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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0999090
· 쪽수 : 228쪽
· 출판일 : 2022-04-08
책 소개
목차
고요의 집 / 빛이 바닥에 흩어진다 / 아무들 – 커서 / 은쑥 / 경계 지어진 것 / 트랙 / 아무들 – 어 / 되풀이 / 허구를 믿는 힘 / 탁상 달력 / 계속되는 / 발자국 / 기다림의 몸짓 / 투명 망토 / 아무들 – 거북이 / 되돌아오다 / 아무것도 없다 매미가 운다 /
무엇: 모르는 사실이나 사물을 가리키는 지시대명사 / 금사슬나무 / 함몰 / 잡음 / 멸종이라는 말 / 말의 뜻 / 아무들 – 아름다움 / 눈구름 / 고유명사와 대명사 / Nothing, Neant, Nada, Nichts, 無 / 사이렌 / 호흡의 사이클 / 필요와 아름다움 / 我無들 / 이어지다 / 아무들 – 주이영 / 언덕 / 사일런스 파크 / 심장 모양과 다소 비슷한 / 허구를 믿지 않는다
작가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음악은 천둥으로 시작됐다. 하늘이 쪼개지고 벼락이 지상으로 떨어질 때의 소리. 구름과 구름이 맞부딪쳐 번쩍, 빛을 낼 때의 소리가 빙하의 끝에서 운의 발아래로 다시 한번 쏟아진다. 운은 고개를 들어 찰나의 순간, 공중에 머무는 빙하의 끝을, 고개를 조금 더 들어 캄캄한 하늘을 본다. 별은 보이지 않는다. 순식간에 빙하는 바닥으로 곤두박질할 듯하다가 금세 모양을 바꾸어 유려한 곡선을 그려낸다. 운의 눈앞에 몇 개의 언덕들이 솟아난다. 검푸른빛은 옥빛에 가깝게 변하고 천둥이 지나간 자리에는 관현악이 울려 퍼진다. 물의 춤. 시시각각 형태를 바꾸는 물의 움직임이 부드럽게 이어진다. 아득하다. 더블베이스, 첼로, 바이올린, 클라리넷, 바순, 플루트의 소리가 언덕들의 움직임을 따라 점점 커지다가 일곱 개의 붉은 물기둥이 바닥으로부터 솟아오를 때 악기들의 소리를 뚫고 다시 한번 천둥소리가 울린다. 빙하가 쪼개진다. 물 언덕들은 보랏빛으로 바뀌고 빙하의 끝은 불규칙한 능선을 그리며 키가 큰 언덕
부터 빠르게 아래쪽으로 낙하한다. 흰빛이 바닥에 흩어진다.
과장 없이. 과장 없이. 현우는 많은 순간, 과장 없이 말하고 싶었고, 말하지 않고 듣고 싶었다. 현우는 지나치게 높은 온도를 지닌 소리들을 피하고 싶었다. 그건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믿었다. 자신은 그렇게 순도 높은 감정을, 끝 간 데 없이 깊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과장 없이. 낮은 음으로 울리는.
호모 사피엔스가 가진 중요한 능력 중 한 가지는 ‘허구를 믿는 힘’이다.
허구를 믿는 힘.
(…)
사랑을 믿는 힘.
지탱하는 허구. 지속하는 허구. 고집하는 허구.
운은 자신이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신을 믿지 않는다.
사랑을 믿지 않는다.
호모 사피엔스가 가진 중요한 능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