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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1114065
· 쪽수 : 440쪽
책 소개
목차
AM 07:00 말 달리자 _009
AM 08:00 꿈을 꾸는 문어단지 _027
AM 09:00 너무 일찍 도착한 향수 _050
AM 10:00 권태의 무게 _075
AM 11:00 바트 심슨과 체 게바라 _094
PM 12:00 하모니카 아파트 _110
PM 01:00 평양의 힐튼호텔 _166
PM 02:00 세 나라 _205
PM 03:00 쇄골절흔 _228
PM 04:00 볼링과 살인 _231
PM 05:00 늑대 사냥 _280
PM 06:00 Those were the days 289
PM 07:00 처음처럼 _319
PM 08:00 모텔 보헤미안 _340
PM 09:00 프로레슬링 _360
PM 10:00 늙은 개 같은 악몽 _369
PM 11:00 피스타치오 _402
AM 03:00 빛의 제국 _416
AM 05:00 변태 _420
AM 07:00 새로운 하루 _422
개정판 작가의 말 _425
작품 바깥의 말들 _435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그는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가슴 한쪽이 시큰해져오는 것을 느꼈다. 우리가 감정에 일일이 어떤 표식을 부착할 수 있다면 누군가는 그 순간의 그의 감정을 ‘너무 일찍 도착한 향수鄕愁’라 명명했을 것이다. 갑작스레 귀환 명령을 받은 그로서는 이 세계의 모든 것이 이제 다른 방식으로 감각되는 것도 당연했다. 그것은 일견 장기 여행자가 짐을 꾸리는 것과 비슷하다. 정신적으로 그들은 이미 여행지에 속해 있다. 그래야 그곳에서 필요한 것들을 떠올릴 수 있으니까. 그들이 샴푸와 속옷, 안대와 손톱깎이를 챙기듯 이 세계의 이미지와 소리와 냄새를 수집하는 것이었다. 그것들은 훗날의 소용, 향수라는 아주 사치스러운 소비를 위한 재료들이었다.
낡고 오래된 필름과 그것을 보러 오는 사람들, 그들은 서로에게 무심했다. 그것은 자본주의 속물들의 허세로부터 비롯된 이상한 편안함이었다. 속물이 속물인 것을 감추려면 쿨할 수밖에 없다. 쿨과 냉소가 없다면 그들의 속물성은 금세 무자비한 햇빛 아래 알몸을 드러낼 것이다. 대도시의 익명성은 세련을 가장한 이런 속물성 덕분에 유지된다. 다시 말해 이곳에선 누구든지 모습을 감추고 살 수 있다.
어쩌면 기영은 시네마테크를 기웃거리는 영화광들이 드러내는 권태에 주눅들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제 그런 건 너무 지겹지 않냐?”라고 그들이 심드렁하게 내뱉는 그 모든 것들이 그에겐 미지의 것이거나 적어도 참신한 것이었다. 도대체 ‘그런 것’의 어떤 면이 진부한 것인지 알기 위해 그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소비해야 했다. 진부함을 이해하기 위해 치열하게 사는 삶, 그것이 바로 ‘옮겨다 심은 사람’의 삶이라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