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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0526562
· 쪽수 : 273쪽
· 출판일 : 2021-11-26
책 소개
목차
데이지꽃 면사포 / 007
동백꽃집 / 033
겨울수선화 / 059
노을병 / 087
길손 이귀주 / 113
나쁜 소녀들 / 141
교동이발소 / 167
분홍원피스 / 193
페르소나 / 215
<데이지꽃 면사포>를 읽고
-최숙미론_박희주(소설가) / 241
저자소개
책속에서
수줍어하며 말꼬리를 흐린다. 아, 이토록 생각이 깊은 사람인 줄을 세상 누구도 몰랐다니. 할머니마저도 집충이로만 알고 세상에 발 한 번 디딜 기회를 주지 않았으니, 저 아까운 인생을 어찌할까.
“교동이발소 같이 갈까요?”
엽이할머니가 처음으로 이를 다 드러내고 웃는다. 양쪽 어금니가 빠지긴 했어도 박속같이 환하다. 저토록 환하게 웃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니!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소소한 행복을 알았음일까, 내가 엄지 척을 했다. 이제 사랑을 받을 줄도 알고 줄줄도 알았으니, 세상사는 재미에 푹 빠지시기를. 치매 어머니를 모시고 교동이발소를 가듯 무모할지라도 부딪히며 살아가시기를. 겨우 매듭 푼 인생 다시 헝클어지지 않고 무늬 넣은 조끼를 짜듯 쫀쫀하게 살아가시기를. 평생 품어보지 못한 순홍빛 연정도 품어보시기를.( 「교동이발소」)
매운탕을 데워 술을 마셨다. 3년 새에 병환으로 돌아가신 우섭이 부모님과 우리 엄마 안부를 물어가며 주거니 받거니 했다. 나는 술이 약한 탓에 이내 얼굴이 붉어지고 숨이 차서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뒷문을 여니 비바람에 산대가 설겅거렸다. 추녀 밑엔 흰 수선화가 몽우리를 맺은 채 늦겨울 비에 떨고 있었다. 쪼그리고 앉아 손으로 수선화에 뿌려진 비를 훔쳤다. 키가 작네. 응달이라서. 무릎 담요를 가져와 등을 덮어주었다. 그래도 꽃은 피니라. 그가 함께 쪼그리고 앉으며 내 머리를 감싸 안았다. 낮에 하던 손길이 아니었다.(「겨울수선화」)
혼자 집에 있는데 아저씨가 왔다. 곳간이며 뒤란을 돌며 금주를 부르다가 갑자기 나를 보고 팔을 벌리며 금주야 했다. 나는 깜짝 놀라 금주 아니라고 소리를 질렀다. 한참이나 나를 빤히 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갔다. 아저씨가 집집마다 다니며 금주를 찾는 바람에 밤잠을 설친다고 야단들이 났다. 아니나 다를까, 한밤중에 아저씨가 금주를 부르며 우리 집 방문을 열었다. 거의 울듯이 금주가 여기 있다고 방으로 들어오려 했다. 할머니는 금주는 서울에 있다며 막아섰다. 아저씨는 나를 보고 아빠랑 집에 가자고 애원했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금주 아니라고 악다구니를 했다. 할머니가 뭐라고 꽥 소리를 지르자 놀란 아저씨가 떠밀려 나갔다. 후다닥 문고리를 거는데 아저씨가 유모, 행자 어디 갔어? 했다. 할머니가 쉿! 쉿! 하더니 두 사람의 발소리가 멀어졌다. 행자는 우리 엄만데 왜 아저씨가 우리 엄마를 찾을까. 한참 만에 들어온 할머니는 등잔불을 꺼버리고 누웠다. 할머니, 그 아저씨가 왜 우리 엄마를 찾아? 할머니는 잠든 척 코를 골았다.(「동백꽃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