설거지를 마치고 작은애를 맞으러 현관문을 나섰다. 아무것도 바뀐 것은 없다. 내년에도, 그 후년에도 살구나무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 집 곁에 있을 것이다.
― 「손톱자국을 봤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