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

1부
공원(空源)
샛길
양양
여름방학
기념관
벽장
열대야
디오라마
머릿속 장미
취향
왕의 길
리뷰
검은 책
호수 투어
미술관의 유령
불꽃놀이
리모델링

2부
열등생
백 미터를 11초에 달린 소년
프로페셔널의 조건
건조기를 처방해주세요
김 박사
부고
갈매기
전쟁과 평화
끊임없이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
이필녀의 죽음
저니맨
가족사진관
떡집 아이
녹색 어머니
백일장

에필로그 | 몽중인(夢中人)

벤치에 앉으면 피크닉이 아니지, 누런 잔디에 돗자리를 펴고, 친구가 없는 나와, 개가 없는 나와, 없는 기분을 만드는 나는, 엄마 없는 아이처럼 단단한 고양이, 고양이 없는 복도처럼 텅 빈 아령, 아령 없는 가방처럼 구겨진 언니, 언니 없는 인형처럼 춤추는 풍선, 풍선 없는 천사처럼 가벼운 노래, 노래 없는 광장처럼 심심한 구름, 구름 없는 하늘처럼 지루한 비유, 비유 없는 문장처럼 건조한 감정
_「공원(空源)」 부분

벌판을 달리고 있었다. 칼날같이 매서운 바람이 뺨을 스쳤다. 사방에 포탄이 터지고 총탄이 빗발쳤다. 총칼 든 마시오들이 개떼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씹어 먹을 놈들. 나는 한 손에 고삐를 쥐고 다른 한 손으로 깃발을 휘날리며 적진 한가운데로 거침없이 뛰어들었다.
_「기념관」 부분

나는 나왔던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휴대전화와 지갑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잠시 멍하니 있다가 벽장을 열고 들어가 문을 닫았다. 어둡고 비좁은 건 다를 바 없었지만, 전보다 편안하고 아늑하기조차 했다. 눈을 감고 이 이상한 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중얼거렸다. 다시 문을 열고 나갔을 때 모든 것이 되돌려져 있기를 기대했다.
_「벽장」 부분