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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90934213
· 쪽수 : 788쪽
· 출판일 : 2020-08-17
책 소개
목차
1권
구걸하러 왔니?
투자해요, 나한테
망가트리고 싶어 미치겠어
채권자
쾌락
죽을 것 같아서 그래
너와 키스가 하고 싶어
침수
당신을 원해요
죽도록 미워해, 증오하고 밀어내
2권
나는 하나도 괜찮지가 않았어요
강 회장
의심
칠석
너 같은 거, 나도 필요 없어
치료해 줘, 네가
그래서 나한테 더 유리하지
돌아갈 곳이 너였으면
욕심날까 봐
난 오래전부터 미쳐 있어, 너한테
결혼하자
저자소개
책속에서
“곱게만 자라온 사람은 현실 감각이 없지. 똑바로 봐. 내가 누군지.”
그의 몸은 단단하고 무거웠다. 마치 바위가 짓누르는 것 같은 압박감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지완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채권자라는 거 알아.”
“아니지.”
차가운 손이 미끄러지듯 올라와 지완의 목을 움켜쥐었다.
“네 목줄기를 쥐고 있는 사람.”
“…….”
“네 빚을 탕감해 줄 수도, 기한을 유예시켜 줄 수도, 이자를 깎아 줄 수도 있는 유일한 사람.”
목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지완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다.
“징그러운 놈.”
“징그러운 채권자지.”
신우가 씩 웃었다.
그의 말은 옳았다.
돈을 갚지 못하면 졸업은커녕 철창신세를 면하지 못하게 될 판국이니 지완의 운명은 그가 쥐고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이 상황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복수를 위해 일부러 아버지를 계략에 빠뜨렸다고 생각하자 속에서 쓴물이 올라왔다.
“아빠를 죽게 만든 사람이 당신인 걸 안 이상 내가 가만히 있을 거 같아? 경찰에 신고할 거야.”
“재미있네.”
“돈도 안 갚을 거야. 상속 포기하면 돼.”
“여전히 순진하고.”
미소를 머금은 신우의 얼굴은 마치 악마 같았다.
경찰에 신고해 봤자 소용없다는 걸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상속 포기라는 그럴싸한 제도는 깡패와의 계약에서 통하지 않았다.
지완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돈을 갚겠다 했던 거지만 신우의 악랄한 모습을 보니 오기라도 부리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상속 포기하면 빚도 없어져. 알아?”
“민법 제1041조. 상속의 포기란 상속인이 상속의 효력을 소멸하게 할 목적으로 하는 의사 표시를 말하며, 상속의 포기를 하려면 가정법원에 상속 포기의 신고를 해야 한다.”
신우의 입술 끝에서 유려하게 흘러나온 말에 숨이 턱 막혔다. 그가 오만한 턱짓으로 한쪽 벽면을 가리켰다. 그곳에 단출한 액자가 걸려 있었다. 변호사 자격증이었다.
“해 봐, 어디.”
“……변호사였어?”
“이런 일에 특화된 전문 인력이라고 자부하지.”
더 이상 빠져나갈 틈이 없었다.
내 집에 얹혀살던 밥버러지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성공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날을 위해 그가 만반의 준비를 해 왔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의 몸 아래 깔려 허덕이는 자신이 하찮게 느껴졌다.
한없이 무력해진 지완의 목을 천천히 놓으며 신우가 몸을 세웠다.
“구걸할 기회, 다시 줄까?”
“정지완.”
그저 이름을 불렸을 뿐인데 온몸 구석구석이 샅샅이 어루만져진 것처럼 흥분됐다. 붉게 상기된 얼굴로 지완이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 좋아하지 말라고 했었죠. 미워하고 원망하라고.”
떨리는 눈빛이 그의 눈동자에 닿았다.
“나 그거 못하겠어요.”
이제야 알았다. 왜 자꾸 그에게 기대게 되었는지. 후 불면 흩어질 것 같은 얼기설기한 새장에서 어째서 빠져나오지 못했는지.
“나는 하나도 괜찮지가 않았어요.”
“…….”
“당신이 곁을 비운 짧은 시간 동안, 하나도, 조금도, 어떻게 해도 괜찮지가 않았어.”
그래서 사랑인 걸 알아 버렸다.
차가운 파도에 발을 담갔다 생각했는데 어느새 휩쓸려 가고 있었다. 멀리 마른 뭍이 보이는데 되돌아갈 길은 보이지 않았다. 벗어날 수 없다.
“당신을 좋아하나 봐요. 아니, 확실히 좋아하고 있어요.”
신우는 지그시 지완을 응시했다. 내려다보는 눈빛은 서늘하기도, 뜨겁기도 했다. 파란 불꽃이 일렁이는 눈동자가 그녀의 입술을 훑었다.
“그래서 뭘 어쩌고 싶은데.”
“어쩌고 싶은 건 없어요. 그냥…… 당신 곁에 있고 싶어요.”
“있어, 그럼.”
“그게 다예요?”
“내 옆에 있으면 많이 위험하겠지만 적어도…….”
그의 손이 흑단 같은 머릿결을 부드럽게 쓸었다.
“나보다 먼저 죽게 내버려 두진 않을게.”
신우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심지가 든 것처럼 단단했다. 그건 어떤 각오였다. 책임질 수 없으니 짐짝이나 되지 말라 경고했던 여자를 곁에 두기로 결심했다는, 그만의 각오.
“당신은 나를…….”
좋아하느냐 묻고 싶었다.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듣고 싶어서. 하지만 신우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입술을 내리눌렀다.
“마음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아. 함께 있는 게 중요할 뿐이지.”
“난 당신 마음을 듣고 싶어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건 더더욱 아니고.”
죽을 만큼 사랑한다고 해서 지킬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부모도, 지우도 목숨만큼 사랑했지만 결국 곁을 떠났다.
“같이 있어. 그거면 되는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