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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0526180
· 쪽수 : 230쪽
· 출판일 : 2020-08-10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풍 등
봄 없는 겨울
붉은 환(幻)
당신의 허공
11월, 블루스
저자소개
책속에서
은형은 도로 쪽으로 무겁게 발길을 돌렸다. 나는 어둑해지는 길을 걷는 은형이 걱정되어 옆에서 따라 걸었다. 은형은 몇 발자국 걷다가 멈춰서 자작나무를 돌아보았다. 눈에 눈물이 어렸다. 어디선가 써늘한 바람 한 자락이 슬몃, 불었다. 바람에 쓸린 나뭇잎들이 사르락 소리를 냈다. 어느 나무의 우듬지에 앉아있던 새 한마리가 어두워지는 하늘로 훌쩍 날아올랐다.
숲에서 조금 떨어진 정류장에 왔을 때 마침 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도착했다. 은형이 몇 시간 동안 차를 타고 가며 서러움을 쓸어내릴 것에 내 가슴은 무너졌다. 애처로움에 은형을 안았으나 몸짓은 가 닿지 못 하고 은형은 그대로 버스에 올랐다. 은형은 자리에 앉아 어둠이 내리는 숲의 자작나무 쪽을 애틋하게 바라보았으나, 차창 밖에서 잘 가라고 손을 흔드는 내 모습은 여전히 실체가 없었다.(「풍등」 중에서)
재현과 마리와 함께했던 지난날 강을 타고 흐르던 바람결은 안온했다. 햇빛은 윤기 나게 퍼져 내렸고 서로의 눈에 담기던 노을빛은 충만했다. 밤하늘의 반짝이던 별들은 달디 단 위무였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 스러져 버렸다는 사실에 휘청, 선혜는 무릎이 꺾였다. 안간힘으로 베란다 난간을 움켜잡는 입에서 조각조각 해체되는 말이 튀어나왔다. 내 딸…… 마리…… 허물어지는 극통이 가슴을 휘저었다.
지난 몇 년간 어린 마리가 가졌던 허기지고 쓸쓸했을 아픔이 사무쳤다. 버림받았다는 사실에 휘둘리며 허청댔을 것에 자신의 아픔은 생각나지 않았다. 마리가 겪었을 아픔만이 부풀며 괴어올랐다. 단단하게 묶어줄 줄이 끊어져 물 위를 떠다니는 부표처럼 막막했을 거였다. 당연한 줄 알았던 어미가 피 섞이지 않은 남이라는 사실에 기가 막혔을 테다. 계부의 냉대를 받아야 했던 서러움은 얼마나 깊었을 건가. 따뜻이 등 쓸어 주어야 했으나 다그치기만 했던 어미의 무딤을 얼마나 원망했을 건가.
선혜의 코가 겨자 먹은 듯 매움했다. 목울대에 단단하고 커다란 울음덩이가 걸려 고통스럽게 뻐근했다.(「봄 없는 겨울」 중에서)
지천으로 검붉었다.
피 묻은 손이 흰 벽에서 마구 움직였다. 그럴 때마다 살 벌어진 엉성한 부채 모양이 무수히 찍혔다. 언뜻 보면 여름날 맨드라미 꽃 같았다. 하지만 잎도 줄기도 없이 모가지 부러진 처참한 꽃떨기였다.
이…… 이……쁘……지?(「붉은 환幻」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