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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여성학/젠더 > 여성인물
· ISBN : 9791193933169
· 쪽수 : 296쪽
· 출판일 : 2025-09-16
책 소개
목차
추천사 / 저자의 말
프롤로그_광장을 만든 여성들의 ‘레이어’
여성들은 늘 광장에 있었다 / ‘정치력’을 고루 갖춘 10명의 인터뷰이를 만나다 / 광장에 나온 여성들은 누구인가 / 광장이 닫혀도 행진은 멈추지 않는다
계엄 날, 군인과 눈이 마주쳤다_00년생 김다인
‘붕괴’ 상태였던 그 밤 / 군인을 빤히 볼 수밖에 없었어요 / 계엄의 무게를 아는데, 어떻게 안 가요? / 가장 급한 불은 ‘페미니즘’ / 청년 여성, 문화의 주도권을 쥐다 / “이번 광장은 제 바운더리였어요”
광장을 조직하는 여자_94년생 이재정
‘계엄’이라는 말에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 ‘안녕들하십니까’부터 ‘미투’를 거쳐 / 39도 고열에도 버티던 ‘한강진의 밤’ / 조직에서 선전까지, 낙관의 에너지로 만드는 정치적 광장 / 광장 정치, 제도권 정치가 될 수 있을까
록페의 깃발이 투쟁의 깃발로_94년생 ‘내향인’ 기수
야근 중 들었던 그 밤의 헬기 소리 / 여성 기수들이 바꾸는 집회와 ‘록페’ / 세월호와 ‘불편한 용기’, 이태원 참사를 지나 / 연대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갈 것
그 많은 응원봉은 어디서 왔을까_97년생 김지연
‘가짜 뉴스 지라시’인 줄 알았던 비상계엄 / “내가 직접 여성들을 초대하자” / ‘휀걸’들에게 정치는 이미 익숙하다 / “아이돌 홈마 계정을 운영하는 감각으로 했어요” / 아름다운 이별을 꿈꾼다
‘말벌 동지’가 된 동덕여대 졸업생_97년생 김강리
그날 나는 가족도 설득하지 못했다 / 내가 다시 광장에 서는 이유 / 탄핵 이전에 여대 시위가 있었다? / 동덕여대 학생들이 ‘말벌 동지’가 된 까닭 / 나의 참여로 그 공간이 안전하기를 / 관점으로서의 ‘여성’과 ‘논바이너리’ / 정치를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 ‘87년 체제’를 뒤엎는 개헌 도모해야
남태령의 축제 주최자_88년생 김후주
발포가 있을까 두려웠던 밤 / 국가폭력에 처음 맞서는 이들의 ‘순도 100%의 화’ / 외로운 이들이 느낀 생경한 감각, ‘연대’ / 스피노자를 연구한 10년 차 농민의 정치
45년 만의 ‘시민은 도청으로’_00년생 나수하
전일빌딩의 탄흔이 생각나던 밤 / 시험 마치자마자 달려간 광장, 거기서 만난 타이거즈 / 광주에서, 야구가 정치가 된 이유 / 금남로에 나타난 극우 세력에 맞서다 / 깃발의 기수로, 노조원으로 /약자들이 지켜낸 곳으로서의 ‘광장’
‘혐중’에 대항해 마이크를 들다_06년생 최서연
종강 날 느닷없이 날아든 ‘계엄’ / ‘남성주의자’의 계엄으로 시작된 광장 생활 / 중국 혐오에 대항해 마이크를 들었습니다 / 쏟아지는 악플들, 실은 괜찮지 않았다 / ‘혐중’이라는 이름의 혐오와 미세 공격 / 일상적인 디아스포라’의 경험 / 혐오는 늘 교차적이다 / 혐오를 향한 대책과 방책
TK의 딸은 늘 광장에 있었다_93년생 햐
나도 모르는 사이 ‘계엄 세대’가 됐다 / TK도 여성도 놓을 수가 없어요 / TK의 딸들은 ‘개념녀’가 아니다 / 말벌 동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TK=보수의 심장’은 이제 그만
광장에서 배운 앨라이 되기_96년생 솔
‘삼청교육대’를 떠올리게 하는 실체적 공포 / 출퇴근하듯 드나든 광장,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 광장에서 배운 앨라이 되기 / 광장에서 그들은 ‘아는 사람’이 됐다 / 남성이라는 성별과 불화하다 /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정치를 꿈꾼다 / 온정과 상호 부조를 조소하는 청년 남성들
집담회_우리의 광장은 끝이 아니야
에필로그_우리, 무한히 정치적인 존재들
여러 갈래의 광장 정치 / 또 다른 싸움을 앞두고 / 광장과 일상의 낙차 너머를 꿈꾸는 사람들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내가 만난 10명의 인터뷰이들은 이들 기동력·기획력·전달력·실행력을 고루 갖춘 이들이었다. 이들은 각종 집회에 참여해 시민 발언에 나섰고, 광장의 기수가 되었다. 시민을 향해 달려오는 군용차를 온몸으로 막아섰으며, 성난 민의를 무시하는 국회 앞을 사흘 밤낮으로 지켰다. 농민들의 트랙터 행진을 막는 경찰 차벽에 대항해 남태령에 모여줄 것을 시민들에게 호소했다. 광장의 행진을 주도하는 사회자가 되었고, 윤석열 정권에 맞선 청년 모임을 조직했으며, 대학원생의 노동자성을 인정할 것을 촉구하며 노동조합을 꾸렸다. 무엇보다 이들은 ‘정치’라는 말에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에서 뚜렷한 특색을 지닌다. 일상 속 투쟁이, 광장에서의 외침이 곧 정치임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정치 혐오에 빠지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왔다._<프롤로그> 중에서
다인이 호명한 ‘할아버지’는 이해학(80) 성남주민교회 원로 목사다. 이 목사는 경기 성남에서 민주화 투쟁과 빈민 운동을 이끌며 1973년 한국기독교장로회 주민교회를 개척했다. 1974년 1월 8일 박정희 유신 정권이 긴급조치 1호를 선포할 당시 반대 투쟁의 주역으로 징역 15년에 처했다가 39년 만의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다인은 할아버지의 감옥살이로 인해 남겨졌던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이번에 그 차를 막은 걸 보고 할아버지가 ‘내 손녀 맞다. 너는 외가의 딸이 맞다’ 이러시고, 할머니도 너무 좋아하시는 거예요.” 아마 다인에게 인생 첫 집회였을 경험도 할아버지와 함께였다. 2001년, 이 목사가 서울시의 박정희 기념관 부지 제공에 반발해 집회를 이어갈 때 피켓을 든 할아버지 앞 유모차에 앉은 아기가 다인이었다. 어릴 적부터 5·18 광주 묘역도 자주 찾았다. 주민교회 신도로서 1980년 6월 9일 서울 이화여대 앞에서 5·18의 진실을 알리며 분신한 고 김종태 열사를 추모하는 자리였다._<계엄 날, 군인과 눈이 마주쳤다> 중에서
학생운동과 시민운동, 국회와 정당, 대학원을 거친 지난 11년은 재정에게 어떤 시간이었을까. “학생운동을 하면서는 세상에는 곁을 내어줄 다정한 이웃이, 절실한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고요. 시민운동을 통해서는 연대의 확장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어요. 국회와 정당 활동을 하며 대중의 요구를 읽어내고 실질적인 문제해결을 위해 필요한 능력을 갖추게 되었고요. 짧은 시간 동안 압축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지금까지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인적 네트워크를 갖추게 된 것도 큰 성과였어요. 대학원에서는 하나의 문제를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이론과 언어, 분석 방법을 배웠고, 깊이 있는 사유를 나눌 좋은 동료들도 만났어요.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조직력, 대응력, 정책적 감각, 인적 네트워크 등 여러 영역에서 꼭 필요한 역량을 두루 익힐 수 있었습니다.”_<광장을 조직하는 여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