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 알리기에리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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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는 1265년 5월 말에서 6월 중순 사이 이탈리아 중부의 피렌체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태어났을 당시의 이름은 두란테Durante였으나 줄여서 단테로 불렸다. 프란체스코 수도원과 도미니쿠스 수도원에 출입하면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였고, 당시 피렌체의 뛰어난 철학자이며 정치가였던 브루네토 라티니에게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1286~1287년에는 세계 최초의 대학이 설립된 볼로냐에 체류하면서 여러 문인과 교류하고 새로운 사상과 지식을 접하기도 했다. 단테는 로마 가톨릭 교황과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사이의 오랜 갈등에서 비롯된 당파 싸움에 휘말려 공금 횡령과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되었고, 1302년에 벌금형과 공직을 금지한다는 선고를 받았다. 이때부터 단테의 망명 생활이 시작되어 1321년 말라리아로 추정되는 열병에 걸려 사망할 때까지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를 전전했다. 이러한 망명 생활은 단테의 삶과 문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신곡』의 탄생에 결정적인 요인이 된 것은 베아트리체와의 만남이었다. 단테는 아홉 살에 베아트리체를 알게 되어 사랑에 빠지고, 9년 뒤 재회하면서 다시 사랑의 포로가 되었다. 스물네 살에 생을 마감한 베아트리체는 단테의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작품 속에서 완벽하고 이상적인 여인의 이미지로 승화된다. 『신곡』에서 베아트리체는 연옥의 산꼭대기에 있는 지상 천국에서 단테를 맞이하고 천국으로의 여행을 안내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방랑의 고통과 괴로움, 삶의 고난 속에서 탄생한 『신곡』은 영원한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는 시인의 열정을 가장 완벽하게 구현한 작품이다. 그런 만큼 단테의 개인적인 삶과 고뇌, 희망과 좌절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최초의 단테 학자 보카치오는 원제 <희극comedia> 앞에 <신성하다>는 의미의 형용사 divina를 붙였고, 1555년 베네치아에서 인쇄된 판본을 시작으로 La divina commedia(신곡)라는 제목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단테의 다른 작품으로는 『새로운 삶』, 『농경시』, 『향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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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언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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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독문과 학사, 서울대 미학과 석사, 미국 노트르담 대학 이탈리아 문학과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단테의 베아트리체를 신학적으로 해석하는 박사 논문을 썼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트렌토, 페루자에서 수학하고 연구하였다. 노트르담 대학에서 이탈리아어, 라틴어, 한국어를 가르쳤고, 단테, 보에티우스, 루페르투스 투이티엔시스에 대한 글과 번역을 미국에서 출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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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로 보티첼리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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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르네상스기(期)의 화가. 피렌체에서 출생하여, 프라 필리포 리피의 현세적·탐미적 종교화의 화풍을 습득하여 인간적(人間的)·정감적(情感的) 표현을 계승하는 한편, 피렌체의 사실화(寫實畵)와 풍경화를 배워, 여기에다 독자적인 애수(哀愁)를 가미시켜서 선적 특질(線的特質)과 장식적 효과를 나타내는 특이한 화풍을 완성하였다.
또 시인인 폴리치아노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아 고전적·이교적(異敎的) 정신에다 중세적 종교심이 괴이(怪異)하게 뒤섞인 많은 걸작을 그렸다. 초기의 작품인 「성(聖) 세바스티아노의 순교(殉敎)」(1474)는 사실적이고 「봄」은 서정성이 풍부하며 「비너스의 탄생」은 장식적 효과에서 뛰어났다. 사보나롤라의 영향을 받아 열성적인 신자가 된 후에는 종교적 제재(題材)에 몰입하여 신비적 환상 속에 잠기게 되자, 「비방(誹謗)」 「비너스의 탄생」(1500)을 제작하였으나, 차차 신비주의 때문에 명료성(明瞭性)을 잃고, 드디어는 회화제작을 포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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