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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정치학/외교학/행정학 > 각국정치사정/정치사 > 아시아
· ISBN : 9791199291911
· 쪽수 : 584쪽
· 출판일 : 2025-09-10
책 소개
정체성의 선(線)으로 살펴본
아시아 신생 독립국들의 서로 다른 길
많은 아시아 식민지 국가들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을 맞이했다. 엇비슷한 시기에 이뤄진 독립이지만 이들 국가가 걸어온 근대화의 길은 제각기 다르다. 일부 신생 독립국들은 여전히 갈등과 혼란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반면,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와 K 문화, 경제 성장 등 여러 면에서 비교적 주목할 만한 역사 경로를 거쳐왔다.
그렇다면 독립 이후 이들 국가의 근대화 과정은 무엇이 어떻게 달랐던 것일까? 무엇 때문에 아직도 많은 아시아 신생 독립국에서는 여전히 내부 갈등과 균열이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이와 비교해 대한민국은 어떤 경로와 과정을 통해 지금의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을 이루었을까?
이 책은 아시아 신생 독립국 네 나라(인도,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의 근현대사를 면밀히 살펴보고, 이들과 다른 길을 걸어온 ‘한국 예외주의’의 근대화 과정을 깊이 있게 추적한다. 이를 통해 국가 내부의 정체성 선 긋기와 선 지우기가 국가 발전에 얼마나 유효한 영향을 미치는지, 아울러 앞으로 경계하고 논의되어야 할 대한민국의 함정은 무엇인지도 함께 살펴본다.
왜 그들은 하나의 국가가 될 수 없는가?
단 한 번도 하나의 국가를 이루었던 적 없는 다양한 종족이 어느 날 갑자기 하나의 국가가 된다면? 단일 민족 국가를 당연시 여겨온 우리에게는 매우 낯선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많은 아시아 신생 독립국들이 이 같은 다종족 국가를 이루고 있다. 식민 종주국이 임의대로 그어놓은 선에 의해 종족과 종교가 서로 얽히고설킨 가운데 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하나의 국민이 되기를 강요받았고, 이는 국가 균열을 일으키는 수많은 갈등과 대립의 선을 만들었다.
이 책을 관통하는 주요 키워드는 ‘정체성의 선(線)’이다. 아시아의 많은 신생 독립국들은 이 정체성의 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들 국가에서는 종족, 종교, 문화, 이념 등으로 나뉜 다양한 정체성의 선이 국가를 하나로 통합하는 데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한다. 중앙정부의 입장에서는 매우 소모적이고 긴 시간 공을 들여야 하는 통합의 과정이 필연적으로 필요하다. 이는 결국 힘을 앞세운 군부 정권의 성장을 도왔고, 특정 지역과 커뮤니티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후견주의라는 패악을 낳았다.
이 책은 대한민국의 근대화 과정을 설명하기에 앞서, 아시아 신생 독립국들의 근대화 과정을 면밀하게 살펴본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아시아 국가, 그중에서도 공산화되지 않은 국가를 기준으로 인도,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가 그 대상이다. 대한민국과 출발 배경이 달랐던 이들 국가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현대사를 지나고 있다. 이 책은 그 과정과 배경을 ‘정체성의 선’이라는 흥미로운 관점과 시선으로 짚어본다.
탈식민지 아시아 국가들의 선 긋기와 선 지우기
갈등과 혼란이 끊이지 않은 아시아 신생 독립국들의 가장 큰 과제는 국민들 사이에 그어진 선을 지우는 일이다. 그러나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국가 내부의 선을 긋고 지우는 일은 매우 정치적일 수밖에 없고, 정치는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역사라는 운동장 위의 선을 어떻게 변경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 과정에서 선으로 나뉜 국민들 사이에 정치적·사회적·경제적 차별과 대립이 발생한다.
인도는 카스트 정치가 강화된 모습을 보이며 힌두민족주의와 무슬림의 대립 구도가 나라 전체를 갈라놓고 있다. 파키스탄에서는 발루치스탄과 파슈툰의 분리 독립에 대응해 이를 억누르기 위한 군부 세력이 정치와 경제에 깊숙이 관여한다. 인도네시아는 1만 8천 개에 달하는 섬만큼이나 복잡하고 다양한 다종족 국가로, 수하르토 체제 이후 지방 자치가 강화되면서 중앙집권의 힘이 약해지고 파편화된 법질서로 민주주의의 동력이 다소 떨어진 상태이다. 말레이시아는 말레이계에 대한 여러 특혜로 인해 정치적 불만이 쌓이고 말레이계의 기득권과 말레이시아인이라는 하나의 국민으로서의 평등을 내세우는 개혁 세력의 대립이 갈등 구조를 이루고 있다.
선 지우기에 실패한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후견주의와 정치 세습이 국가 발전의 발목을 강하게 잡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겉으로는 민주주의 제도를 표방하지만 실제 민주주의의 내용 면에서는 여전히 뒷걸음질 치는 모양새이다.
한국 예외주의와 함정
대한민국은 이 책에서 소개하는 아시아의 다른 신생 독립국들과는 확연히 다른 근대사의 궤적을 갖고 있다. 뚜렷한 기원이 없는 다른 아시아 신생 독립국과 달리, 우리는 일찌감치 천 년이 넘는 중앙집권국가의 경험을 갖고 있다. 이는 유럽에서 가장 빨리 전근대 민족국가를 이루었다는 잉글랜드보다 훨씬 오래된 것이다.
이 책은 신라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 속에서 중앙집권 시스템이 어떻게 정착되고 발전해 왔는지를 역사적 고증을 통해 살펴본다. 정체성의 선이 여럿 나뉘어진 앞선 국가들과 달리, 우리는 중앙집권체계 아래 하나의 민족이라는 개념이 일찌감치 자리 잡았다.
한때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지만 한민족 고유의 민족주의 정신은 일본의 억압과 동화정책에 맞서 강렬한 독립운동의 근간이 되었다. 단일 민족, 단일 언어를 갖고 있었기에 대한민국은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한 소모적인 절차와 과정이 따로 필요하지 않았다. 한국전쟁 이후 미국과 북한이라는 두 제약은 아이러니하게도 근대화와 민주주의의 정착을 앞당겼고, 토지개혁으로 인한 균질한 근대화는 모든 국민이 동일한 출발선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대한민국의 발전을 이끄는 주요 동력이 되었다.
물론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와 사회가 앞으로도 무조건 장밋빛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저자는 근대화나 민주주의라는 공동의 목표가 사라진 지금, SNS의 발달로 등장한 가짜뉴스, 배제와 혐오로 나타나는 정치적 부족주의라는 선(線)은 언제든 우리 사회를 균열시킬 수 있음을 조심스럽게 경고한다.
목차
서문 004
Part1. 국가와 선(線)
선 긋는 국가, 분열된 국민 021 • 종족, 민족, 국민 026 • 중앙집권국가와 민족 036 • 누가 ‘우리 국민’인가? 041 • ‘후견주의’라는 부작용 048 • 한국은 무엇이 다른가? 051 • 다종족 싱가포르의 비결 059
Part2. 탈식민지 아시아 국가들의 근현대사
Chapter1. 인도 - 종족, 카스트, 종교라는 선
근대 이전의 인도 071 • 영국 식민지 시기에 형성된 ‘인도 민족’ 083 • 민족 정체성의 분열, 힌두와 무슬림의 갈등 092 • 하나가 되지 못한 독립, 인도-파키스탄 분리 건국 099 • 네루-간디 가문과 정치의 사유화 107 • 카스트 정체성의 재등장 116 • 세속주의와 힌두민족주의의 대립 121 • 나렌드라 모디와 힌두민족주의의 성장 131
Chapter2. 파키스탄 - ‘국민 만들기’라는 대지진과 계속되는 여진
건국 이전의 인도 무슬림 역사 154 • 파키스탄 건국의 풍경 163 • 민주주의에서 군부 권위주의로 177 • 동-서 파키스탄의 갈등과 분열 184 • 부토의 실패, 또다시 등장한 군부 190 • 혼돈의 민간 정부 시대 200 • 무샤라프,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 208 • 파키스탄 민주주의는 발전하고 있는가 219
Chapter3. 인도네시아 - 복잡한 정체성이 낳은 KKN의 그늘
말레이제도의 정치와 문화 233 •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다 239 • 인도네시아 건국과 독립 전쟁 248 • 정체성의 대립과 내부 반란 259 • 선 지우기에 실패한 수카르노 정치 266 • 쿠데타와 대학살 277 • 수하르토와 신질서 정권 283 • 중앙집권이 무너진 뒤에 293 • 살아남은 구체제 297 • 계속되는 부패와 정치 세습 307
Chapter4. 말레이시아 - 위로부터의 타협에 의한 보수적 근대화
영국 진출 이전의 말레이반도 326 • 조호르 술탄국과 영국령 말라야 329 • 중국계와 인도계 이주민의 성장 333 • 말레이 정체성의 성장 339 • 일본의 말라야 점령 344 • 영국의 재점령과 말라야연합 350 • 말라야연방과 UMNO 355 • 싱가포르와 보르네오 367 • 말레이시아의 탄생 371 • 5·13 사태와 신경제 정책 378 • 마하티르와 안와르의 대립 388 • 미완의 개혁, 선은 약해지고 있는가 395
Part3. 한국 예외주의
Chapter1. 오래된 신세계 - 천 년 중앙집권국가의 전통
천 년이 넘는 중앙집권국가의 경험 413 • 한반도의 전근대 민족국가 : 신라에서 조선까지 417 • 민족국가의 단절, 일제강점기 434
Chapter2. 두 방향의 제약 - 미국과 북한
분단과 공백 451 • 이식된 민주주의 459 • 대미 의존의 심화 464 • 왜 한국은 ‘서구적 근대화’를 지지했는가 469 • 두 방향의 제약 476
Chapter3. 균질한 근대화 - 같은 출발선에 선 한국인들
전통적 지배 세력이 무너졌는가? 497 • 남한의 농지개혁과 균질화 500 • 평등주의, 그리고 세습 정치 512 • 균질한 근대화, 그 이후 517 • 외국의 토지 개혁 520
Chapter4. 한국 예외주의의 함정 - 21세기 우울한 자화상
수저계급론의 시대, ‘균질적 근대화’는 끝났는가 536 • ‘민족’ 정체성의 후퇴, 지역주의 538 • SNS, 유튜브, 그리고 정치적 부족주의 548
주석 554
저자소개
책속에서
아시아의 탈식민지 국가들은 내부의 다층적 정체성의 선을 지우고 국민이라는 정체성으로 통합하는 데 애를 먹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정치 엘리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선을 그음으로써 각종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렇게 선이 그어진 국가 내부에서 후견주의가 성장한다. 탈식민지 아시아 국가들의 현대사는 선을 지우려는 힘과 선을 그으려는 힘이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응하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한국은 이들과 전혀 다른 경로로 현대사의 궤적을 그리고 있다. 역사적으로 축적된 유산과 근현대사의 우연이 겹쳐서 선 지우기에 성공한 것이 현대사에서 한국이 민주화에 성공한 비결이며 빠른 경제 성장의 비결이기도 하다.
- <Part1. 국가와 선(線)> 중에서
독립 이전의 영국령 인도제국은 행정상 총독 정부 직할령과 500개가 넘는 토후국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 토후국들 중 상당수는 인도공화국 정부의 압박과 회유에 따라 인도공화국에 합류했다. 인도공화국 중앙정부가 이들을 권위주의적으로 통치하려고 할 경우 상당한 저항에 직면했을 것이다. 이 저항을 누르고 중앙집중적이고 일방적인 권위주의 정치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려면 스탈린 체제하의 소련과 같이 극단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독재 정부가 수립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방향으로 가기에 인도는 인구가 너무 많고, 구성원의 정체성이 너무 다양했다. 한마디로 독재 정치가 들어서기에는 지나치게 크고 복잡했다.
- <Part2. 탈식민지 아시아 국가들의 근현대사 | Chapter1. 인도> 중에서
지아 울 하크 정권은 갑작스러운 비행기 사고로 막을 내렸고, 1988년 파키스탄에서 민주주의 제도가 복원되었다. 하지만 민주주의 정치는 부토 가문과 샤리프 가문의 라이벌 경쟁으로 추락했다. 1999년 합참의장 무샤라프가 쿠데타를 일으켜 또다시 군부 정권이 수립되고 민주주의가 중단되었다. 파키스탄 국민들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강력한 시위를 벌였고 결국 2008년 총선이 치러지면서 다시 민간 정치로 복귀했다. 그러나 파키스탄의 정치는 또다시 소수의 정치 가문들이 주도하게 되었고, 파키스탄의 뿌리 깊은 후견주의가 기승을 부리면서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또한 외형상 정치권에서 물러난 군부가 강력한 경제적 이권을 장악한 상태로 파키스탄에서 거대한 기득권 세력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어 이 역시 민주주의 발전의 장애물로 평가된다.
- <Part2. 탈식민지 아시아 국가들의 근현대사 | Chapter2. 파키스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