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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책] 삶을 위한 대화 수업](/img_thumb2/9791190136891.jpg)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교육학 > 교육 일반
· ISBN : 9791190136891
· 쪽수 : 148쪽
· 출판일 : 2022-11-23
책 소개
목차
여는 글
1장 대화
틈
홀연함
다섯 살의 대화
발가벗기
계획은 깨지라고 있는 것
말의 생태학
침묵의 방
희망이라는 장벽
멈춤이 환대다
‘사랑하기’와 ‘사랑에 빠지기’
대화 습관이 달라진다는 것은
프레임
아이는 태도에서 배운다
어른에게 속는 아이들
신념 넘어서기
말의 무게
우리는 모두 다른 걸 듣는다
진실의 조각
3분 동안의 침묵
듣는다는 것은
2장 변화
코끼리는 말해야 해
변화를 위한 듣기
분노가 말해 주는 것
두려움
그건 안 돼
너는 어느 편이냐
다름을 위한 기도
선과 악
비난의 한계
관점 선택
선택의 힘
절벽 오르기
기쁨만 추구하는 공동체
내려놓는 용기
차이에서 생명을 일구려면
지도는 영토가 아니다
앎은 동사
변화를 초대하는 법
3장 회복
빈틈을 가꾸는 이유
최고를 이끌어 내는 힘
정서적 연결
행주
여림의 선물
고통을 말할 용기
실과 바늘
나를 대하는 방식과 남을 대하는 방식
‘나’라는 ‘관계’
인간이라는 강물
회복적 정의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의 조건
모닥불
용기를 북돋는 사람
역지사지
원수를 사랑하라
마음의 장애물 끌어안기
성 프란체스코의 기도
닫는 글
인용한 책
추천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어느 모임에서 한 선생님이 말씀했다.
“아이들과 마음 터놓고 이야기를 하려 해도, 아이들 마음이 열렸다가 금세 닫히곤 해요. 어떻게 하면 닫힌 아이들의 마음이 열릴 수 있을까요?”
질문 안에 이미 답이 담겨 있다는 말이 있다. 저렇게 고민하는 분은 이미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함께 고민해 보자고 하면서 평소 내 생각을 밝혔다.
“아이들이 마음을 열지 못하는 것은, 우리 어른들에게 어떤 말을 했을 때 그것이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경험이 적기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어릴 때부터 우리 아이들은 ‘이거 해라, 저거 해라.’라고 하는 어른들의 요구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다고 말하면 어른들은 ‘그건 나중에 해.’라고 닦달합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내가 이 말을 해도 어른들은 듣지 않을 거야.’ ‘말해 봐야 뭔 소용이야. 내 입만 아프지.’ ‘지금은 저렇게 내 말을 들어 주는 척하다가도 나중엔 결국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만 늘어놓을걸. 내가 한두 번 속아 봤나.’ 이런 마음이 들 거예요.”
아이들의 닫힌 마음을 어떻게 열 수 있을까? 모임에서는 어른인 우리 자신이 먼저 아이들 이야기를 듣는 걸로 시작하자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는 많겠지만 들을 준비가 안 된 친구들에게 백날 말해 봐야 그건 잔소리일 뿐이다. 그렇게 되면 어른과 아이의 관계는 단절되고 만다. 그걸 바라는 어른은 없을 것이다.
말하기는 지금까지 아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다. 자신의 경험, 이론 그리고 직관에 따라 수행되는 행위가 말하기다. 말하기는 여태까지 살면서 축적되고 형성된 지식과 지혜가 모두 동원되는 삶의 한 측면이다.
듣기는 본인이 모르는 범위, 미지의 세계로의 초대다. 제대로 깊이 들으려면, 자신의 경험이나 이론 심지어 직관까지도 무용지물이다. 이제까지의 앎을 포기할 때 비로소 들을 수 있다.
자신의 앎을 철저하게 포기하고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때 비로소 들린다. 어떤 판단이나 직관조차 듣기의 방해물이다. 이렇게 들을 때, 어제의 앎이 오늘의 앎으로 재구성된다. 지식과 지혜가 증장된다. 앎을 포기할 때 비로소 앎이 형성된다. 마크 네포는 앎의 이런 역설을 부드럽고 명료하게 드러낸다. “듣는다는 건, 부드럽게 기대는 거예요. 들은 것으로 변할 수 있다는 의지를 품고서.”
마크 네포는 앎의 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변할 수 있다는 의지를 품는 것.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변하고자 하지 않는다면 듣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변화를 포함하지 않는 듣기를 우리는 흔히 ‘영혼 없이’ 또는 ‘귓등으로’ 듣는다고 일컫는다. 변화는 앎의 변화와 함께 삶의 변화로 나아갈 때 비로소 완성된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손발로 나아가는 변화의 출발은 듣기다.
보도블록 틈새를 뚫고 풀이 뾰족하게 올라왔다. 딱딱한 보도블록 사이에 여리디 여린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다면, 녀석의 뿌리는 언젠가 단단한 보도블록을 부드러운 흙으로 변모시킬 것이다.
사람을 뜻하는 한자 인간(人間)은 ‘사람(人) 사이(間)’라는 뜻이다. 한자 문화권에서는 사람을 생각할 때 늘 사람과 사람의 ‘사이’를 고려해 왔다. 사람을 뜻하는 인(人) 자 또한 보기에 따라선 두 사람이 서로 기대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맥락에서 보면, 두 사람의 ‘사이’와 ‘틈’이야말로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결정적 요인이다. 그러니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라는 말과 다르지 않은 셈이다.
풀과 사람이 틈에서 자라나는 것처럼 새로운 사상이나 생각도 바로 이 틈에서 탄생한다. 하지만 딱딱하게 굳은 돌덩이와 같은 생각에 새로운 생각의 씨가 뿌리내리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새로운 생각을 만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내 안의 빈틈을 가꾸는 일이다. 추수가 끝난 계절에 농부가 정성껏 땅을 돌보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