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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책] 국경일기](/img_thumb2/9791190136761.jpg)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문화/역사기행 > 동서양 문화/역사기행
· ISBN : 9791190136761
· 쪽수 : 440쪽
· 출판일 : 2022-06-22
책 소개
목차
해묵은 고백
1장 미래의 유산
방콕의 아이들 - 방콕Bangkok | 타이
되돌아오지 않을 먼 길 떠나며 - 치앙마이Chiang Mai | 타이
2장 국경의 밤
국민당 잔당, 반공팔이 마약전선을 가다 - 탐응옵Tham Ngop | 타이
국경선, 인류 최악 발명품 - 도이앙캉Doi Ang Khang | 타이
현대사의 공백, ‘한국전쟁 제2전선’ - 도이매살롱Doi Mae Salong | 타이
쿤사, 아편왕인가 독립투사인가? - 반힌땍Ban Hin Taek | 타이
사라진 아카 문, 길 잃은 사람들 - 반파노이-아카Ban Pha Noi-Akha | 타이
매사이, 붉은 용에 사로잡힌 닭 - 매사이Mae Sai | 타이 ‧ 따칠렉Tachileik | 버마
음모와 배반의 삼각지대 - 골든트라이앵글Golden Triangle | 타이 ‧ 반콴Ban Kwan | 라오스
메콩강은 울고 있다 - 치앙콩Chiang Khong | 타이
파땅, 비밀전쟁의 심장 - 반파땅Ban Pha Tang | 타이
3장 내릴 수 없는 깃발
현장은 역사다 - 반촘푸Ban Chomphu | 타이
“내 심장은 아직 공산주의자” - 반후아이쿠Ban Huai Khu | 타이
밤길 - 반후아이쿠-치앙마이 국도 1155 | 타이
토끼가 달을 겨누다 - 반파숙Ban Pha Suk | 타이
산악 우물에서 소금을 캐다 - 반보루앙Ban Bo Luang | 타이
아버지 인민해방군 사령관, 아들 육군총장 - 반남리팟타나Ban Nam Ree Phatthana | 타이
짝사랑의 끝 - 반후아이꼰Ban Huai Kon | 타이
비정한 형제, 타이-라오스 국경전쟁 - 반롬끌라오Ban Rom Klao | 타이
나부아 마을, 첫 총성을 울리다 - 반나부아Ban Na Bua | 타이
4장 전선 여로
불법 노동자, 카지노 그리고 혁명 - 매솟Maesot | 타이 ‧ 먀와디Myawaddy | 버마
도시로 내려온 국경 - 매솟Maesot | 타이 ‧ 치앙마이Chiang Mai | 타이
샨의 빛나는 산 - 로이따이렝Loi Tai Leng | 버마
식민통치, 저주의 유산 - 매홍손Mae Hong Son | 타이
“군부가 변해야 버마가 변한다.” - 매솟Maesot | 타이 ‧ 레이와Lay Wah | 버마
30년 전 멈춰버린 시계 - 꼬무라Kawmoora | 버마 ‧ 슈웨꼭꼬Shwe Kokko | 버마
5장 혁명의 뒤안길
킬링필드, 미국한테 묻는다 - 부어쳇Bua Chet| 타이 ‧ 초암사응암Choam Sa-Ngam | 캄보디아
실패한 혁명, 실패한 영혼 - 안롱웽Anlong Veng | 캄보디아
얼룩진 크메르의 영광 - 쁘라삿쁘레아위히어Prasat Preah Vihear | 캄보디아
국경선, 꺼지지 않은 분쟁의 불씨 - 파모이댕Pha Mor E Daeng | 타이 ‧ 에메랄드트라이앵글Emerald Triangle | 타이-캄보디아-라오스 국경
지도로 보는 국경일기
저자소개
책속에서
‘떠남’은 내 삶의 해묵은 화두였다. ‘떠나야 한다’는 강박감이 몸에 밴 나는 언제든 훌쩍 떠날 수 있게끔 꾸린 가방을 머리맡에 두고 살았다. 나는 이걸 팔자려니 여겼다. ‘G형’(집시Gypsy) 피의 숙명 같은 건데, 그 원천이 어딘지는 나도 모른다. (…) 다만, 문득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어디론가 떠나도록 입력된 이 떠돌이 피의 명령어가 외신기자라는 직업으로 출력된 게 아닌가 싶은. 말하자면 내 삶과 일이 애초 ‘떠남’이라는 고리로 이어져왔다는 뜻이다. 그러니 새삼스레 여행이란 말이 내겐 좀 거령맞았을 수밖에. 내가 여행기를 놓고 크게 망설였던 까닭이다.
방콕 외신판은 1991년 미국의 제1차 이라크 침공 유탄을 맞고 서서히 김이 빠졌다. 베트남전쟁 뒤 첫 대규모 국제전에 엄청난 돈을 뿌렸던 언론사들이 비용 절감을 내걸고 1990년대 중반부터 하나둘씩 방콕 지국 문을 닫은 탓이다. 이건 냉전 동안 정치 중심 편집을 해왔던 언론사들이 경제 중심 편집으로 틀을 바꿔나가는 시점과도 맞물린다. 이때부터 국제 언론은 ‘뉴스 나는 곳에 기자 간다’는 전통적 언론관을 팽개치고, ‘기자 가는 곳에 뉴스 난다’는 자본 논리를 휘두르며 입맛대로 뉴스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쓸쓸히 이는 바람에 날려온 관광 안내용 쪽지를 주워든다. 크게 쓴 ‘빨라응’이 눈으로 툭 튀어든다. 이 빨라응은 버마 사람들이 소수민족 따앙을 일컫는 말인데, 영국 식민정부를 거쳐 공식 용어처럼 굳어졌다. 웬만한 책과 문서에도 모두 빨라응으로 나온다. 타이 사람들이 빨롱으로, 중국 사람들이 더앙쭈우로 부르는 게 모두 이 따앙을 가리킨다 .
나는 소수민족 현장을 취재할 때마다 늘 이런 게 안타까웠다. 적어도 이름만큼은 본디 내 몸에 붙은, 내가 원하는 대로 불러주는 게 예의다. 빨라응을 따앙이라 부르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을까? 따앙을 빨라응이라 불러 어떤 이문이 있을까? 남이 내 이름을 아무렇게나 부르는 걸 원치 않듯이 민족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작아도 민족은 민족이고, 저마다 역사와 정체성을 지녔다. 그 상징이 바로 이름이다.
이 함부로 부르는 이름에 소수민족 문제의 본질이 담겼다. 다수민족이나 주류사회가 소수를 아무렇게나 버릇없이 대했다는 증거고, 그 결과가 충돌로 드러났다. 소수민족 문제를 풀어가는 길도 본디 이름을 되돌려주는 일에서부터 출발해야 옳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