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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문학의 이해 > 한국문학론 > 한국시론
· ISBN : 9791190487641
· 쪽수 : 348쪽
· 출판일 : 2020-11-16
목차
프롤로그_이 시대의 정의와 문학의 필요 004
제1부 시적 정의
시민 ; 사이버-광장에 선 민주주의 013
다시, 시적 정의를 묻다 028
제주 4ㆍ3과 시적 재현 039
대지적 상상력과 공동체의 가능성 052
REVIEW
밤, 항구 그리고 울음 072
즐거운 몽상과 착한 마녀의 문장 079
치열한 불통 091
‘당신들’을 듣기 위하여 098
시적 고요로 잇닿은 길 105
트로트 열풍과 영웅-시대 112
제2부 시조비평의 정체성
시조비평의 정체성과 비평가의 자의식에 대한 소고 127
전후를 살다 137
절망의 시대, ‘어떤 경영’을 배우다 150
부산시조에 대한 일고찰 162
REVIEW
웃지 말라니까 글쎄! 177
시인, 삶의 남루를 보듬다 186
찬란하거나 공허하거나; 이 계절의 서정 205
불쑥; 공존을 모색하는 시인의 말-걸기 212
시인의 지문에 새긴 생의 역설 217
권태와 욕망의 위태로운 변주 223
에필로그_다시, 문장의 쓸모에 대하여 237
저자소개
책속에서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문학-하기의 쓸모에 회의감이 들기도 했으며, 언어를 소비한다는 것이 어쩐지 웅성거리는 변명에 그칠 뿐 아니라 무효하고 무익한 일로 여겨지기까지 했다. 일선에서 분투하는 희생과 그들의 물리적 힘을 목도하면서 문학의 힘이란 고작 오만한 권위에 안위하고 있다는 부끄러움 또한 면하기 어려웠다.
인류에게 위기는 늘 있어 왔으며 시행착오를 겪겠지만 이겨낼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미 상당한 희생을 치르고 있으며, 전염병이든 기후재난이든 모든 위기는 가장 약한 지반을 중심으로 작동한다. 재난/위기 불평등은 자본의 불평등 양상과 비례하며, 종국에는 생존대상을 등급화ㆍ차등화하기에 이른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문학의 역할과 그 쓸모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은 인문적 가치의 회복과 그 책무를 환기할 뿐 아니라 공감과 연대의 소통을 자극하는 기제로서 작동한다. 무엇보다 박탈된 주체들이 겪고 있는 고난과 고독을 응시하는 최후의 보루라 할 것이다. 그러니 그럼에도, 문학의 쓸모는 잔존한다고 안위해 본다.
- prologue 중에서
문학의 쓸모는 곧 문장의 쓸모이기도 하다. 굳이 문학이라는 장르적 범주에서뿐만 아니라 사유와 표현의 증좌로서의 제반 문장의 쓸모로 환원해도 좋겠다. 문장은 살아있음에 대한 통각이며, 타인과의 공감을 열망하는 적극적인 행위이자, 내면을 살뜰히 보살피는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시를 읽는 것은 나를 향한 깊은 포옹이다. 시인의 전언처럼 “시를 읽는 것은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이고, 세상을 경이롭게 여기는 것이며, 여러 색의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는 마음챙김의 소중한 도구이다.”(156쪽) 지금-여기의 우리는 또 어떤 사건이 벌어질지, 어떤 변화가 도래할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내고 있다. 유동하는 “삶의 모든 순간들을 경험하되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잊지 않”(156쪽)아야 한다. 적어도 시는, 미력하나마 인간 실존에 대한 최후의 물음이라 믿는다. “누구나 저마다의 시가 있다.”(160쪽) 그러니 살아내기 위해서는, 제법 잘 버텨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시’를 응시할 일이다.
- epilogue 중에서
오늘을 살아내고 있는 우리는 크고 작은 개인의 일들이 결국 역사를 쌓는 일임을 자주 망각한다. 매순간의 선택들이 모여 오늘의 역사를 만들어간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조금은 더 신중해질 수 있지 않을까. 바디우는 시를 하나의 사유로 간주했다. “시 속에서 사유의 움직임은 공백에서 욕망 어린 향수로, 욕망에서 운동의 에너지로, 에너지에서 문장으로, 문장에서 주인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른다.” 시적인 것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고유한 진리 혹은 철학이 있으며, 시는 그것 자체로 자신과 공동체를 향한 사유이다.
2018년 봄호에는 촛불, 광장, 시민혁명의 현장을 목도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시편이 유난히 눈에 띤다. 이는 아마도 다시 시작하는 이 봄이, 지난 계절의 투쟁으로 유난히 힘겹게 맞이하는/한 봄이기 때문일테다. “물음표를 집어 든 덜 여문 아이들”로 “노란 물이 드는 광장”(유순덕, 「광화문 민들레」, 『시조시학』, 2018 봄)이거나, “소용돌이” 치는 “촛불”의 힘으로 “어둠을”(정휘립, 「불의 행진」, 『시조시학』, 2018 봄) 몰아내기 위한 강렬한 투쟁이거나, “모종의 의문이 모여 모종의 질문이 된” “광장”(권도중, 「광화문광장」, 『시조시학』, 2018 봄)의 모습은 “눈보라가 몰아치는” “그해 겨울”을 한껏 뜨겁게 달구었던 연대‘들’의 양상을 대변한다. “거짓과 반칙과 특권에 항거하”기 위해 “촛불을 밝”힌 사람들 사이를 “찬란하게 타올랐”던 것은 비단 “촛불”만은 아니었을 테다. “서로가 서로의 존재로 힘이 되고” 온기를 나누며 “한목소리로” 말하는 사이 자연스레 불화의 간극을 메우고 이를 횡단하는 공동체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결국 동시대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하는 나와 타자, 그리고 우리들의 공동체를 지탱하는 윤리적 감각이 필요하며, 시적 정의 역시 이에 복무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