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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89176686
· 쪽수 : 96쪽
· 출판일 : 2021-10-11
책 소개
목차
007 다섯 개의 예각
039 크리놀린
077 평론 | 이명원(문학평론가)
093 작가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비탈길은 내리막이 더 가팔랐다. 바로 아래가 평지였음에도 그곳은 아까와는 달리 아득하게 느껴졌다. 경주는 몇 발짝의 무거운 걸음 끝에 뒤돌아보았다. 보드라운 이파리 몇 개를 내민 어린 녹차나무는 주변의 잡초보다도 키가 작아 잘 보이지 않았다. 선 채로 주위를 한 번 휘 둘러보았다. 우거진 솔숲 멀리 하늘에 구름이 아무렇게나 뭉쳐진 채로 흘렀다. 구름의 잔상은 비탈길에까지 따라왔다. 관목들 사이로 난 길의 아래쪽에서 구름 뭉치가 위쪽으로 떠오고 있었다. 여유와 자신감이 깃든 속도였다. 낯선 숨소리가 성큼 가까워지자 경주는 다급하게 비탈을 되올라 어린 녹차나무를 뽑아 던졌다. 흰 덩어리가 흔들리며 거리를 좁혀왔다. 거칠게 육박해오는 숨소리를 느끼며 경주는 맨손으로 흙을 파기 시작했다.
― 「다섯 개의 예각」 중에서
여인은 신사 쪽으로 잠깐 눈길을 주었으나 입술은 굳게 다물어져 있었다. 사내가 크리놀린을 주워들고 신사에게 들어 보이며 물었다.
“그럼 이건 누구 건가?”
신사가 눈썹을 사납게 치켜떴다. 사내는 깜짝 놀란 척을 하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킬킬거리기 시작했다. 여인은 두 남자를 향해 고개를 내젓고는 광장의 끝을 향해 나아갔다. 시선은 광장 저편에서 어른거리는 검은 그림자에 꽂혀 있었다.
“이봐, 에, 엘라…… 엘라! 엘라!”
여인은 신사의 호명에 대답하듯 어깨를 한껏 젖혔다. 턱을 들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 자세로 망설임 없이 나아갔다. 광장에는 신사의 일그러진 표정과 사내의 웃음소리만 남았다.
― 「크리놀린」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