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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언론/미디어 > 언론인
· ISBN : 9791189706739
· 쪽수 : 284쪽
· 출판일 : 2019-05-15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1______ 『한국 언론학 설계자들』을 펴내며
김동철 | 한국언론연구회 창설멤버 • 이화여대 명예교수
프롤로그 2______ 한국의 언론을 탄생시킨 이들을 기억하며
이재진 | 한국언론학회장 • 한양대 교수
한국 언론인들의 스승, 우당 곽복산
이상철 | 중앙대 명예교수
한국 언론사 연구의 시작, 야농 최준
정진석 | 한국외대 명예교수
신문학을 위해 태어난 인물, 우범 이해창
안광식 | 이화여대 명예교수
한 눈 팔지 말고 공부나 하시게, 희관 임근수
차배근 | 서울대 명예교수
전환 시대 여성 언론인이 걸어온 길, 정충량
이종선 | 전 이화여대 기획처 부처장
외길 50년 한국 방송계 거목, 노정팔
김성호 | 전 광운대 정보콘텐츠대학원장
독일 신문학 연구의 선구자, 인석 박유봉
김학천 | 전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말처럼 새로운 세상을 찾아 달린, 동호 장용
정대철 | 한양대 명예교수
작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소암천 황기오
이광재 | 경희대 명예교수
우리 시대의 언관(言官) 사관(史官), 후석 천관우
최정호 | 연세대 명예교수
한국 방송의 개척자, 최창봉
강현두 | 서울대 명예교수
출판 사랑, 남애 안춘근
이종국 | 전 대전과학기술대 교수
한국 매스컴학의 이정표를 세운, 남정 김규환
오두범 | 청주대 명예교수
사실 보도를 넘어서 진실 탐사로의 여정, 박권상
김정기 | 한국외대 명예교수
에필로그_____ 이 책을 기획하고 출간하며 : 승어부(勝於父)하는 마음으로
김성호 | 한국언론연구회 총무 • 전 광운대 정보콘텐츠대학원장
저자소개
책속에서
곽복산은 1947년 2월 18일 자로 미 군정청 학무국으로부터 조선신문학원으로 인가를 받아 비로소 한국에서 최초로 본격적인 언론학 교육사업을 벌이기 시작했다. … 또한 나의 논문이 생각보다 늦어지자 “논문이 별거냐”면서 격려해 주었다. 이 말은 논문을 아무렇게나 써도 된다는 말은 아니고,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쉽게 생각해 빨리 쓰라는 말이었다. 나는 이후 스승이란 제자에게 단순히 지식이나 기술을 전수하는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라, 제자가 학문과 관련해 할 일을 일깨워주고 이를 이행하도록 용기를 심어주는 조언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 곽복산 교수는 동아일보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동아일보가 무기정간을 당했다가 복간되자 5명의 자녀를 집안의 돌림자가 아닌 동아일보의 동자를 돌림으로 해서 지은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 ‘한국 언론인들의 스승, 우당 곽복산’ 중에서
야농 선생은 “이 당시 한국의 신문은 오로지 침략주의의 배격에 있었고, 신문기자는 모두 애국자였다. 참으로 한국 신문의 구호는 애국과 독립 그것이었다”라면서도 이렇듯 치열한 한국 신문계의 투쟁도 ‘한일합병’이란 일제의 압도적인 군사 행동에는 당할 도리가 없었다고 설명한다. 식민지의 질곡 속에서 온갖 제약을 박차가면서, 한국의 현대화를 꾀한 신문의 업적은 찬연할 것이라고 서술했다. 한국의 신문사는 글자 그대로 민족의 투쟁사요, 근대사로부터 현대사를 꿰뚫는 민족 이면사이기도 하다는 평가였다. 또한 언론자유를 비롯한 출판·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부르짖는 언론 투쟁사였으며, 실로 온갖 자유와 해방과 독립의 전취 기록임에 틀림이 없다고 말했다.
- ‘한국 언론사 연구의 시작, 야농 최준’ 중에서
이해창은 1930년대 후반에 일본에 건너가서 당시 생소했던 신문학을 전공하고, 1940년대에는 신문사 기자 생활을 통해서 학문적 이론을 실제로 경험하는 한편, 학문의 이론과 현실적 실무 사이에서 생기는 괴리와 문제점을 연구 대상으로 하면서 해방 후 처음으로 신문에 관한 전문지『신문평론(新聞評論)』을 발간했다. 그는 1950년대에 우리나라 대학에서 처음으로 신문학 과목을 개설, 강의하기 시작했으며 1960년대 이래 이화여자대학교에 신문학과를 창설, 대학에서 언론학 전공의 위치를 다져 놓는데 선구적 역할을 수행했다. “왜 당신은 신문학을 전공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는 언제나 “신문학 이외에는 하고 싶은 과목이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 ‘신문학을 위해 태어난 인물, 우범 이해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