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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89847319
· 쪽수 : 98쪽
· 출판일 : 2022-01-10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_처음처럼
1. 나의 첫 사택
2. 교실의 온도
3. 방학
4. 그들에게서 배운다.
5. 고마워요, 선상님!
6. 교문 밖에 서 보니
7. 확 때려치우고 싶을 때, 아직은 없다.
8. 나의 키다리 아저씨 아니, 키다리 편집장님
9. 아이
10. 선생님 되길 잘했지?
11. 교생이라는 말
추천의 글_뭔가 다르다
책속에서
영화 때문이었다. 강원도 산골 분교에서 근무하게 된 김봉두가 허름하고 좁은 사택방에서 혼자 화투치면서 뒹굴던 모습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봉화로 발령받기 일 년 전 쯤에 본 영화 <선생 김봉두>. 시골 교사들은 다 저렇게 생활하나보다 했다. 영화 속 김봉두의 생활이 나름 멋져보였다. 영화도 영화였지만 개인적 취향의 문제였을 수도 있었다. 이상하게 나는 80년대식 생활에 마음이 종종 끌린다. 초등학교 교사로 지내셨던 아버지를 따라 어릴 적 우리 가족은 산골 학교 여기저기를 옮겨 다녔고, 딱 김봉두가 지낸 곳과 비슷한 사택에서 생활 했었다. 그 곳에서 나는 자랐다. 2004년 봉화라는 곳에 신규발령을 받았다. 2월 말 나의 첫 학교인 도촌초등학교에 인사를 하러 가서 지낼 곳을 알아봤다. 주위에는 산과 논 밖에 없었다. 영주 시내와 봉화읍까지는 각각 차로 15분 거리. 딱 중간지점에 학교가 있었다. 당시에 나는 운전을 하지 않았다. 영주와 봉화를 다니는 버스가 30분 간격으로 자주 있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영주나 봉화에 집을 구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같이 가신 부모님께서 교감 선생님께 물어보셨다.
“혹시 사택은 없나요?”
70년대에 지어진 아주 오래된 앞 교사(校舍)와 90년대에 지어진 뒷 교사(校舍) 사이 좁은 공간에 작은 사택이 하나 있었다. 선생 김봉두가 생활했던 바로 그런 곳. 잘 열리지도 않고 빛바랜 녹색 페인트칠이 툭툭 떨어진 미닫이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니 오래된 곰팡이 냄새가 훅 풍겨왔다. 한쪽 귀퉁이 시멘트 바닥엔 찌그러진 세수대야 하나와 낮은 수도가 있었다. 다행히 온수는 나왔다. 옆에는 시도 때도 없이 작동을 멈추는 낡은 보일러가 있었고, 양 옆으로 방이 하나씩 있었다. 오른쪽은 학교 주무관님이 작업할 때 옷을 갈아입거나 일하다 쉬는 방이었고, 왼쪽은 창고로 사용하는 방이었다. 크기는 두 평 정도. 교감 선생님께서 창고방의 문을 여셨다.
“방도 좁고 좀(삭제) 어수선하지만 쓰신다고 하면 도배는 새로 해 드리겠습니다.”
방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둘러만 봤다. 굳이 들어갈 필요도 들어갈 수도 없었다. 워낙 좁아서 어른 네 명이 서 있기도 부족한 크기였다.(누우면 머리끝과 발끝이 벽에 닿았다) 후~ 하는 한숨과 함께 선생 김봉두가 떠올랐다.
‘그래 한번 생활해보자. 어릴 때도 이런 곳에서 자랐는데 뭐. ’
현실은 서글펐다. 3월 1일 새 학기가 시작하는 전 날. 짐을 옮겨준 부모님은 대구로 가시며 걱정하셨다. 혼자 남게 된 사택에서의 첫날! 해가 지고 어두워졌다. 불 켤 곳을 찾다가 알았다. 장판과 도배는 깔끔하게 되었지만 형광등이 없다는 걸. 다행히 학교 주위에는 집이 한 채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찾아가 대뜸 형광등 하나만 달라고 말하는 게 어려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찾아간 곳은 다행히 학교에서 일하시는 주무관님 집이었다. 주무관님이 차를 몰고 읍내에 가서 형광등을 사 오셨다. 겨울이라 해는 금방 졌고, 어둠이 내려앉고도 한 시간이 더 지났을 무렵 드디어 방 안이 환해졌다. 다시 혼자가 되었다.
이제껏 살면서 낯선 곳에, 그것도 혼자, 이렇게 조용하게 있어본 적이 없었다. 새로 산 텔레비전은 아무리 틀어도 화면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삭제) 치지지지직 소리만 났다. 몇 번 하다가 포기하고 라디오를 틀었다. 다행히 라디오에서는 사람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9시가 채 되지 않았지만 이불을 폈다. 화장실이 가고 싶었다. 아차! 사택 안에는 화장실이 없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깜깜한 학교 건물을 돌아가야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있었는데 그마저도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옛이야기에 나올법한 오래된 재래식 화장실이었다. 십 년 넘게 사용을 하지 않고 방치된 곳으로 전등도 없었다. 결국 학교 화단에다 볼일을 보고는 얼른 들어와 문을 꼭꼭 잠궜다. 다시 자리에 누웠다. ‘누가 가라고 등을 떠민 것도 아니고 왜 이런 산골에 지원을 해서 이 고생을 하는지…….’
사택에서의 내 생활은 지금 생각해도 스스로에게 연민이 느껴지는 일의 연속이었다. 4시 30분 퇴근한 후 사택에 들어가면 문을 걸어 잠그고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4월이 되고 해가 조금씩 길어지면서 텅 빈 운동장을 혼자 걷곤 했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른 후엔 운동장에 나와서 운동 겸 매일 산책을 하고, 어떤 날은 조회대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미친 듯이 노래도 불렀다.
-「나의 첫 사택」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